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갈수록 가치를 인정 받는 보석 같은 모터사이클, 할리데이비슨 팻보이

모터사이클이라고 하면 대부분 남성향을 상징하는 탈것 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모든 모터사이클이 다 그렇지는 않다. 생각보다 아주 귀여운 모터사이클도 있고 남성보다는 여성 라이더에게 더 잘 어울리는 그런 모델들도 생각보다 꽤 많이 존재한다. 이번 시승기의 주인공인 할리데이비슨의 팻보이는 다양한 모터사이클 모델 중에서도 그야말로 남성적인 매력을 강하게 뿜어내는 그런 대표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뚱뚱한 소년이라니 이름부터 남성스러운 느낌이 강하게 든다.

모터사이클에 관심이 많거나 할리데이비슨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팻보이라는 이름이 매우 익숙할지 모르겠지만 물론 처음 듣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팻보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이라도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이라면 영화에서 이 모델을 한 번쯤 보긴 했었을 가능성이 높다. 할리우드 영화의 대명사 중 하나인 터미네이터에서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타고 나온 바로 그 모델이기 때문이다. 터미네이터2에서 주인공 존코너를 지키기 위해서 팻보이를 타고 나타난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뒤쫓는 커다란 자동차를 피해 질주하던 모습을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터미네이터2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을 하면서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타고 나온 팻보이는 단순한 모터사이클이 아니라 남성의 탈것을 상징하는 대명사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근육질 몸에 짧은 머리,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입고 나온 가죽재킷이나 선글라스 같은 아이템들과 함께 말이다. 영화가 너무 큰 흥행을 해버리는 바람에 1990년대를 상징하는 문화적인 아이콘이 되어버렸는데 덕분에 팻보이가 등장하는 모습은 지금도 영화 속 모터사이클이나 라이더들이 손꼽는 액션 바이크 씬 중 순위권을 다투는 장면으로 유명하다. 물론 이 장면을 보고 할리에 입문 했다거나 그 모습에 반해서 모터사이클을 타기 시작했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모터사이클 문화에서는 아직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영화 속 화려한 등장으로 그야말로 빵 떠버린 팻보이는 그 후로도 할리데이비슨의 라인업 중에서 베스트셀러 모델로 자리 잡으며 존재감을 계속 이어갔고 지금까지도 팻보이의 인기는 변함이 없다. 바로 그 증거가 이 모델인데 이 모델이 바로 역사를 이어온 2025년식 최신형 팻보이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많은 관심을 받았을 때부터 팻보이를 상징하는 디자인적인 요소가 있었다. 일단 낮고 긴 차체와 마치 남성의 근육질 같은 볼륨감 있는 프론트 포크, 그리고 그 아래 위치하고 있는 육중한 디스크 휠이 팻보이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디자인 포인트인데 최신형 팻보이는 보시다시피 지금도 그 특징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조금씩 바뀐 부분들은 있지만 팻보이는 가장 큰 특징들을 그대로 이어나가면서 새로운 신모델들을 꾸준히 선보였는데 전체적인 외관 디자인은 첫 출시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번쩍번쩍한 크롬으로 마무리한 프론트 포크는 이제는 뭐랄까 아이콘 같은 느낌이고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마무리된 18인치 알루미늄 캐스팅 휠은 보고 있으면 마치 조각품 같은 느낌도 난다. 프론트에 160/60, 리어에 240/40 사이즈의 타이어와 그 위에 위치하는 널찍한 휀더도 너무 잘 어울린다. 뒤에서 보면 존재감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래도 곳곳에 현대적이고 세련된 변화점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데 아무리 인기가 많은 팻보이라고 해도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과 소비자들의 취향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그건 뭐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여전히 강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싱글 헤드라이트, 팻보이라는 이름과 잘 어울리는 큼지막한 사이즈의 연료탱크, 엔진에서 뻗어 나온 두 가닥의 두껍고 빛나는 머플러 등 35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고유한 스타일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 오랜 시간 지속된 이런 외형 디자인 때문에 팻보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스타일이 정해져 있기도 하는데 클래식한 스타일을 좋아하거나 영화 속 아놀드 슈워제네거처럼 근육질의 남성향이 강한 라이더들이 가장 선호한다고 보면 된다. 팻보이의 디자인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면 아무래도 클래식과 남성 이렇게 두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팻보이의 엔진은 1990년 처음 만들어졌을 때 그 당시에 가장 큰 1,340cc 배기량의 에볼루션 브이트윈 엔진을 탑재했었다. 시동을 걸면 느껴지는 엔진의 떨림과 배기음은 할리데이비슨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마음 설레이게 하는 그런 느낌이다. 시동만 걸고 있어도 느껴지는 박동감과 스로틀을 조금만 비틀어도 대답하는 거친 반응은 달리기 전부터 즐거워진다.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팻보이에 장착된 엔진들도 계속 진화했지만 그 성격만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데 지금은 1,923cc의 밀워키에이트 117 커스텀 엔진을 탑재하면서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모델로 거듭났다.

25년식 팻보이에 장착된 엔진은 4,800rpm에서 104마력의 최고출력을 내고 3,000rpm에서 171Nm의 최대토크를 보여준다. 웬만한 자동차와 비슷한 배기량인 1,923cc의 엔진은 리터당 20km의 연비를 보여주는데 역시나 이런 모델을 소개하면서 효율 같은 걸 얘기하는건 아닌 것 같긴 하다. 이런 모델들은 우리의 가슴이 뛰게 만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넓고 편한 시트에 앉아 시동을 걸면 확실히 편해 주행풍을 그대로 맞아야 하는 모델이지만 이 정도로 편하면 장거리 주행도 거뜬히 문제없겠다는 느낌을 받는다. 무게중심이 낮고 시트고 또한 낮아 타는 것은 쉬운 편이지만 그래도 힘이 없으면 차에 끌려 다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배기량도 높아 스로틀을 슬쩍만 비틀어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저속에서 묵직한 토크 덕분에 앞으로 튀어나가기 때문에 잘 컨트롤해야 한다. 중속에서 고속으로 치고 나아갈 때는 쾌감을 느낄 수 있지만 아무래도 저속에서는 조금 조심해야한다.

