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처리' '내일 폐업' 현수막을 의심해야 하는 이유

이 사진을 보라. 길을 지나가다 보면 ‘내일 폐업’ ‘땡처리’ ‘사장님이 미쳤어요’ 문구가 크게 적힌 매장들이 보인다. 이불 만원. 냉장고 바지 세 개 만원. 회사가 망해서 몇 만원 짜리를 단돈 1만원에 판다며 시선을 끄는데 당장 내일 망할 것처럼 가게를 포장해놨지만 가만 보면 내일까진 안 망한다는 게 특징. 그러다 2주에서 한달쯤 뒤에 소리소문 없이 점포를 싹~ 비우고 사라진다. 유튜브 댓글로 “폐업한다고 해놓고 장사를 하는 매장들이 아직도 많던데 왜 그러는건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이런 곳들은 이름과는 달리 폐업한 매장이 아니라 폐업을 컨셉으로 장사를 하는 곳이다. 보통 보증금 없이 월세만 미리 깔아놓고 장사한다고 해서 ‘깔세’ 매장이라고 부른다.

깔세 닷컴 김성중 대표
“왜 갑자기 싸게 파는지...사람들은 모르잖아요. 어떤 이유를 만드는 거죠. 공장 부도나서 싸게 파는 거처럼. ‘사장님이 미쳤어요’. 이런 거 많이 하시잖아요. 손님들한테 왜 싸게 파는지 알려드리고. 이러니까 좀 싸게 판다(라고) 구매를 유도를 더 할 수 있게끔 문구를 붙이는 거죠.”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폐업 매장이 아니라, ‘폐업 직전이니까 우리 물건 좀 사주세요’라며 대놓고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매장인 셈인데 대개는 판매업자가 여러 군데 깔세 매장을 운영한다. 품목도 이불 화장품 양말 속옷 등 다양하다. 반찬가게나 족발집도 깔세 매장으로 운영된다.

깔세 닷컴 김성중 대표
“한 군데만 장사하시면, 매출이 떨어지죠. 잠깐 들어와서 싸게 팔더라도 지속해서 장사를 할 순 없어요. 들어오신 분들은 월세가 부담이 되니까 오래 못하시죠. 이쪽에서 장사하고 또 다른 데서 장사를 하고 이러시는 분들이 많죠.”

대략 짧게는 보름 전, 보통 한 달 전에는 다음 매장 자리를 알아보는데 ① 보증금이 없어서 일반 매장보다 월세가 비싸기 때문에 한 곳에 계속 머무르기엔 부담이 크고, ② 2주 정도 장사하면 그 지역에서 살 사람은 다 샀다는 판단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닌다고 한다. 한 곳에서 오래 장사하게 되면 사람들이 폐업매장에 대해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거다.

깔세 매장의 시초는 IMF외환위기로 본다. 힘들어진 상인들이 재고가 남은 물건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중 건물주에게 보증금 없이 월세를 선납하고 장사를 부탁한 데서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깔세 업계 30년 경력 사장님
“깔세가 왜 생기게 됐나면 IMF 터져서 그때는 전부 다 힘들었어요. 상인들이 IMF가 터지면 물건 재고가 많을 거 아니에요. 상인들이 지나가다 가게가 비면 “여기 한 달만 쓰면 안 되겠습니까”(부탁)해서 승낙을 받아서 재고 물건을 팔기 시작했어요. 그게 깔세의 원조였고.”

20년이 지난 요즘 깔세 매장도 조직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깔세를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있는 사이트도 있다. 이들에게 깔세는 ‘소자본 창업’에 해당된다.

깔세 닷컴 김성중 대표
“돈이 없으신 분들. 목돈이 없으시잖아요. 보증금이나 권리금 내고 들어갈 순 없잖아요. 월세만 선납으로 내고 들어가는 매장을 찾아드리는 거죠. 중간 유통 마진이 많이 빠져요. 그렇게 납품하고 일반 유통으로 납품을 했는데 공장 업체에서는 남는 물건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물건들을 한 번에 처분하는 방법으로 하는 경우가 있죠.”

매장들은 사전에 철저한 시장조사와 마케팅 전략으로 승부를 건다고 한다. 개업하는 동시에 ‘공장 부도’, ‘폐업 땡처리’ 등 사람들을 끌 만한 이유를 넣고, 장사 이틀 전부터 반경 4~5km 내에 전단을 뿌린 후에 본격적인 영업이 시작된다. 특히 지하철역 근처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 깔세 매장이 자리잡는다. 의류 매장의 경우 유동 인구가 없더라도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특정 상호명이 있었던 매장이 인기다. 과거 은행 지점 자리였다거나, 유명한 전자 상가점이었던 곳에 땡처리 간판을 내걸고 치고 빠지기식으로 장사를 한다.

근데 아무리 경기가 안좋다지만 이렇게 장사하는 게 문제는 없을까. 사실 이런 가게들이 사업자 등록을 하지도 않고 카드도 안받는 곳이 많아서 탈세 우려가 없는 게 아니다. 실제로 정확한 규모 파악도 어렵고 규제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사실 규제를 그 부분에 대해서 따로 규제는 없죠. 정말 이것이 폐업의 의도가 있다 없다는 건지 확인하는지는 어려울 수 있어요. 현재로서는 폐업이라는 현수막을 걸고 강한 제지를 받은 경우는 아마 없었을 거에요. 단지 소비자가 판단을 하는 거죠.”

그래서 이런 폐업 매장을 찾을 때는 현명한 소비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결론은 소비자들이 잘 분별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그렇죠. 소비자들이 예전에는 ‘폐업’ 하면 혹했는데 요즘은 무조건 혹하진 않을 거라는 거죠.”
한국소비자원 관계자
“단시간에 고객을 유인한 다음에 잠적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피해를 입더라도 해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벤트나 가격 할인 같이 그런 광고에 현혹돼서 충동적으로 물건을 구입하지 않으시는 게 가장 중요하고요. 만약에 구입하더라도 제품의 품질이나 하자 여부를 다시 한번 살피고 구입하는 게 중요할 거 같습니다.”

당신도 취재를 의뢰하고 싶다면 댓글로 의뢰하시라. 지금은 “한강 다리 이름은 연결된 양쪽 지역 중 어디 이름을 따서 짓는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중이다. 구독하고 알람 설정하면 조만간 취재결과가 올라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