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인상에 압도당했다. 라이더들이 '빵'이라고 부르는 연료탱크의 존재감부터 어마어마했다. 명품 바이크로 유명한 두카티(DUCATI)가 선보인 멀티스트라다 V4 랠리(MULTISTRADA V4 RALLY) 버전. 이름에 들어가 있듯이 랠리에 비중을 둔 모델이다.
두카티 소속인 안드레아 롯시가 2021년 멀티스트라다V4를 타고 트랜스아나톨리아랠리 B4클래스에서 우승을 하며 랠리 성능을 입증했다. 이 대회는 2010년 시작한 대회로 튀르키예에서 7일간 14개 도시를 돌며 대부분 비포장길인 2300km를 달리는 대회다.



멀티스트라다 V4 랠리는 연료탱크가 기본 30리터인데, 추가로 8리터도 붙일 수 있는 방식이다. 시트에 앉으면 탱크에 탄 듯한 느낌마저 든다. 멋진 레드(RED) 색상의 바이크는 가는 곳마다 시선집중이다. 꽉막힌 도로 옆에 선 차량 운전자들은 "이거 얼마짜리냐?" "두카티에서 이런 것도 만드냐?" 등등 질문 공세를 펼쳤다.
오랫만에 장거리 시승에 나섰다. 시트고가 840mm. 마조끼 서스펜션의 프리로드 조절 기능으로 낮췄다고 하지만 170cm 정도의 한국인 남성 평균키(?)인 라이더가 적응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양평으로 향하는 국도에서 까치발로 버티며 찔끔찔끔 진행하다보니 진이 다 빠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체가 풀리면서 멀티스트라다 V4랠리의 진가가 나타났다. 정지 상태에서 2단이나 3단까지는 여느 리터급 바이크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V형 4기통 엔진이라는데 너무 부드러운 거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3단부터 가속을 할 때 느낌은 완전히 신세계였다. 7000RPM을 넘어가면서 터지는 배기음과 손맛은 예술이었다.
심지어 5단, 6단에서의 가속 능력은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1158cc 4기통 170마력의 힘이 이런 거구나'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게다가 퀵시프트 기능이 있어서 클러치 레버를 잡던 왼손이 할 일이 대폭 줄었다. R차에서나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가속의 기쁨이 향긋한 봄기운과 함께 오롯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렇다고 주행풍이 함께 스며드는 건 아니었다. 윈드실드가 20mm 넓어지고 40mm 높아졌기 때문에 바람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윈드실드도 가운데 레버를 엄지와 검지로 잡고 들어올리거나 내려주면 된다. 너무나 직관적이어서 굳이 전동으로 안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라디에이터의 뜨거운 기운은 라이더를 향하지 않고 흘러나가도록 설계된 덕분에 다리가 뜨거울 일이 없었다. 그 아래 에어덕트는 신선한 공기를 보내주기도 하고, 겨울철에는 공기흐름을 차단해 추위를 막을 수도 있게 했다는 게 두카티의 설명이다.
고속 코너링도 압권이었다. 평소처럼 코너를 돌아가다가 속도를 보니 내 생각의 2배 속도였다. 스콜피온랠리STR 타이어의 접지력과 역회전 크랭크샤프트가 만들어내는 가벼운 핸들링 덕분에 건조중량 240kg, 사람과 짐까지 합쳐 350kg에 가까운 바이크를 너무나 가볍게 조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330mm 대구경 디스크 브레이크의 성능도 바이크에 대한 신뢰를 높여줬다. 내 신체의 일부를 놀리는 것처럼 바이크를 다룰 수 있게 해준 공을 논할 때 안정적이고 즉각적인 브레이크 시스템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타이어 사이즈는 전륜 120/70 ZR19, 후륜 170/60 ZR17이고, 브레이크는 전륜 330mm 더블디스크, 후륜 265mm 싱글디스크로 든든하다.
국도엔 제법 차량이 많았다. 이때 최고의 성능을 발휘하는 게 어댑티브 레이더 크루즈 컨트롤 (Adaptive Radar Cruise Control). 적당한 속도에 맞춰 세팅을 해 놓으면 앞 차와 안정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항속을 하는 기능이다. 덕분에 아름다운 5월의 신록을 두 눈에 가득 담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라이딩 내내 스로틀을 쥐어짜고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장거리 연속 투어 이후에 찾아오는 '오른손 저림 현상'이라는 불청객도 피할 수 있었다.


강원도의 깊은 계곡 임도에 들어갔다. 엔진 아래쪽 오일팬 크기를 줄여 지상고가 높아진 덕분에 울퉁불퉁한 길도 거침 없이 주파했다. 주행모드를 '엔듀로'로 바꿔주면 출력은 114마력으로 제한되고, 갑자기 앞바퀴가 들리는 걸 방지하는 '윌리컨트롤'은 꺼진다. 돌길을 지나는데, 핸들이나 발쪽으로 진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임도는 일반도로에서 타는 것처럼 타도 된다는 설명이 '블러핑'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이틀째에는 비가 쏟아졌다. 여름 장마비 같았다. 하지만 핸들 열선 그립과 시트 열선 덕분에 전혀 춥지가 않않았다. 주행모드를 레인으로 바꾸니 타이어 역시 미끄러짐이 없어 마음껏 스로틀을 사용할 수 있었다. 170마력이라고 해서 울컥거리며 미친듯이 튀어나가는 느낌이 없다는 건 정말 큰 장점이었다. 우아한 라이딩이란 이런 게 아닌가 싶었다. 비가 올 때는 바이크는 안 타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멀티스트라다 V4랠리는 그런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한 녀석이었다.


전천후로 우아하고 안정적인 라이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핵심은 뭐였을까? 자료를 찾아보니 '스카이 훅'서스펜션이었다. 하늘에 매달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줘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차체의 움직임과 라이더가 얼마나 감는지를 체크를 매 순간 댐핑을 조절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기존 V4S보다 서스펜션 작동 범위가 늘어나서 훨씬 부드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프리로드 조절 버튼을 길게 누르면 바이크 높이를 최저로 낮추는 기능도 있었다. 다시 길게 누르면 원래 설정된 수치로 복원되는 방식이다. 이걸 알았더라면 밀리는 도로에서 까치발로 고생을 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왜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예습이 중요하다고 침을 튀어가며 채근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이 멋진 바이크의 가격은 4400만원. 역시 명품 바이크답게 비싸다. 하지만 전국을 돌며 유람하고 모토캠핑도 즐길 수 있는 능력자들에겐 멋진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무나 탈 수 있다면 굳이 두카티를 그중에서도 멀티스트라다 V4 랠리를 선택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지피코리아 김기홍 기자 gpkorea@gpkorea.com, 사진=지피코리아, 두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