초창기 팻보이는 굵직굵직한 스타일의 남성적인 디자인에 가장 크고 힘쎈 엔진을 넣어 완성시킨 마초스러운 모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열광했고 충분히 만족해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세상이고 팻보이에도 최신 기술의 적용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밖에 없다. 연료 잔량은 물론이고 기어 단수, 트립미터까지 보여주는 디지털 계기판은 물론이고 주행모드도 선택할 수 있는 최신형 팻보이다. 안전을 위해 ABS와 트랙션 컨트롤, 드래그 토크 슬립 컨트롤에 타이어 공기압 모니터링 시스템까지 지원되니 이건 일본 브랜드의 슈퍼스포츠 모델 스펙과 비교해도 크게 빠지지 않은 수준이다. 할리데이비슨에도 이제 USB-C 타입 충전포트가 기본으로 지원되는 세상이라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나.

아니 이건 팻보이라고. 팻보이에 대체 그런 최첨단 기능들이 무슨 필요야? 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일부 있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십 년도 훌쩍 넘은 오래 전에 팻보이를 처음 시승했을 때 그런 최첨단 기능들 없이도 충분히 재미있게 시승했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이 그렇게 변해버렸는걸. 하지만 그런 최첨단 기능들은 뭐든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다. 그것이 안전이 됐든 편리가 됐든 뭐든지 간에 말이다. 라이더에게 심적으로도 든든하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안전에 도움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엔진이 업그레이드 되고 미사여구들이 많이 추가됐지만 스로틀을 비틀어 달려보면 팻보이는 역시나 팻보이다. 덜컥 하고 크게 들리는 변속 소리도 여전하고 부다당 하며 앞으로 강하게 튀어나가는 모습은 영락없는 마초의 느낌 그대로다. 어떤 모터사이클은 유로 5+환경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성격이 조금 유순해지기도 한다지만 팻보이에게 그런건 해당되지 않는다. 널찍한 핸들바를 잡고 공도에 나가보면 도로를 정복한 기분이 들어 어깨가 으쓱하다. 팻보이를 타면서 지나가는 남자들의 시선을 즐기는 건 여전한 재미고 타고 내릴 때 어디에 세워놔도 존재감 하나 만으로 말 그대로 폼이 난다. 아주 미세한 스로틀 조작만으로 이렇게 크고 거대하고 육중한 쇳덩어리가 거침없이 움직이는 건 언제 경험하더라도 신기할 따름이다.

앞뒤로 쇼와제 서스펜션과 두툼한 시트로 승차감은 편한데 여러 가지 도로의 변수들이 만들어내는 충격들을 잘 잡아줘서 안심하고 주행할 수 있다. 프론트 서스펜션에 듀얼 벤딩 밸브 시스템을 더한 포크가 장착되어 있고 2개의 밸브가 갖춰진 카트리지 시뮬레이터가 더해져 압축과 신장의 감쇠력을 조절해 더 부드러우면서도 향상된 핸들링을 제공한다. 리어 서스펜션은 모노 쇼크 업소버로 시트 하단에 보이지 않게 장착되는데, 유압식 예압 조절 기능을 갖추고 있어서 동승자나 짐 적재 여부, 도로 상황 등에 맞춰 세팅을 변경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똑똑하다. 마초라는 이름으로 기계적인 성능이 떨어져도 모든게 용서되던 팻보이는 이제 없다. 브레이크 성능도 직발에서 달리기 성능 만큼이나 넉넉하게 세팅돼서 프론트에 300mm 싱글 디스크와 4피스톤 캘리퍼, 리어에 292mm 디스크와 2피스톤 캘리퍼 조합으로 장착되어 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해도 육중한 무게가 안전하게 멈춰서는데 직접 타보면서 제동성능을 경험해 보면 꽤나 든든하다.

차체가 워낙 크고 무겁긴 하지만 지상고와 시트고가 낮아 키가 작은 사람이라도 양발이 다 닿으니 시동을 끈 상태에서 이동하기도 그렇게까지 버겁지는 않다. 타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회전반경이 넓어 좁은 도로나 골목 등에서 회전이나 유턴 등이 쉽지 않다는 점 정도인데 이런 성향의 모델을 타는 라이더들은 다들 요령이 생겨서 좀 크게 돌아가거나 한다. 장단점이 워낙 명확한 모델이고 취향 저격이 확실해서 호불호는 갈릴 수 있겠지만 아마 만족하는 사람들은 만족도가 아주 높을 거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국내에는 빌리아드 그레이, 비비드 블랙, 블루 버스트, 위스키 파이어/비비드 블랙 4개 색상으로 출시가 되고 가격은 위스키 파이어/비비드 블랙만 4,540만 원이고, 나머지 모델들은 4,490만 원으로 책정 됐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할리데이비슨에서도 전기 모터사이클을 만들어 내놓을 정도로 변화의 폭 또한 크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빨리 변하고 변화의 폭이 크더라도 계속 이어질 것들은 분명 있는 법인데 아마도 팻보이 같은 모델이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다. 할리데이비슨이 역사와 전통을 이어나가고 굳건한 팬들이 존재하는 한 팻보이라는 모델의 존재는 계속 이어져 나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