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드의 반란]③ HBF 승부수…삼성·SK, 누가 먼저 웃을까

/생성형AI(챗GPT)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HBF(고대역폭플래시)를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HBM에서 축적한 적층·패키징 경험을 낸드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셈법이 벌써부터 차이점을 드러낸다.

HBF 시장 선점의 관건은 어떻게 기술을 구현하고 이 기술을 어떻게 사업화할 것인지다. 메모리 구조를 통합해 새로운 수요를 만들지, 수익성이 검증된 영역부터 단계적으로 점령해나갈지에 따라 승부가 갈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15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에 이어 HBF로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도 선두 경쟁에 본격 나설 것으로 보인다.

HBF가 HBM에 이어 메모리 투톱의 최대 격전지가 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AI가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와 대규모 언어모델이 고도화되면서 연산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졌지만 데이터를 저장하고 불러오는 과정은 여전히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계산 능력은 높아졌는데 이를 뒷받침할 저장 장치가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다. 낸드 역시 더 빠른 속도와 낮은 지연 시간이 요구된다.

AI 진화가 부른 HBF…삼성·SK 엇갈린 전략

이 같은 변화 속에서 두 회사의 접근 방식은 뚜렷이 갈린다. 삼성전자는 HBM과 D램, 낸드를 아우르는 통합 전략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모리 계층을 하나의 구조로 묶어 'AI 서버용 솔루션' 형태로 고객사들에 제안하겠다는 구상이다. 낸드를 단순 저장 장치가 아니라 고성능 연산을 보조하는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패키징과 인터페이스 설계 역량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거론된다.

반면 SK하이닉스는 HBM에서 확보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HBF를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무작정 물량을 늘리기보다는 수익성이 높은 기업용·데이터센터용 제품에 먼저 적용해 시장 반응을 보겠다는 접근이다.

이미 인수한 솔리다임(Solidigm, 옛 인텔 낸드사업)을 통해 데이터센터용 SSD 사업을 강화해온 만큼 HBF 역시 이 같은 고성능 제품군을 중심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값이 낮은 범용 제품을 많이 파는 대신 이익이 많이 남는 고성능 제품 비중을 늘려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기술 구현의 속도와 범위에서도 차이가 감지된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간 통합 설계로 생태계 주도권을 확보하려 한다면 SK하이닉스는 특정 고객군에 최적화된 형태로 단계적 상용화를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은 HBM과 낸드를 함께 설계해 새로운 형태의 메모리 구성을 만들려는 방향이고, SK하이닉스는 검증된 시장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하려는 접근이 될 수 있다.

글로벌 키플레이어들도 '촉각'…상용화까진 '아직'

글로벌 낸드 시장의 다른 주요 업체들도 HBF 흐름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 일본의 키옥시아(Kioxia)는 고단 V낸드 기술 고도화에 속도를 내면서 기업용 SSD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의 웨스턴디지털(Western Digital) 역시 데이터센터용 SSD와 고성능 스토리지 제품 비중을 확대하며 AI 서버 수요에 대응 중이다.

두 회사 모두 아직 HBF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전송 속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기술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HBF가 시장 표준으로 자리 잡을 경우 이들 역시 패키징 구조 변화나 전략적 제휴를 통해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의 YMTC는 고단 적층 기술을 빠르게 끌어올리며 내수 시장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중국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수요를 기반으로 물량을 늘리며 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다만 HBF와 같은 고대역·저지연 구조에서는 여전히 기술 격차가 크다는 평가가 많다. 미국의 수출 규제로 첨단 장비에 대해 중국업체들의 접근이 제한돼있다는 점도 변수다. 업계에서는 HBF 상용화가 본격화될 경우 기술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과, 반대로 중국 내 독자 생태계 구축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시각이 엇갈린다.

HBF가 단기간에 시장을 뒤흔들 변수로 작용할지에 대해서는 신중론도 있다. 인터페이스 표준화와 주요 고객 채택 시점, 실제 데이터센터 투자 흐름이 맞물려야 본격적인 수요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일부 AI 서버에 제한적으로 적용되며 기술 검증 단계를 거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이런 까닭에 HBF 승부는 누가 먼저 기술을 완성하느냐보다 이를 어떻게 시장에 안착시키느냐에 달려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통합 구조로 판을 넓히려는 삼성전자와 수익성 중심으로 적용 범위를 조율하려는 SK하이닉스 가운데 어느 쪽 전략이 AI 시대의 낸드 시장에 더 적합할지 주목된다. 더불어 삼성, SK가 주도하는 AI 메모리 시장에 HBF를 중심으로 새로운 강자가 탄생하게 될 수 있다는 점도 앞으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장소희 기자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