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짝꿍 수학여행비 3천원 몰래 냈는데.." 50년 뒤 동창회에서 울었다

어린 시절 친구에게 건넨 작은 마음은 대개 세월 속에 잊히고 맙니다. 준 사람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받은 사람도 언젠가 잊었으리라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작은 마음이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반세기 동안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었다면, 그보다 큰 선물은 없을 것입니다.

경북 안동에 사는 김순임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30년 가까이 안동 중앙시장 찜닭 골목의 식당 주방에서 일했습니다. 남편을 10년 전에 먼저 보내고, 지금은 시내의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순임 씨는 안동 외곽의 사과 과수원 집 맏딸로 자랐습니다. 넉넉하지는 않아도 끼니 걱정은 하지 않는 집이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순임 씨의 짝꿍은 영자라는 아이였습니다. 영자는 일곱 남매의 맏이였고, 아버지가 오래 병석에 누워 계셔서 늘 도시락을 싸 오지 못했습니다.

순임 씨는 점심시간마다 도시락 뚜껑에 밥과 반찬을 덜어 영자 앞에 밀어 주었습니다. 영자는 처음엔 고개를 저었지만, 순임 씨가 "나 혼자 다 못 먹는다"고 우기면 못 이기는 척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 도시락을 나눠 먹는 단짝이 되었습니다.

그해 가을, 학교에서 경주로 수학여행을 간다는 공지가 내려왔습니다. 수학여행비는 3,000원이었습니다. 그 시절 시골 아이들에게는 쉽게 마련할 수 없는 큰돈이었습니다. 반 아이들이 들떠 떠드는 동안 영자는 창밖만 바라보았습니다.

며칠 뒤 영자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순임아, 나는 수학여행 안 갈 거다. 동생들 운동화도 못 사 주는데 내가 무슨 여행이고." 영자는 웃었지만, 그 웃음이 어쩐지 울음처럼 보였습니다. 순임 씨는 그날 밤 이불 속에서 오래 뒤척였습니다.

다음 날 순임 씨는 몇 년 동안 모아 온 돼지 저금통을 깼습니다. 동전을 다 세어도 2,000원이 조금 넘었습니다. 순임 씨는 어머니께 사정을 털어놓았고, 어머니는 말없이 사과를 판 돈에서 1,000원을 보태 주셨습니다. "친구 몰래 내야 한다. 그래야 그 아이 마음이 안 다친다."

순임 씨는 그 돈을 들고 교무실로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선생님, 영자 수학여행비예요. 제가 냈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말아 주세요." 담임 선생님은 한참 동안 순임 씨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며칠 뒤 담임 선생님은 영자를 불러 "학교에서 형편 어려운 학생 한 명을 뽑아 여행비를 대 주기로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자는 교무실에서 나오자마자 순임 씨를 끌어안고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순임 씨는 모르는 척 함께 기뻐해 주었습니다.

경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불국사 돌계단 앞에서 선생님이 찍어 준 흑백 사진 한 장이 남았습니다. 영자는 석굴암 앞에서 "내 평생 이렇게 멀리 와 본 건 처음이다"라며 눈을 반짝였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영자는 동생들 학비를 벌기 위해 서울의 봉제 공장으로 떠났습니다. 처음 몇 해는 편지가 오갔지만, 공장을 옮겨 다니던 영자의 주소가 끊기면서 연락도 끊어졌습니다. 순임 씨는 가끔 그 흑백 사진을 꺼내 보며 영자가 어디서든 잘 살기를 빌었습니다.

그사이 순임 씨도 결혼해 남매를 키우고, 식당 주방에서 평생을 보냈습니다. 수학여행비 이야기는 순임 씨의 기억 속에서도 희미해졌습니다. 그저 도시락을 나눠 먹던 단짝이 있었다는 따뜻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었습니다.

올봄, 중학교 졸업 50주년을 맞아 동창회가 열린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순임 씨는 가장 아끼는 블라우스를 꺼내 입고 안동 시내의 한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반백 년 만에 만난 동창들은 서로 이름을 부르며 손을 맞잡았습니다.

그때 식당 문이 열리며 단정한 정장 차림의 여인이 들어섰습니다. 여인은 사람들 사이를 두리번거리더니 순임 씨 앞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순임아, 나 영자다." 순임 씨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다가 영자를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영자는 서울에서 작은 봉제 공장을 차려 30년 넘게 꾸려 왔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직원 마흔 명을 둔 의류 회사의 대표가 되어 있었습니다. 동창들이 박수를 치며 축하하는 사이, 영자는 마이크를 달라고 했습니다.

영자는 가방에서 누렇게 바랜 흑백 사진 한 장을 꺼냈습니다. 불국사 돌계단 앞에서 찍은 바로 그 사진이었습니다. "여러분, 저는 50년 동안 이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녔습니다. 오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20년 전, 돌아가시기 전에 담임 선생님을 찾아뵈었어요. 그때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 수학여행비는 학교가 아니라 짝꿍 순임이가 저금통을 깨서 낸 거라고요. 저는 그 말을 듣고 선생님 앞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식당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영자는 순임 씨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그 여행에서 처음으로 넓은 세상을 봤어요. 공장에서 힘들 때마다 불국사 계단을 생각했어요.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여행을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요. 순임아, 고맙다. 정말 고맙다."

순임 씨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50년 동안 잊고 있던 일이었습니다. 영자는 순임 씨를 끌어안고 함께 울었고, 동창들도 하나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누군가 "그래서 둘이 그렇게 붙어 다녔구나" 하자 울음 섞인 웃음이 터졌습니다.

영자는 봉투 하나를 꺼내 동창회 총무에게 건넸습니다. "올가을에 우리 다 같이 경주로 수학여행 다시 가요. 버스도 숙소도 제가 다 준비하겠습니다. 이번엔 우리 순임이 옆자리는 제 겁니다." 식당 안에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영자는 순임 씨에게 작은 상자를 건넸습니다. 그 안에는 영자가 직접 재단하고 바느질한 고운 개량한복 한 벌이 들어 있었습니다. "수학여행 가는 날 이거 입고 와라. 50년 전에 못 해 준 거 이제 해 주고 싶다." 순임 씨는 상자를 끌어안고 또 한 번 눈물을 쏟았습니다.

동창회가 끝나고 두 사람은 안동 구시장 골목의 오래된 국숫집에 마주 앉았습니다. 안동국시 두 그릇에 배추전 한 장이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었습니다. 영자가 국수를 한 젓가락 들며 웃었습니다. "옛날에 네 도시락 반찬 덜어 먹던 생각 난다. 그때 그 반찬이 제일 맛있었다." 순임 씨는 영자 그릇에 배추전을 한 조각 더 얹어 주었습니다.

황순원의 『소나기』는 시골 소년과 소녀의 짧고 순수한 만남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소나기처럼 잠깐 스쳐 간 시간이었지만, 그 맑은 마음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습니다. 어린 시절 건넨 진심도 그렇게 누군가의 가슴에 오래 머뭅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건넨 작은 친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받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자라 언젠가 더 큰 마음이 되어 돌아옵니다. 오늘 문득 떠오르는 옛 친구가 있다면, 안부 전화 한 통으로 그 시절의 마음을 다시 꺼내 보세요.

올가을 순임 씨는 영자가 지어 준 한복을 입고 경주 불국사 돌계단 앞에 다시 섰습니다. 절 마당을 둘러싼 나무마다 단풍이 붉게 물들었고, 돌계단 위로 오후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았습니다. 두 사람은 50년 전처럼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고, 해가 질 때까지 경내를 걸었습니다.

출처 : '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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