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시절 밴드 음악에 빠져들며 명지대 밴드 ‘화이트 홀스’의 리드 보컬로 활동했습니다. 한성호는 1999년 가수로 데뷔해 ‘Goodbye day'라는 곡으로 활동했으나 크게 성과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한성호 대표는 실패한 가수였다
“내가 데뷔를 위해 신곡 ‘투헤븐’ 녹음을 끝낸 상태에서, 이경섭 작곡가가 조성모도 한번 녹음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나에게 묻길래 ‘쾐찮다’고 했더니 조성모가 금세 대박이 나더라. ‘투헤븐’에 신곡 2~3곡을 더 넣어 조성모를 데뷔시킨 거다. 나는 그 1년 후 데뷔했지만 쪽박을 찼다.”

99년 가수로 데뷔한 한성호 대표는 2장의 음반이 실패한 후 보컬 디렉터와 학원에서 실용음악을 가르치는 교수, 그리고 작곡가로 전환했습니다. SG워너비, 씨야, 더넛츠, 서영은, 고(故) 박용하 등의 노래 작곡가와 프로듀서로서, 드라마 OST 제작자로서 제법 괜찮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과거 가수로 데뷔해 활동했으나 크게 빛을 발하지는 못했던 그는 이후 작사·작곡가로 전향해 2006년 12월 피쉬엔케익뮤직(FNC MUSIC, 현 FNC엔터테인먼트)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프로듀서의 길로 뛰어들었습니다.

한 대표는 “자꾸 업계에서 우리 회사와 저를 가리켜 ‘혜성처럼’이라고 표현하는데 나는 잘 보이지 않는 운석으로 이 바닥에 계속 있었다. 사실 꽤 오랜 기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는 “지나고 나서 와이프에게 들은 이야기다. 지금 9살인 아들을 낳고 키울 때 2벌의 옷으로 2년을 지냈다고 했다. 회사를 꾸려나가느라 저작권 등을 모두 회사에 집어넣고 집으로 가져가는 건 없었다. 나 몰래 처가에서 돈을 받아 생활했다. 속으로는 힘들었지만 내색 않고 묵묵히 참아준 아내에게 감사한다.”라고 전했습니다.

10년 전 결혼 할 때 통장에 50만 원이 전재산이었던 한성호 대표는 이제 남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위치에 와있습니다. 기자는 “당시 가수로 망하길 잘했다”고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그는 “무명가수의 경험이 있어, 힘든 작곡가 시절이 있었다는 게, 저한테 큰 힘이 된다. 가수로 유명해졌다면 이걸 꿈꾸지도 않았을 것이고, 절박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너무 숨 가쁘게 달려오다 보니 일본 진출과 아카데미 사업 등을 하며 무리도 했다. 지금까지는 발전을 위한 발전을 했다면 앞으로는 안정 추구 속의 발전을 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가수 실패했는데 소속사 차리더니 1700억 대박 난 무명가수
FNC는 2007년에 보이밴드 FT아일랜드를, 2010년에는 두 번째 보이밴드인 씨엔블루를 데뷔시켜 성공을 거두면서 밴드 전문기획사로 입지를 굳혔습니다. 이후 2010년에 밴드 활동을 겸하는 걸그룹 AOA를 론칭했고 2015년 보이밴드 엔플라잉, 2017년 보이밴드 허니스트를 선보이는 등 FNC는 꾸준히 밴드 음악에 특화된 면모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2015년 2월 MBC ‘라디오스타’에 정용화, 박광현 등 소속 연예인들과 함께 한성호 대표가 출연했습니다. 이날 MC 김구라는 한성호 대표에 대해 “FNC 엔터테인먼트 시가 총액이 업계 3위 1700억 이상이다. YG 이후 3년 만에 직상장한 엔터 기업"이라며 “그중 지분 반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는 “연예인 출신 갑부 중에선 랭킹 3위 안에 드는데 이분이 연예인이었다는 걸 모른다"고 밝혀 보는 이들을 폭소케 했습니다. 제작자로서의 그의 감각은 여전히 살아있으며, 다양한 음악과 아티스트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덕분에 FNC 역시 2023년 924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2024년 tvN 월화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OST Part.1 타이틀이자 첫 번째 트랙인 '소나기'가 드라마 방영 시작과 함께 발매된 후 드라마의 초대박 행진과 함께 국내 음원차트 상위권에 랭크되었습니다.
빌보드 200 차트에 진입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해당 '소나기' 작곡, 작사에 참여한 한성호 대표와 FNC 소속 '엔플라잉'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Copyright © 제목 및 내용을 무단 복제 및 모방하는 경우 모니터링 팀이 적극적 서칭하여 신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