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에스와 메리츠금융, 그리고 코리아 디스카운트 [세상읽기]

한겨레 2025. 3. 1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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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안이 지난 1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279명 가운데 찬성 184표, 반대 91표, 기권 4표로 통과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김우찬 | 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

엘에스(LS)일렉트릭의 주가가 급락했다. 유망 자회사인 케이오시(KOC)전기가 상장 절차를 밟고 있다는 소식이 시장에 전해지면서, 2월21일부터 3월6일까지 단 9거래일 만에 18.5%나 하락했다. 투자자들이 중복 상장을 우려한 탓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구자은 엘에스그룹 회장은 지난 6일 인터뷰에서 “중복 상장이 문제라면 주식을 사지 않으면 된다”고 맞받아쳤고, 그 직후 주가는 더욱 큰 폭으로 떨어졌다. 엘에스그룹은 케이오시전기뿐만 아니라 다른 계열사들의 중복 상장도 준비하고 있다.

모회사 일반주주들이 중복 상장을 반대하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신주인수권이 침해되기 때문이다. 유망한 비상장 자회사가 필요로 하는 투자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모회사가 주주배정 방식으로 유상증자를 하면 모회사 일반주주들은 자신의 지분율만큼 신주를 배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자회사가 직접 상장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기업공개는 일반공모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모회사 일반주주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물론 모회사 일반주주들도 일반공모 청약에 참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업성이 뛰어난 기업일수록 경쟁이 치열해져 실제 배정받는 주식 수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모회사 일반주주들은 방식은 다르지만, 신주가 제3자에게 발행되었을 때와 유사한 지분 희석 효과를 경험하게 된다.

자회사 일반주주들에게도 중복 상장은 결코 유리하지 않다. 총수 일가가 모회사의 지분을 더 많이 보유한 상태에서 모회사와 자회사가 거래를 하면, 거래 조건은 자연히 모회사에 유리하게 설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거래가 이루어지면 손해는 고스란히 자회사 일반주주들에게 돌아간다. 대표적인 예가 지주회사와 자회사 간의 상표권 사용료 계약이다. 상표의 가치는 자회사가 사업을 통해 높였음에도, 사용료를 수취하는 것은 지주회사이며 그 금액은 지주회사의 광고선전비를 훨씬 웃도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중복 상장을 강행하는 이유는 총수 일가가 지배권을 유지한 채 외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만약 엘에스일렉트릭이 자회사가 필요로 하는 투자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주배정 방식으로 유상증자를 하면, 지배회사인 엘에스가 이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엘에스가 충분한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실권하게 되면 엘에스일렉트릭에 대한 지배권이 약화된다. 엘에스가 자체적으로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총수 일가가 직접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구 회장이 “투자하려면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방법이 제한적이다”라고 발언한 것도 바로 이러한 배경 때문일 것이다.

결국 중복 상장은 총수 일가가 외부 주식 투자자금을 끌어들이면서도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마법과도 같다. 영미권에서는 기업이 성장할수록 창업자의 지분율이 자연스럽게 낮아지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마법 덕분에 지분율이 낮아지지 않는다. 즉, 중복 상장은 총수 일가가 손쉽게 본인들의 경제력을 확대할 수 있는 수단인 것이다.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서라도 중복 상장은 억제되어야 한다.

물론 중복 상장을 스스로 포기한 지배주주도 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2023년 1월, 상장 자회사였던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완전자회사로 전환했다. 신주를 발행해 자회사 일반주주들의 주식과 교환하는 포괄적 주식교환을 단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조정호 회장의 메리츠금융지주 지분율은 75%에서 46%로 줄어들었지만, 그가 손해를 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2022년 11월 주식교환 발표 이후 올해 2월 말까지 메리츠금융지주의 주가는 4.5배 상승했고, 덕분에 조 회장은 삼성의 이재용 회장을 제치고 우리나라 주식 부호 1위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메리츠의 사례는 극히 예외적이며, 다른 총수들이 이를 따라갈 가능성은 낮다. 결국 중복 상장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강력한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 주주총회에서 물적 분할을 승인할 때 지배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안, 자회사가 상장할 때 모회사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방안, 모회사 일반주주에게 자회사 상장 주식에 대한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방안 등을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 유일한 승자는 총수 일가뿐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중복 상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를 시정하지 않는 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결코 해소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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