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소련 시절 생물무기 연구한 비밀 군사시설 대폭 확장"
러, 에볼라 연구 사실도 공개…"생물무기 방어수단 연구" 주장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서방과의 대립을 본격화한 러시아가 옛 소련 시절 생물무기 개발로 악명이 높았던 군 연구시설을 대거 증축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25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러시아 당국은 2022년 모스크바 북동쪽 군사제한구역 내에 있는 '세르기예프 포사트-6'으로 불리는 시설에서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수개월 뒤부터 시작된 이 공사는 기존 건물을 개·보수하고 10개 건물을 추가로 짓는 등 25만 제곱피트(약 7천평)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주목할 부분은 이 시설이 미·소 냉전 시절 천연두와 페스트, 에볼라 바이러스 등 치명적인 전염병의 무기화를 연구하던 곳이란 점이다.
서방 정보 당국자들은 냉전 종식 이후 수십년간 조용하던 이 시설을 증축하는 건 러시아가 생물무기 연구를 다시 본격화하려는 움직임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새로 지어지는 건물 상당수에선 극도로 위험한 병원체를 다루는 시설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엿보인다고 WP는 짚었다.
미국 상업위성업체 맥사와 플래닛랩스가 촬영한 최근 2년간의 위성사진을 보면 '세르기예프 포사트-6' 내부에 신축된 건물 중 4개 동의 지붕에는 수십개의 공조기(AHU)가 설치됐다.
이는 오염을 우려해 격벽으로 내부를 나눠놓은 연구시설에서 보이는 특징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극도로 위험한 병원체를 다루는 생물안전도 최고등급(BSL-4) 연구시설은 공기압 제어 및 여과 시설을 갖추고 실험실과 이외 공간을 철저히 분리함으로써 과학자들을 감염으로부터 보호한다.
1990년대 소련의 생물무기 시설을 연구했던 앤드루 웨버 전 미국 국방부 차관보는 이런 시설의 경우 시간당 12∼15차례씩 내부 공기를 교체하면서 내부 기압을 대기압보다 낮게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웨버 전 차관보는 과거 생물무기 연구에서의 역할로 극히 악명이 높은 은밀한 군사 시설 내부에 새로운 연구 역량을 추가하기로 한 러시아 당국의 결정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미국 제임스 마틴 비확산 연구센터(CNS) 소속 전문가 마이클 두이츠먼은 냉전 종식 이후 엄청난 기술 발전이 있었던 점을 고려할 때 "(생물무기) 프로그램이 재개된다면 (무기화) 역량이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강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르기예프 포사트-6를 찍은 위성사진에는 시야확보를 위해 주변 숲을 벌채하고 동선을 극도로 제약하는 등 최고 수준의 보안 체계를 갖추는 정황도 포착됐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생물무기를 사용한 징후는 없지만 서방 정보기관들은 관련 동향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당국자 일부는 세르기예프 포사트-6에 소속된 과학자들이 실제로 에볼라 바이러스 등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시설을 담당하는 군지휘관 세르게이 보리세비치는 지난 4월 러시아군 기관지 '붉은 별'과 한 인터뷰에서 "(이곳은) 러시아의 생물학 방어 체계의 근간"이라면서 "(세르기예프 포사트-6은) 생물무기로부터 병사와 주민을 보호할 의학적 방법을 개발하도록 설계됐다"고 주장했다.
단기전으로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키지 못하고 전쟁이 장기화하자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생물무기 개발을 도와주고 있다는 음모론을 펴온 러시아는 이를 구실 삼아 자국내 생물무기 관련 시설을 되살린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추정했다.
웨버 전 차관보는 "생물무기를 갖고 있다고는 결코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들(러시아)이 하는 말에는 미묘한 힌트가 숨겨져 있다"면서 "그건 '우리는 (생물무기)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이걸 안 쓸 것이라고는 생각지 말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편, 생물무기 개발 시설과 백신 개발 시설은 외견상으로는 구분이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국방부는 관련 질의에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WP는 전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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