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굿즈숍 오픈런에 품절 대란까지…대한민국 조명한 《케데헌》의 힘
한국의 갓·노리개·민화도 주목…관광 효과 기대감에 지자체도 팔 걷고 나서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7월29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문이 열리자 수백 명의 대기자가 전시장이 아닌 뮤지엄숍으로 향했다. '굿즈'를 구매하기 위해서다. 오픈하자마자 매장은 인파로 북적였다. 키링과 소주잔 등을 파는 진열대 곳곳에는 '품절' 안내문이 붙었다. 대학생 김지연씨(25)는 "얼마 전에 '오픈런'(개장 직후 빠르게 상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갓 키링'을 구매했는데 재입고를 기다리고 있다"며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고 한국 문화에 관심이 커진 외국인 친구가 많아 선물을 사러 왔다"고 했다.
'갓 키링'을 비롯해 '까치 호랑이 배지', 호랑이 팔찌 등 인기 상품을 찾는 사람들의 문의가 이어졌다. 국립중앙박물관 뮤지엄숍 관계자는 "'오픈런'을 하더라도 입고 여부가 불투명해 자주 찾아오시는 분이 많다"며 "인기 상품의 경우 현재 온라인 예약 판매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 열풍이 '뮷즈(뮤지엄+굿즈) 대란'에도 힘을 보태면서 국립중앙박물관은 전 세계 박물관 중 가장 뜨거운 곳이 됐다.


'한국적인 것들'에 세계인 이목 집중
《케데헌》에 등장한 '한국적인 것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 전통문화와 한국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상품도 많아졌다. 한국의 방방곡곡을 찾는 이도 늘어났다. 콘텐츠 속에서 갓과 도포를 착용한 남성 아이돌그룹 사자보이즈를 보고, 인사동 한복 대여점에서 갓을 찾는 관광객도 많아졌다는 후문이다. '라멘'이 아니라 '라면'을 먹는 모습에 호기심을 느끼고, 배경이 된 서울 북촌 한옥마을과 명동 거리를 찾고 싶어 한다. K팝에 방점을 찍은 넷플릭스 콘텐츠 한 편이 전 세계에 대한민국을 환기시키고 있다.
《케데헌》이 넷플릭스에 공개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인기는 여전히 뜨겁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1위에 오른 데 이어 OST는 빌보드까지 점령했다. 특히 어떤 기업과도 마케팅 협찬이나 간접광고(PPL)를 맺지 않은 넷플릭스 영화가 유통 업계와 문화산업까지 움직이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영화에서 3인조 걸그룹 헌트릭스가 먹는 라면의 이름은 '동심 신(神)라면'으로, 농심 신라면을 떠올리게 한다. 멤버 조이가 먹는 매운 감자칩은 새우깡을 닮았다. 신라면은 《케데헌》 관계자들이 밝힌 '좋아하는 라면 브랜드'로도 언급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틱톡 등에는 조이가 먹는 과자를 찾는 모습이나 새우깡을 설명하는 영상 업로드가 이어졌다. 이 외에도 봉봉을 연상시키는 음료캔, 빼빼로가 떠오르는 빨간 과자 상자, 소다팝 무대 뒤에 보이는 이니스프리와 비슷한 간판, 아트박스를 떠올리게 하는 편지지 등이 영화에 등장했다.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 예능 등 콘텐츠에 PPL 형태로 등장해 주목을 받은 K굿즈는 많았다. 그러나 《케데헌》은 한국의 일상과 문화를 배경처럼 구성했을 뿐, 직접적인 상품을 등장시키지 않았다. 작품에 등장하는 과자나 라면, 화장품 등 상품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전 세계 시청자에게 연상됐고, 콘텐츠 배경이 되는 한국의 다양한 장소가 뇌리에 박히면서 자연스럽게 'K바이럴'이 이뤄진 것이다.
해당 상품들의 글로벌 SNS 언급량이 늘어나면서 예상치 못한 수혜를 보게 되자, 일부 기업은 흐름을 놓치지 않고 움직였다. 《케데헌》에 등장하는 까치 '서씨'를 활용한 삼성이 대표적이다. 서씨가 지닌 3개의 눈은 갤럭시 스마트폰의 후면 카메라 3개를 떠올리게 한다. 서구권에서 서씨에게 '갤럭시 버드' '갤럭시 까치'라는 별명을 붙인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넷플릭스와의 협업을 통해 서씨의 눈이 갤럭시Z 폴드7의 후면 카메라로 전환되도록 연출한 영상을 내놨다. 언팩 직전에도 《케데헌》의 서씨와 호랑이 더피가 담긴 티저 영상을 공개한 바 있다.
콘텐츠의 파급력은 문화·관광 산업까지 움직이는 모습이다. '케데헌 명소'들도 조명됐다. 헌트릭스 루미와 사자보이즈 진우가 대화를 나누며 걸었던 낙산공원 성곽길, 한옥이 모여 있는 북촌 한옥마을, 사자보이즈의 공연 배경으로 등장한 남산서울타워,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가 만난 명동 거리 등이다. 극 중에 등장하는 'Han의원'은 동대문구 서울한방진흥센터를 연상시켰다. 헌트릭스의 무대가 펼쳐진 서울올림픽 주경기장, 뮤직비디오가 상영된 삼성역 전광판 등도 영화에 등장했다.



굿즈 수요 늘어…'성지 순례' 열풍도
한국인들만 아는 장면들도 한국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키웠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수저 아래 냅킨을 받치는 모습, 몸을 담그며 피로를 푸는 목욕탕 문화, 소파에 앉는 대신 바닥에 앉아 소파를 등받이 삼는 모습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디테일'을 찾는 재미에 K드라마와 한국 문화에 익숙한 해외 팬들의 호응이 이어졌다. 서울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식 인스타그램과 공식 관광 정보 웹사이트 '비짓서울' 영문 계정 등에 《케데헌》 속 배경 장소들을 소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자부심이 느껴지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며 "서울시 브랜딩에 눈물나게 고마운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다.
K컬처의 '뿌리'로 꼽히는 박물관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전시품 앞에서 《케데헌》 캐릭터들의 모티브가 된 전통 민화 '작호도', 헌트릭스 멤버들이 달고 나오는 노리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실제로 영화에는 경복궁 근정전, 병풍 '일월오봉도' 등도 등장한다. 이로 인해 한국 문화유산에도 관심이 이어진 것이다. 인파는 온라인에도 밀려왔다. 굿즈를 판매하는 온라인숍 방문자는 하루 평균 7000명에서 50만 명(7월 2주 차 기준)까지 늘어났다.
《케데헌》에 등장하는 호랑이, 갓, 까치 등을 모티브로 한 굿즈가 입소문을 타면서 이들의 매출액은 올 상반기에만 전년보다 34% 증가한 115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키링, 팔찌, 스티커 등 가볍게 소비하는 굿즈들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많아졌다. '소장품'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접하는 '소품' 형태로 문화유산과 전통문화가 대중에 스며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국가유산진흥원은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함께 노리개를 제작하는 원데이 클래스를 7월말까지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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