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K2가 보여준 현실", 폴란드가 독자 전차 개발을 포기한 이유

2024년, 폴란드와 한국 사이에 역사적인 방산 협력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폴란드는 자국의 글리비체에 위치한 부마르-라베디 공장에서 한국의 K2PL 주력전차를 생산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결정 뒤에는 30여 년간 이어진 폴란드의 독자적 전차 개발 노력과 그 좌절의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한때 자체 전차 기술력으로 PT-91을 성공적으로 개발했던 폴란드가 왜 결국 외국 설계를 채택하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수많은 서구 전차들 중에서 왜 하필 한국의 K2를 선택했을까요?

폴란드 국방 전문 저널리스트 바르톨로메이 쿠차르스키(Bartłomiej Kucharski)의 증언을 통해 그 복잡한 배경을 들여다보겠습니다.

PT-2000 프로젝트와 좌절


폴란드의 독자적 전차 개발 이야기는 냉전 종료 후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폴란드는 소련제 T-72를 기반으로 한 체계적인 전차 개발 로드맵을 그리고 있었고, 그 계획은 야심찼습니다.

먼저 PT-91을 완성한 후, 개량형 PT-94, 용접 포탑을 장착한 PT-97,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서방 부품을 사용한 완전한 3세대 주력전차 PT-2000을 개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PT-91 전차

쿠차르스키는 "과거에는 T-72를 개량하여 완전히 새로운 폴란드 전차로 개발하려는 계획이 실제로 있었습니다"라고 회상합니다.

PT-2000은 폴란드가 서방 기술과 자국의 노하우를 결합해 만들어낼 야심작이었죠.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PT-2000 프로젝트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무산되었습니다. 프로그램 개발비만 4억 달러가 필요했고, 실제 전차를 구매하려면 수백만 달러가 추가로 소요될 상황이었습니다.

전차 한 대당 비용도 400만~500만 달러로 추산되어 당시 폴란드 경제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다중 전선의 부담


2000년대 폴란드는 여러 방향으로 예산을 분산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로소막 장갑차와 F-16 전투기 도입이 진행 중이었고, 무엇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파병이라는 무거운 부담을 져야 했습니다.

로소막 장갑차

쿠차르스키는 "우리는 미국의 전쟁에 병력을 파병해야 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 전쟁에서 워싱턴이 NATO 5조를 발동하기도 했습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합니다.

결국 폴란드는 PT-91의 대폭 현대화 계획을 포기하고, 제한된 수의 레오파드 2A4를 구매한 후 나중에 2A5를 추가로 도입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는 현실적인 판단이었지만, 동시에 독자적 전차 개발의 꿈을 접는 첫 번째 신호이기도 했습니다.

중형전차에서 차세대 주력전차까지


포기하지 않던 폴란드는 2010년대에 들어서도 독자적 전차 개발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갔습니다.

PCL-08 안더스, PL-01 컨셉 목업, 그리고 게파르트 프로젝트까지, 이들은 모두 폴란드의 기술적 역량을 보여주는 프로젝트들이었습니다.

PCL-08 안더스 전차

특히 게파르트 프로젝트는 시간이 지나면서 차세대 주력전차 컨셉으로까지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프로젝트들도 결국 같은 벽에 부딪혔습니다. 쿠차르스키는 "자금과 정치적 의지가 부족했습니다"라고 단언합니다.

더 나아가 그는 이런 날카로운 분석을 내놓습니다. "돈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상상력과 애국심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폴란드 전차는 물론이고, 폴란드 업계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국제 전차를 개발하려는 의지조차 없었습니다."

폴란드 기업의 로비와 불신의 악순환


폴란드 전차 개발이 좌절된 데에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쿠차르스키는 "로비스트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많은 폴란드 장교들이 폴란드 방위 산업을 싫어합니다"라고 지적합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력이나 자금 문제를 넘어서는 더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폴란드내 방위 산업에 대한 불신과 외국 업체들의 적극적인 로비 활동이 결합되면서, 폴란드 독자 개발 프로젝트들은 지속적으로 후순위로 밀려났습니다.

폴란드내에서 K2 생산을 담당할 폴란드 방위산업 기업 PGZ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K2 도입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폴란드 군수업체들의 현실 인식 부족이었습니다.

초기 K2 도입 계획에서 폴란드는 한국에서 1차 도입 후 2차 도입부터는 폴란드내에서 생산할 계획이었지만, 막상 조사해보니 대량 조립 생산을 위한 기반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폴란드 군수회사들은 계속해서 막대한 자금 지원만을 요구했을 뿐, 정작 실질적인 생산 능력을 구축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이런 현실이 드러나면서 "한국에서 그냥 K2 전차를 더 사오자"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죠.

물론 얼마 전에 한국과 폴란드가 합의한 K2 전차 2차 도입에는 K2 전차를 폴란드내에서 생산한다는 약정이 있지만, 그는 폴란드가 자체적인 역량을 키우기에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우크라이나 지원과 급작스러운 현대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폴란드 전차 정책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수백 대의 전차를 포함해 대규모 군사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쿠차르스키는 이에 대해 "아주 잘한 일입니다.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레오파르트 전차

그들은 구매 목적대로 전선에 나갔습니다. 바로 공화국의 적을 처단하는 것이었습니다"라고 평가하면서도,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무언가를 사야 했습니다"라고 현실적 상황을 인정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폴란드는 에이브럼스와 K2 전차를 서둘러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비록 "더 넓은 맥락에서 보면 잘못된 결정일지라도, 그것이 일부 결정의 이유를 부분적으로 설명해 줍니다"라고 쿠차르스키는 설명합니다.

K2 선택: 무게, 기술이전, 그리고 공급망


그렇다면 왜 하필 한국의 K2였을까요? 먼저 무게 문제에 대한 오해부터 정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K2가 너무 무겁다는 비판에 대해 쿠차르스키는 "K2는 중전차가 아닙니다. 진지하게 생각해 봅시다.

K2PL 버전조차도 모든 장비를 갖춘 M1A2 SEPv3나 레오파드 2A8보다 약 10톤 가볍습니다"라고 반박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이 제시한 조건들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K2가 선택된 주된 이유는 제조사가 한국형으로 전차를 신속하게 납품할 수 있었고, 라이선스 생산과 연계된 상당히 광범위한 기술 이전을 제안했기 때문일 겁니다"라고 쿠차르스키는 분석합니다.

또한 공급망의 안정성도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부품 표준화를 기억하세요. 서방은 더 이상 T-72용 W-46 엔진을 생산하지 않습니다. 120mm 포탄은 다양한 현대식 포탄을 선택할 수 있지만, 125mm 포탄은 러시아산만 가능합니다"라고 그는 설명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입증된 바와 같이, 위기 상황에서 탄약과 부품 공급이 가능한지가 전차 선택의 핵심 기준이 된 것입니다.

미완의 꿈, 그리고 새로운 시작


폴란드의 독자적 전차 개발 포기는 단순히 기술력 부족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폴란드는 자체 3세대 전차를 개발할 지식, 경험, 심지어 로드맵까지 갖추고 있었지만, 이를 실현할 의지, 자금, 그리고 지속성이 부족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현재 글리비체의 부마르-라베디 공장에서 시작되는 K2PL 생산이 단순한 라이선스 조립을 넘어 진정한 폴란드 산업 역량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쿠차르스키는 "K2PL 프로그램의 최종 형태는 한국 측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무기 구매를 위해 차관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전망합니다.

폴란드의 전차 개발 역사는 기술적 가능성과 정치적 현실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30여 년의 시행착오 끝에 내린 K2 선택이 폴란드 방위산업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그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