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으로 살펴 본 프로야구 1000만 관객 [경기장의 안과 밖]
“호재란 호재가 한꺼번에 터진 거죠.” 사상 최고인 프로야구 흥행 이유를 묻자 박찬혁 전 한화 사장이 한 말이다. 9월23일 현재 696경기를 치른 KBO리그 총관객은 1045만8500명이다. 2017년 역대 최다 관객(840만688명)을 크게 넘어섰다. 이날까지 역대 최다 홈 관객 기록을 세운 구단은 7개. 이 밖에 2개 구단은 시즌 중 기록 경신이 유력하다.
2024년 프로야구 경기당 평균 관중은 1만5027명에 이른다. 전년 동일 경기 수 기준 34.2%나 증가했다. 지난해에 이어 사상 초유인 2년 연속 30%대 증가다. 메이저리그 역사에서도 1901년 양대 리그 체제가 시작된 뒤로 평균 관중이 30% 이상 증가한 시즌은 다섯 번밖에 없었다. 첫 번째인 1916년(33.5%)은 제3리그인 페더럴리그가 소멸한 뒤 첫 시즌이었다. 페더럴리그에 빼앗겼던 스타 선수와 팬이 돌아왔다. 1919년(92.7%)과 1946년(69.2%)은 1·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해였다. 2021년 관중 증가율은 무한대였다. 전해 코로나19로 무관중 경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팬데믹이 완화된 2022년에는 42.4%였다. 지난해엔 9.6%, 올해는 0.4%로 증가율은 뚜렷이 떨어졌다. 올해 한국 프로야구 흥행은 리그 구조 격변이나 세계대전, 대역병과 무관하게 일어난 현상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리그 내적으로는 ‘대관중 시대’를 맞기 위한 준비를 오랫동안 해왔다. 2014년 챔피언스필드(광주), 2016년 고척스카이돔(서울)과 라이온즈파크(대구), 2019년 NC파크(창원)가 새로 문을 열었다. 2015년 리그에 가입한 KT도 수원구장 환경을 대폭 개선했다. 내년에는 대전에 새 야구장이 들어선다. 서울, 부산, 인천에서도 새 야구장 건설이 추진 중이다. 보다 향상된 ‘영업 환경’에서 각 구단 마케팅 담당자들도 열심히 일을 했다. 박 전 사장은 “관객 분포와 성향을 데이터로 파악해 그에 맞는 서비스를 개발하려는 노력을 해왔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올해는 보기 드문 순위 경쟁이 펼쳐졌다. KBO는 올해 새 온라인 중계권 계약을 체결하며 팬들이 자유롭게 영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ABS(자동 볼 판정 시스템) 도입으로 볼 판정 시비를 사라지게 했다. 모두 팬들의 큰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올해 프로야구 대흥행은 리그 내적 요인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위의 메이저리그 사례에서 폭발적 관중 증가는 모두 리그 외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했다. 켄 번스의 명작 다큐멘터리 〈베이스볼〉에는 시기별로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흥행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가 소개된다. 이 다큐는 “(그런 노력이 대부분) 작동하지 않았다”라는 내레이션으로 끝난다. 새 구장 건설이나 구단 마케팅 역량 향상 등은 오래전부터 진행돼온 일이다. 타이트한 순위 경쟁은 다른 시즌에도 있었다. 프로야구뿐 아니라 프로축구 K리그도 2년 연속 관중 신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이 점은 프로야구 흥행에 외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짜장면은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다. 2000년대 초반 프로야구 구단 사람들은 이 단어를 푸념 삼아 자주 언급했다. “프로야구 객단가(총입장 수입/총관중)가 짜장면 한 그릇 수준”이라는 말이었다. 실제로도 비슷했다. 여기에 착안해 ‘짜장면 지수’라는 수치를 고안했다. 연도별 프로야구 객단가를 짜장면 가격으로 나눈 값이다. 1985년에 이 지수는 2.88이었다. 프로야구 입장권은 짜장면 세 그릇 값에 맞먹었다. 2005년에는 1.19까지 떨어진다. 이 시기에 ‘프로야구 위기론’이 리그 전체를 감쌌다.
프로야구 객단가는 코로나 팬데믹 첫해인 2020년 크게 상승했다. 전해 1만1781원에서 1만4400원으로 역대 두 번째 증가율을 보였다. 박준혁 롯데 단장은 “당시에는 팬데믹으로 입장객이 제한됐다. 좀 비싼 가격의 티켓을 사더라도 더 편한 좌석에서 경기를 보고 싶다는 충성도 높은 팬이 주로 왔다”라고 설명했다. 이후에도 객단가는 이 수준에서 유지됐다. 구단들은 일반석 대신 식음료 취식에 편리한 테이블석 등 고급 좌석을 늘렸다. 대신 야구장 전체 좌석수는 감소했다. 과거 3만 석이 넘었던 잠실구장과 사직구장의 올해 최대 입장 인원은 각각 2만3750명, 2만2754명이다.
