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비 쇼크] ‘꿈의 비만 치료제’ 연구자 3인, ‘미국 노벨상’ 래스커상 수상

이정아 기자 2024. 9. 2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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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하베너, 스베틀라나 모이소브, 로테 크누센
GLP-1을 발견해 약물 개발로 이끈 공로 인정받아
올해 래스커상 수상자인 조엘 하베너와 스베틀라나 모이소브, 로테 크누센이다(왼쪽부터)./Joel Habener, The Rockefeller University의 Lori Chertoff, Soren Svendsen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꿈의 비만약’을 개발하는 데 기여한 연구자 3인이 래스커-드베이키 의학연구상을 수상했다. 래스커상은 미국 래스커 재단이 의학·공중보건 연구 분야 연구에 공헌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권위 있는 상으로, ‘미국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래스커 재단은 19일(현지 시각) 조엘 하베너와 스베틀라나 모이소브, 로테 크누센에게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호르몬 연구를 한 공로로 임상의료연구상을 수여했다고 밝혔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와 미국 일라이 릴리가 만든 젭바운드(티르제파타이드)는 모두 GLP-1 유사체로 만든 비만 치료제다. 이들 약은 GLP-1을 모방해 혈당을 낮추고 식욕을 줄여 포만감을 느끼게 한다. 두 약은 원래 각각 오젬픽, 마운자로라는 이름의 제2형 성인 당뇨병 치료제로 나왔다가 체중감량 효과가 확인돼 비만약으로 발전했다.

하베너와 모이소브는 1970년대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 재직할 때 GLP-1 호르몬을 발견했다. 크누센은 덴마크 제약사인 노보 노디스크에서 제2형 당뇨병과 비만 치료용으로 최초 승인된 GLP-1 유사체 약물을 개발했다.

제2형 당뇨병은 혈당 수치를 조절하는 호르몬인 인슐린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해 생기는 성인 만성질환이다. 1970년대에만 해도 당뇨병 치료는 인슐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베너 박사는 이와 반대로 혈당 수치를 높이는 호르몬인 글루카곤에 주목했다. 글루카곤을 만드는 유전자를 찾아 억제하면 글루카곤 분비가 줄어 혈당이 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베너 박사는 글루카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와 비슷한 단백질을 발견했다. 글루카곤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인 GLP-1이다. GLP-1은 음식을 먹으면 위나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식사 후 포만감을 느끼게 한다. 하베너 박사는 네이처지에 “당뇨병 환자에게 인슐린 대신 GLP-1을 투여하면 이론상 몸이 스스로 인슐린을 만들어 혈당을 조절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합성 단백질 생산 시설을 이끌던 모이소브 박사는 GLP-1을 이루는 아미노산 서열을 확인했다. 그리고 GLP-1이 세포의 효소에 잘려 짧아지면 생물학적으로 활성화한 상태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 짧은 GLP-1이 장에서 분비돼 췌장에서 인슐린이 많이 분비되도록 자극해 혈당 수치를 낮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모이소브 박사는 GLP-1를 투여하면 혈당 수치를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을 바로 약물로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인위적으로 투여한 GLP-1은 혈액 속에서 대사돼 약 3분 만에 사라졌다. 이 문제는 제약사의 과학자가 해결했다.

노보 노디스크의 연구자인 크누센 박사는 1996년에 나온 GLP-1 논문을 보고 연구를 시작했다. 쥐의 뇌에 GLP-1을 주입하자 쥐가 식욕을 잃었다는 연구 결과였다. 크누센 박사는 GLP-1이 혈당뿐 아니라 체중 감량 효과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투여한 GLP-1이 몸속에서 머무는 시간을 늘리면 약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GLP-1에 지방산을 붙였다. 그랬더니 GLP-1이 몸속에서 13시간이나 지속됐다. 최초의 GLP-1 유사체 약물인 리라글루타이드가 이렇게 만들어졌다.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비만 치료제 삭센다는 성분이 리라글루타이드이다. 삭센다는 201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제2형 당뇨병 치료에 대해 최초로 승인된 GLP-1 유사체 약물이다.

노보 노디스크 연구진은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일주일 동안 지속되는 GLP-1 유사체를 개발했다. 이는 당뇨병 치료제인 오젬픽(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 개발로 이어졌다. 이 약은 향후 체중을 평균 15% 감량하는 효과가 확인돼 비만 치료제인 위고비로 발전했다.

이들 GLP-1 유사체 약물은 제2형 당뇨병과 비만뿐 아니라 심혈관질환, 수면 무호흡증, 신장질환 등을 치료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약물이 뇌에 미치는 효과와 항염증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최근 GLP-1 유사체 약물이 의료계에 크나큰 돌풍을 일으키며 일각에서는 곧 이들이 노벨상을 수상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로 1945년 이래로 래스커상을 받은 수상자 중 95명이 노벨상까지 받았다.

래스커상 중 생리학 분야인 앨버트 래스커 의학연구상은 면역, 염증 반응으로 항암 효과를 내는 cGAS(고리형 GMP-AMP 합성효소)를 발견한 지젠 첸(Zhijian Chen) 미국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메디컬센터 교수가 받았다. cGAS는 DNA가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으로 망가졌을 때 특정 신호를 내, 이 손상 DNA로 인해 암이 발생하지 않도록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공공보건 분야인 래스커 블룸버그 공공서비스상은 미국 콜롬비아대의 콰라이샤 압둘 카림(Quarraisha Abdool Karim), 살림 압둘 카림(Salim Abdool Karim) 교수 부부가 받았다. 이들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퍼지는 주요 원인을 밝히고 이를 예방하고 치료해 생명을 구하는 방식을 소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부부는 남아프리카에서 HIV가 유발하는 후천면역결핍증(AIDS·에이즈)에 대한 지역사회기반 조사를 실시하고 그 원인과 치료 방법, 확산을 막는 방법에 대해 연구했다.

미국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래스커 상이 꿈의 비만 치료제를 탄생시키는 데 기여한 연구자 3명에게 돌아갔다. 이들의 연구 성과를 소개한 영상./미 래스커 재단

참고 자료

래스커 재단(2024), https://laskerfoundation.org/winners/glp-1-based-therapy-for-obe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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