조선 선비의 혼이 깃든 정원
백운동은 왜 특별한가
별서정원의 진수를 품은 공간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듯한 계곡 끝 바위에 ‘백운동’이라 새겨진 글씨가 은은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전남 강진 월출산 자락, 이곳은 조선의 선비들이 관직을 떠나 자연 속에서 은둔하며 사색하던 별서정원의 대표 사례인 백운동 원림이다.
별서정원은 본가에서 떨어진 별채에 조성된 정원으로, 세속을 벗어나 자연과 벗하던 조선 선비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백운동은 시와 차, 그림이 어우러진 전통 원림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선비의 은거, 자연과 하나 된 정원
백운동 원림은 조선 중기의 학자 이담로(1627~1701)가 강진 월출산 자락 안운마을의 계곡 옆에 조성한 별서정원이다.

‘백운동’이라는 이름은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되어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이담로가 이 바위에 직접 새긴 세 글자로 전해진다.
그는 옥판봉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을 따라 아홉 굽이의 유상곡수를 만들고, 그 곁에 정자를 앉혀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정원의 형식을 완성했다.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계곡 풍경은 정자에 앉아 감상하기에 더없이 완벽했고, 봉우리와 물줄기를 따라 시선이 머무는 동선은 그 자체로 ‘경치 속을 걷는 사색의 길’이었다.
이 정원은 본채에서 떨어진 별채 형태로 지어진 별서에 조성되었기 때문에 ‘별서정원’이라 부르며, 조선시대 양반들이 벼슬을 떠나 자연과 함께 유유자적한 삶을 누리던 공간이었다.
특히 동백나무와 비자나무가 어우러진 상록수림은 계곡과 조화를 이루며 사계절 내내 정취를 자아낸다.
다산과 초의, 백운동의 풍경을 시와 그림에 담다
1812년, 다산 정약용이 백운동을 찾아왔다. 그는 이곳의 풍경에 매료되어 제자 초의선사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고,
자신은 백운동의 아름다움을 12개의 시로 남겼다.

이 시문과 그림은 『백운첩』이라는 시첩으로 정리되었다. 백운동도, 서시, 백운동 12경, 발문, 그리고 다산초당도로 구성된 이 시첩은 백운동의 풍경과 조경구성을 시각과 언어로 기록한 귀중한 자료다.
다산은 이 작품을 통해 백운동과 자신의 거처인 다산초당 중 어느 곳이 더 아름다운지를 비교하고 싶어 했으며, 이는 백운동의 경치가 얼마나 깊은 인상을 남겼는지를 보여준다.
총 14수의 시 가운데 8수는 다산이, 3수는 초의선사가, 1수는 제자 윤동이 짓는 등 제자들과 함께 완성한 이 시첩은 당시 선비문화의 정수를 고스란히 전한다.
조선 정원문화의 결정체, 차문화의 산실
백운동 원림은 담양의 소쇄원, 완도의 세연정과 함께 호남 3대 별서정원으로 꼽힌다.

강진향토문화유산 제22호로 지정된 이 정원은 단지 아름다운 경치뿐만 아니라 조선 선비들이 추구하던 삶의 방식과 철학을 담고 있다.
정원 속에는 ‘취미선방’이라 불리는 작은 방이 있다. 이곳은 이름처럼 꾸밈없이 고요한 공간으로, 선비들이 독서와 사색에 잠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또한, 바위에 새긴 ‘백운동’이라는 글씨는 학문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했던 선비의 뜻이 담긴 것으로, 주자의 백록동 서원을 떠올리게 한다는 해석도 있다.
특히 백운동은 우리나라 차문화의 발상지로도 평가받는다.
2006년 이곳에서 ‘동다기’ 필사본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한국 최초의 차 전문서로 기록된다. 이담로의 6대손 이시헌은 정약용, 초의선사와 교류하며 차를 만들고 즐겼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정원 전체가 단순한 조경이 아니라 문인들의 삶, 시, 차, 그림이 공존하는 종합 예술공간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백운동을 찾는 이들은 정자에 앉아 월출산 봉우리를 바라보며 몇 백 년 전 선비의 숨결을 고요히 느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