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 지커(Zeekr)의 중형 전기 SUV ‘7X’가 오는 상반기 국내 시장에 첫선을 보인다. 주목할 점은 가격이다. 지커코리아는 아직 공식 출시가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5000만~6000만원대에 책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럽 시장에서 8000만원대에 판매되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수준이다.

지커 7X를 단순히 ‘저렴한 중국차’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볼보와 폴스타를 거느린 지리(Geely) 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SEA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이들 프리미엄 브랜드와 핵심 기술을 공유한다. 800V 고전압 충전 시스템을 탑재해 배터리를 10%에서 80%까지 채우는 데 10~15분이면 충분하다. 테슬라 모델 Y가 사용하는 400V 시스템보다 체감 충전 속도가 확연히 빠른 셈이다.

성능 면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 최상위 AWD 트림은 646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하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3.8초 만에 도달한다. 휠베이스는 2925mm로 모델 Y(2890mm)보다 35mm 길어 실내 공간 여유가 더 크다. 나파 가죽 시트, 마사지 기능, 21개 스피커로 구성된 야마하 사운드 시스템, 36인치 HUD, 16인치 OLED 센터 디스플레이 등 고급 사양을 대거 탑재해 테슬라의 절제된 인테리어와는 확연히 다른 럭셔리 지향 노선을 걷는다.

지커 7X의 등장은 이미 치열한 국내 중형 전기 SUV 시장에 또 다른 변수를 던진다. 테슬라 모델 Y는 지난해 6만대 가까운 판매량으로 수입차 판매 순위 3위에 올랐다. 최근에는 가격을 4000만원대 후반으로 낮추며 보조금 100% 수혜 구간을 공략하고 있다. 여기에 현대 아이오닉 5, 기아 EV6 등 국산 전기차와 제네시스 GV70 전동화까지 가세하며 경쟁 구도는 날로 복잡해지고 있다.

만약 지커가 5000만원대 중반에 안착한다면, 빠른 충전 속도와 넓은 실내 공간, 고급 사양을 갖춘 프리미엄 전기 SUV를 합리적 가격에 제시하는 셈이 된다. 이는 테슬라는 물론 국산 브랜드까지 압박하며 중형 전기 SUV 시장의 가격 기준선을 한 단계 더 낮추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중국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여전히 호의적이지 않고, 초기 서비스 네트워크 구축이 미흡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중고차 시장에서 잔존가치가 어떻게 형성될지 불투명하다는 점은 구매 결정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유럽 대비 대폭 낮춘 가격은 시장 진입 전략으로는 효과적이지만, 수익성 악화를 감수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결국 지커 7X의 성패는 가격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브랜드 신뢰를 얼마나 빠르게 구축하느냐, 충전 인프라와 서비스 체계를 얼마나 촘촘히 갖추느냐가 관건이다. 중국 전기차가 한국 시장에서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을지, 아니면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힐지 지켜볼 대목이다. 국내 전기차 시장은 본격적인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소비자들에게는 기회지만, 제조사들에게는 생존을 건 전쟁터가 되고 있다.

Copyright © 구름을달리다.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 학습 이용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