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바꾼 프로젝트 '지방'과 조권능 크리에이터

외국인, 외지인이 끊임없이 드나든 역사를 가진 군산은 100년 넘는 시간 동안 이방인의 도시였다. 지금 이곳의 이방인과 원주민, 지역 재생의 꿈을 안고 활동하는 창작자와 소상공인들은 섬처럼 각개로 서 있던 과거와 달리 무리 지어 활동하고 협업한다. 그 무리들의 중심에 있는 조권능 크리에이터와 그를 중심으로 한 주식회사 '지방'을 만났다.

Creator
조권능

Q 현재 운영하는 회사 ‘지방’을 군산의 지역관리회사라고 소개하고 있다. 지역관리회사라는 단어가 생소한데, 어떤 일을 하는가? 엄밀히 말하면 미국과 유럽에서 정책으로 시행하는 ‘로컬 매니지먼트’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로컬 매니지먼트는 좀 더 넓은 범위의 에어리어 매니지먼트(area management)와 소단위의 타운 매니지먼트(town management)로 나뉘는데, 현재 내가 하는 일은 후자에 가깝다. 골목 상권에서 창작자, 창업자들이 활동하고 정착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일을 한다.

Q 도시재생이라는 단어가 없던 시절부터 군산에서 온갖 일을 벌였다. 당신이 한 일을 보면 문화기획자·소상공인·지역관리회사·농업회사법인 설립 등으로 요약된다. 이 자취가 지속가능한 도시 재생을 모색하며 그때그때 찾은 답일까? 맞다. 내가 2008년부터 군산에서 해온 일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지역의 자원을 연결해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개복동에 예술가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그들이 활동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공동체 공간과 장을 열고, 영화동에 ‘영화타운’을 조성해 건축 공간 연구원, 로컬 매니저, 창업자들과 공간·콘텐츠를 함께 개발하기도 했다.

Q 군산에서 15년을 꽉 채워 ‘지역재생’이라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부딪힌 한계와 찾은 타개책은 무엇인가? 군산을 찾는 사람이 줄고 하나둘 현실적인 문제로 지역을 떠나는 것. 다시 빈 공간이 되는 것. 프로젝트에 힘이 빠져나가면 자연스럽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 권한도 처음보다 축소된다. 이걸 해결하고 싶었다. 타운을 지속적으로 매니징할 수 있으려면 부동산 권한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마스터 리스(master lease)에 눈을 돌렸다. 공간을 사서 젊은 소상공인에게 임대하고, 그들의 콘텐츠 자율성을 보장하되 ‘한 팀’으로 움직이자, 해서 탄생한 것이 영화타운이다. 이 역시 처음의 임팩트가 지속되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걸 원하기 때문이다. 지방에선 서울처럼 빠르게 업종 변환을 하거나 팝업 이벤트를 여는 것이 쉽지 않다. 플레이어가 적어서 그렇다. 결국 지역도 기업형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제조업에 눈을 돌렸고, 지금 하고 있는 ‘흑화양조’가 그 답이다.

Q 그 얘기를 듣고 싶었다. 흑화양조를 통해 군산을 ‘술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당신의 포부. 왜 ‘술’인가? 몇 년 전 모종린 교수가 쓴 글을 읽은 게 계기다. 군산을 혁신시킬 산업은 양조 산업이고, ‘청주’를 로컬 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군산은 백화수복을 생산하는 백화양조가 있던 도시다. 군산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간과했다는 사실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백화양조를 잇는 게 아니라 군산의 양조 문화, 술에 기반을 둔 라이프스타일을 되살리는 일이다.

Q 그래서 무엇을 하고 있나? 영화타운 안에 들어선 수복이라는 청주 바를 기획했고, 술 익는 마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첫해엔 술에 관심 많은 이들과 술을 빚고 창업과 브랜딩 교육을 했다. 100여 명의 청년이 거쳐갈 만큼 반응이 좋았다. 술을 주제로 한 로컬 콘텐츠와 공간, 브랜드를 만들고 군산이라는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술을 론칭하는 일이 지금 하고 있는 작업들이다.

Q 군산의 무엇이 당신을 이렇게 계속 움직이게 하는가? 처음에 내려왔을 땐 원도심의 옛 건축물들, 살아남은 노포 등 오래된 것에 매료됐다. 지금은 조금 다른 시선으로 이 도시를 바라본다. 알다시피 군산은 이방인의 도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미 공군 부대가 자리 잡으며 들어온 미국인, 자동차 공장과 조선소로 인해 유입된 타 도시 사람들 등 이방인이 끊임없이 드나든 역사가 있다. 그래서 이방인에게 친화적이고 개방적이며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인다. 지금도 여전히 여기에서 무언가를 시작해보려는 이들이 많이 유입되는 이유다. 반면 이 이방인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다가 소멸하기도 쉽다. 그 단점을 해결하고 싶다. 그래서 지역 술 브랜드를 론칭하고, 플랫폼을 만들어서 그걸 중심으로 다양한 크리에이터와 끊임없이 협업하려고 한다. 각개가 아니라 무리 지어 움직이는 것. 우리가 가진 자산으로 ‘군산의 것’을 만드는 일. 그게 지금 나의 비전이다.


Project
‘지방’이 만든 군산의 활기

도시재생이라는 단어가 성행하기 전부터 군산은 일찌감치 새로운 변화를 겪었다. 그 중심에 조권능 (주)지방 대표가 있다. 그가 이 도시에 가져온 변화를 직관적으로 경험하고 싶다면 영화타운으로 향하자. 2018년 골목재생사업으로 탄생한 영화타운은 그 전엔 공실률이 70%에 달하는 재래시장이었다. 네 개의 입구를 가진 영화타운 안으로 들어서면 원래부터 있던 것과 새롭게 들어선 것이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다. 미군 부대로 흘러들어가는 외제 물건을 파는 한일상회와 전국 떡볶이 팬들을 군산으로 모여들게 하는 노포 안젤라분식 등이 원주민이라면, 타파스를 비롯한 스페인 음식을 파는 돈키호테, 청주 바 수복, 칵테일 바 해무, 오코노미야키 바 야끼끼 등이 새 얼굴. 지방이 직영하는 바 럭키마케트와 게스트하우스 후즈 넥스트도 원도심의 인구밀도를 높이는 공간이다.

영화동에서 로컬과 친교를 쌓고 싶다면 영화타운의 SNS 계정(@yhtown.official)을 눈여겨볼 것. 지방에서 이 공간을 중심으로 로컬과 여행자, 혹은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끊임없이 열기 때문이다. 기타리스트 박주원과 뮤지션 김오키, 김일두 등을 라인업으로 하는 ‘군산은 Bar다’, 군산의 보물 같은 가게를 만들어낸 소상공인과 각종 먹는 얘기를 나누는 ‘군산 식food 토크’, 원도심 안 다섯 곳의 바를 호핑하며 함께 술을 마시는 ‘군산 바투어’ 등이 지난날 영화타운의 영화를 장식했다. 조권능 대표가 이 일대를 바 스트리트로 만들고 싶다는 계획을 밝힌 만큼, 새 친구와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라면 이 동네를 꼭 기웃거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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