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은지 “리메이크 앨범 ‘로그’,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정은지는 최근 리메이크 앨범 ‘로그(log)’를 발표했다. ‘로그(log)’는 ‘기록하다’라는 뜻으로, 마치 여행과도 같은 인생을 선배들의 음악으로 재해석하고 다시 ‘기록’한 앨범이다.
‘기록’이라는 이 평범한 단어가, 생각해보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어쩌면 정은지의 ‘로그’는 가수의 꿈을 펼쳐가기 시작하던 십수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정은지의 심연을 아우르는 기록 그 자체다.
무엇보다 리메이크 앨범은 ‘서른 즈음’ 정은지가 선보이기로 한 팬들과의 약속이었다.
“시작은 팬들과 했던 장난스러운 약속이었어요. ‘나 서른 되면 리메이크 앨범 낼거야’라고 장난스럽게 말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팬들이 ‘진짜 낼거야?’ 물어보셔서 구체화됐죠. 사실 올해가 데뷔한 뒤 제일 바쁘게 지냈기 때문에 앨범에 대한 부담감이 컸는데, 다 만들고 나니 정말 뿌듯해요.”
그도 그럴것이 정은지는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술도녀)에 ‘블라인드’까지 배우 활동만으로도 바빴고, 에이핑크 12주년 활동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 와중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번 앨범 작업까지 해냈을 그를 떠올리니 그야말로 아찔하다.
그 바쁜 시기를 보낸 정은지만의 비결은 “악으로 깡으로”란다. “저는 사실 버티는 타입이에요. 뭔가 주어지면 어떻게든 해내는 스타일이죠. 너무 힘들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런데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테니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지냈죠. 다행인 건 녹음실에 들어갔는데, 최고급 장비의 노래방에 온 기분이었어요.(웃음) 녹음은 언제나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앨범에는 타이틀곡인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비롯해 YB의 ‘흰수염고래’, 고향에서 상경하던 어린 시절과 지금의 감정을 담은 조용필의 ‘꿈’, 어머니를 위한 노래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 올해 서른을 맞은 정은지가 표현하는 고(故)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까지 총 5곡이 담겼다.
선곡은 모두 정은지의 몫이었다. 그는 “기대감과 믿음이 감사하지만 한편으론 부담스러웠다”면서도 “지내오면서 BGM처럼 들었던 곡들”이라고 모든 곡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제가 살던 동네에 큰 오락실이 있었는데 코인노래방에 가면 무조건 계속 돈을 넣어 몇 번이고 불렀던 곡이에요. 어렸을 때 제가 욕심을 내서 산 테이프가 몇 개 안 되는데 그 중 하나였죠. 그 때 이 곡을 들으면서 혼자서 방구석 여행을 했던 것 같아요.”
맞벌이하는 부모님이 부재한 시간, 혼자 집에 있던 그에게 꿈을 키워준 곡이 바로 이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정은지는 “고성방가하면 안되니까 베개에 파묻고 불렀던, 엄청난 추억이 있는 곡인데 커서 부르니까 슬프더라. 어릴 땐 어린왕자라는 단어가 나오는 게 좋았고 멜로디가 신났는데, 커서 들어보니 슬프게 느껴졌다”고 리메이크 과정에 느낀 감정을 들려줬다.
YB 원곡 ‘흰수염고래’는 정은지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건네고 싶은 내 노래의 지침 같은 곡”이다. 또 조용필의 ‘꿈’은 부산에서 상경해 아이돌 연습생으로 살아오던 어린 정은지가 느꼈던 향수를 위로한 소중한 곡이다.
무엇보다 이 곡은 원곡자 조용필의 허락을 구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으나 조용필이 직접 타향살이 한 정은지의 사연을 듣고 흔쾌히 허락해줘 리메이크 할 수 있게 됐다. 정은지는 “이상하게 녹음할 때 울컥울컥하는 순간이 많았다. ‘흰수염고래’와 ‘꿈’은, 나의 속상했던 순간들을 함께 해준 곡이라 부를 때 울컥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는 ‘하늘바라기’로 아빠송을 부른 정은지가 엄마를 위해 택한 곡이란다. 그는 “어렸을 때 피아노학원에서 치던 어린이 반주곡에 이 곡이 있었다. 집에서 멜로디언으로 그걸 복습하는데 엄마가 ‘이 노래를 네가 어떻게 아니’라고 하셨던 게 문득 생각나 다시 부르게 됐다”고 소개했다.
마지막 트랙인 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는 이번 리메이크 앨범이 탄생하게 된 모티브이기도 하다. 그는 “녹음하기 전엔 ‘이 노래를 부르기엔 내가 좀 어리지 않나’ 생각에 겁을 냈는데 생각보다 많이 와닿더라. 이상하게 녹음할 때 많이 슬펐다”고 담담하게 털어놨다.
“저는 천천히, 고민하며 가는 스타일인데 이 업계는 늘 모든 게 빠르고, 빠른 결정을 원하죠. 그 속도를 따라가는 게 힘들었고, 사실 내가 뭘 잘하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20대 후반엔 번아웃도 왔죠. ‘나는 뭘 잘하지’, ‘잘한다고는 해주시는데 내가 진짜 잘하는 게 맞나’. 저는 스스로를 의심하는 편인데 그 의심을 이어가다 보니 혼자 있을 때면 헛헛함이 컸어요. 너무 바쁘게 살아왔는데, 돌아보면 뭘 했는지 잘 모르겠고. 그런 순간들을 지나오며 물음표가 많아졌죠.”
정은지는 “지금의 나는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는, 그런 게 있었는데 이번 앨범은 그런 데 대한 고민을 다시 해보게 해줬다. 선곡하면서 지나온 시간을 복기했을 때 ‘내가 이런 고민을 했었지’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 그는 “지금도 그 의심이 줄어들진 않았지만 이젠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며 “예전엔 팬들이 좋아하는 것과의 중간점을 찾는 느낌도 조금씩 아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도 “공연하는 가수로서의 커리어도 꾸준히 가져가고 싶다”고 가수의 꿈을 키웠을 초창기부터의 소신을 다시금 다졌다.
인터뷰 말미, 정은지는 “누군가 내 노래를 들으며 그 시절이 떠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눈을 반짝였다.
“노래를 들으며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는, 이게 노래의 힘이구나 싶어요. 리메이크를 들으시면 원곡과 비교하며 듣게 되는데, 당연히 원곡이 더 좋지만 잠깐이라도 원곡이 생각 안 났으면 좋겠어요. 정은지가 부르는 이 노래를 들으시고, 원곡이 그리우시면 원곡도 또 찾아 들어주시면 어떨까 싶어요.”
[박세연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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