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최고 홈런왕이 원래는 투수였다고?" 국민타자 이승엽 이야기

한일 통산 626홈런, KBO 단일 시즌 최다 홈런 56개, KBO MVP 5회, 골든글러브 10회. 이승엽이라는 이름 앞에 따라붙는 숫자들은 어지럽다. 그런데 이 모든 기록의 주인공이 원래 타자가 아니라 투수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경북고 시절 대회 최우수투수상을 받으며 고교 야구를 평정했던 정통 좌완이 팔꿈치 부상 하나로 포수 뒤에 서게 됐고, 그 선택이 KBO 역사를 바꿨다.

투수 이승엽이 사라지고 타자 이승엽이 태어났다

이승엽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해 경북고에서 정통 좌완 투수로 성장했다. 1993년 청룡기에서 맹활약하며 대회 최우수투수상을 받을 만큼 당시 고교 야구에서 이름이 알려진 투수였다. 그런데 고3 때 팔꿈치에 뼈 조각이 자라나는 부상을 당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1995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지만 던지는 팔의 상태가 회복되지 않았고, 결국 타자 전향을 권유받았다. 처음에는 전향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투수로 프로 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겠지만 현실은 선택지를 주지 않았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데뷔 첫해인 1995년 13홈런을 기록했고, 1997년 만 21세의 나이에 홈런왕에 오르며 KBO 역대 최연소 MVP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IMF 경제 위기로 나라 전체가 힘들던 그 시절, 이승엽의 홈런은 단순한 스포츠 기록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건설 업체가 부도를 맞을 정도로 본인 집안도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그 시기에 더욱 강하게 배트를 휘두르며 국민들에게 위로를 건넸다.

일본에서의 슬럼프, 그리고 더 강해진 귀환

2003년 한 시즌 56홈런이라는 아시아 최다 기록을 세우고 한국 야구를 완전히 평정한 이승엽은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로 떠났다. 그런데 일본은 달랐다. 초반에는 8번 타자나 벤치 신세로 자존심이 상하는 경험을 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적 후에는 손가락 부상까지 겹치며 2군으로 내려가는 수모까지 겪었다. "오늘 못 치면 2군으로 내보내겠다"는 최후 통첩을 들으며 경기를 소화할 만큼 벼랑 끝에 몰렸다.

그러나 이승엽은 경기가 끝나면 매일 600~700개의 스윙 연습을 두 시간 반씩 하며 손바닥에 피가 날 정도로 버텼다. 손가락에 붕대를 감은 채로도 훈련을 이어갔다.

그리고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결정적인 홈런을 터트리며 슬럼프를 정면으로 뚫고 나왔다. 일본에서 8년을 보내며 통산 159홈런을 기록한 이승엽은 2012년 KBO로 복귀해 3할-21홈런-85타점으로 여전한 강타자의 위력을 증명했고, 한국시리즈 MVP까지 수상하며 화려하게 돌아왔다.

600호 홈런을 치고도 배트를 조용히 내려놓은 사람

2016년 9월 14일, 이승엽이 한일 통산 600호 홈런을 쳤다. 그런데 그는 배트를 조용히 내려놓고 고개를 숙인 채 그라운드를 차분하게 돌았다. 기쁨의 세리머니도, 과한 포효도 없었다. 상대 투수에 대한 존중이었다. 그리고 2017년 은퇴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치며 한일 통산 626홈런으로 23년의 선수 생활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