객단가가 처음으로 1만4000원을 넘겼던 2020년 ‘짜장면 지수’는 2.78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2.24로 2015년(2.23) 수준으로 돌아갔다. 객단가가 1만4729원으로 소폭 증가한 반면 짜장면 값은 훨씬 더 올랐기 때문이다. 2021년 이후 한국 경제는 고물가 시대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20년 0.5%, 2021년 2.5%, 2022년 5.1%, 지난해 3.6%였다. 이 시기 이전에 마지막으로 2% 이상 상승률을 기록했던 해는 2012년이다. 전용배 단국대 스포츠과학대 학장은 “프로야구를 즐기는 데 드는 비용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다른 문화 콘텐츠 소비와 비교할 때도 그렇다”라고 말했다. 2020~2024년 프로야구 객단가 증가율은 2.0%인 반면 영화 티켓은 28.8% 인상됐다. 그래서 프로야구 흥행에 작용한 중요한 ‘리그 외적 요인’이 인플레이션이라는 가설 수립이 가능하다.
프로야구 1000만 관중 시대에 가장 돋보이는 집단은 ‘여성’과 ‘2030’다. 삼성카드가 올해 잠실·사직·대전 구장 가맹점 경기일 매출을 바탕으로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전년 대비 방문 회원 증가율은 30대 여성이 75%로 1위였다. 2위가 20대 여성(65%)이었다. 전체 입장객 중 성별 무관 연령대로는 20대가 24.3%로 1위, 30대가 21.8%로 2위였다. 프로야구 6개 구단 입장권 판매를 대행하는 티켓링크 집계에서도 같은 경향이 발견된다. 올해 여성 관객은 54.4%로 남성(45.6%)을 앞질렀다. 연령대로는 20대가 1위(33.0%), 30대가 2위(25.8%)였다.
씁쓸하지만 현실적인 분석
박근찬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은 “지난해부터 젊은 여성 관객 증가 현상이 감지됐다. 아시안게임과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그리고 올해 메이저리그 서울시리즈에 젊은 선수들로 대표팀을 꾸린 데는 팬 니즈에 호응한다는 이유도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여성 관객 증가 자체는 낯선 현상이 아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과 소득 증가는 꾸준히 진행돼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기울기가 가파르다. 통계청에 따르면,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은 1987년(45.0%)부터 2013년(50.2%)까지 5.2%포인트 상승했다. 2013년부터 지난해(55.6%)까지는 5.4%포인트 올라갔다. 최근 10년 상승폭이 앞 26년보다 더 컸다. 늘어난 소득은 여가를 위한 지출을 가능케 한다. 이 시기 여성의 프로야구 관람도 크게 늘어났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가 2016시즌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프로야구 관객 42.9%가 여성이었다. 이 수치는 2018년 45.9%. 2019년 47.3%로 꾸준히 상승했다.
여성 전체보다는 ‘젊은’ 여성 팬이 더 두드러진다. 두산과 키움 입장권 판매를 대행하는 인터파크 예매 데이터에서 2019년 20대 여성 비율은 17.9%였다. 올해 6월에는 24.9%로 크게 올라갔다. 여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남녀 구분 없는 20대 예매자 비율은 2019년 21.8%에서 올해 42.1%로 급등했다. 고령자들이 인터넷 예매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상당한 변화다.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팬 고령화가 문제로 지적된다. 젊은 관중의 증가는 한국 프로야구의 독특한 현상이다.
롯데는 젊은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부산을 연고로 하는 팀이다. 하지만 올해 6월 현재 구단 자체 앱 입장권 예매에서 38.0%가 20대였다. 박 단장은 젊은 관중 증가 현상에 대해 다소 씁쓸하지만 현실적인 분석을 했다. 그는 “지금 젊은 세대는 혼인율과 출산율이 모두 낮다. 한편으로 집값 급등으로 ‘내 집 마련’ 꿈을 가지기 어렵다. 그래서 여가에 소비할 시간과 재원이 오히려 앞 세대보다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카드 조사에서 2023~2024년 기혼 회원의 야구장 방문 증가율은 (자녀 연령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45~54%였다. ‘미혼’은 66%에 달했다.
최민규 (한국야구학회 이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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