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름, 두산의 ‘그레이’와 LG의 ‘블랙’[안승호의 PM 6:29]

안승호 기자 2023. 8. 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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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우완 곽빈이 1일 대전 한화전에서 경기를 하고 있다. 두산 베어스 제공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은 OB 베어스의 시즌이었다. 베어스 에이스이던 박철순의 시즌이기도 했다. 평일에도 낮 경기가 흔하던 그 시절, 베어스가 원정 경기를 할 때면 마운드의 박철순은 네이비 컬러의 유니폼을 입고, 눈 밑에 검은 칠을 한 채로 강속구를 던졌다. 그렇게 그해에만 24승(4패)을 따냈다.

야구팬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KBO리그 원년 이미지에는, 박철순이 입고 있던 네이비 색채도 녹아있다. 프로야구 출범 시기부터 팀마다의 고유의 색이 탄생한 가운데 베어스의 색으로는 ‘네이비’가 자동으로 따라붙었다.

어떻게 보면 작은 변화다. 그러나 작은 결정은 아니었다.

두산 베어스는 이달부터 한여름 원정경기 맞춤형으로 ‘그레이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다. 한여름 체력전에서 조금 더 시원한 느낌의 밝은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력 향상에도 도움을 얻고자 계절적 변화를 선택했다.

두산은 새 유니폼을 입고 첫 경기를 치른 지난 1일 대전 한화전에서 5연패도 탈출했다. 유니폼 컬러처럼 오랜만에 타선이 시원하게 폭발했다. 장단 14안타에 8득점으로 모처럼 여유 있는 경기를 했다.

두산 양석환이 1일 대전 한화전에서 2회 역전 투런홈런을 친 뒤 베이스를 돌고 있다. 두산 베어스 제공



프로야구 팀의 유니폼 컬러 변화가 직장인 아침 출근길에 셔츠 색깔 고르듯 간단한 일은 아니다. 유니폼 색깔은 팀의 이미지이면서 모기업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두산이 그레이 유니폼 또한 그라운드로 나오기까지는 구단 여러 관계자의 공감이 필요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옆집’ LG 또한 ‘색깔 있는’ 팀이다. 유니폼 컬러로 스토리가 참 많다. 지금은 봄, 여름, 가을 구분 없이 원정 유니폼으로 고유의 검정색 상의를 입고 있지만, 한동안은 계절과 관계없이 원정 경기에서는 상하의 그레이 유니폼을 착용하기도 했다.

LG는 2011년부터 2018년까지 8년간 원정을 떠날 때면 그레이 유니폼을 챙겼다. LG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시즌 초반 순항하다가도 여름 기운이 돌기 시작하면 무너지는 경향이 있었다. LG의 발걸음에 ‘DTD’라는 비문법적 ‘불편한 수식어’가 따라붙던 시절이다. 여름철 폭염은 검은색을 향한다. LG가 원정 경기 ‘블랙 유니폼’을 포기한 여러 이유 중 하나였다.

LG가 2011년부터 8년간 착용한 원정 그레이 유니폼. 모델은 당시 팀 간판이던 박용택 해설위원. 경향신문 DB



LG 최원테가 원정 유니폼을 입고 지난 30일 잠실 두산전에서 경기하고 있다. LG 트윈스 제공



LG는 그레이 유니폼이 익숙해질 무렵인 2013년 정규시즌 2위로 11년 만에 가을야구에 진출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뒤로 더 높은 곳으로 가지는 못했다. 급기야 2018년 두산전 1승15패의 악몽 속에서 8위로 주저앉자 역사 속으로 집어넣었던 원정 블랙 유니폼을 다시 집어들었다. 이쯤 되니 일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그레이 유니폼’이 유약해 보인다는 시선도 나왔다. LG는 올시즌은 원정 블랙 유니폼을 입고 선두를 달리고 있다.

유니폼 컬러가 팬들과 교감하는, 디자인의 구성 요소만은 아니다. 전통 있는 팀일수록 팀마다의 컬러에는 역사적, 심리적, 정서적 의미가 곁들여지기 마련이다.

다만 유니폼마다의 색들로 팀 이미지를 만들 수는 없다. 오히려 팀마다의 장단기적 경기력이 팀 유니폼 색깔의 구체적 이미지를 완성시킨다.

꽤 오래된 옛날 이야기이지만, 1980년대 한여름에도 신축성도 없어 보이는 검은 바지를 입고 뛰던 해태 타이거즈 야구는 굉장히 시원했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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