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인배의 정치언어 ‘송무백열’

김수한 2025. 12. 11. 11:2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달 4~9일 베트남 출장 중 부다이탕 하노이시 인민위원장에게 사자성어 '송무백열'(松茂柏悅)을 인용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참모 그룹인 '6인회' 멤버이자 동향 선배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송무백열'이 좌우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오세훈 시장이 베트남에서 '송무백열'을 얘기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달 4~9일 베트남 출장 중 부다이탕 하노이시 인민위원장에게 사자성어 ‘송무백열’(松茂柏悅)을 인용했다고 한다. 서울의 도시정책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그들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을 이 네 글자로 전한 것이다.

‘송무백열’이란 표현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은 아니다. 서진(西晉) 시대 문인 육기(陸機)의 탄서부(歎逝賦)에 나오는 구절 ‘信松茂而柏悅, 嗟芝焚而蕙歎’(신송무이백열, 차지분이혜탄·소나무가 무성하니 측백나무가 기뻐하고, 지초가 불에 타니 난초가 탄식한다)에서 유래했다. 이를 흔히 ‘송무백열’과 ‘지분혜탄(芝焚蕙歎)’으로 줄여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과는 상반된 뜻의 성어다. 그래선지 역대 대통령이나 대통령 측근 등 유난히 ‘대인배’들과 얽힌 일화가 많다.

2002년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외교부장은 중국을 세 번째 방문한 노태우 대통령을 만나 ‘음수사원(飮水思源·물을 마시며 샘을 판 사람을 생각한다)’을 이야기했다. 노 대통령의 한중수교 결단이 없었다면 이후 발전된 한중관계도 없었을 거라는 취지다. 노 대통령은 이에 ‘송무백열’로 화답했다. 수교 이후 중국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니 기쁘다는 뜻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당선 직후인 1997년 12월말 ‘송무백열’을 신년휘호로 정했다. ‘DJ가 잘 되니 YS도 기쁘다’는 뜻을 에둘러 담은 셈이다. 그런데 이 휘호를 놓고 측근들 사이에 ‘저자세’ 논쟁이 벌어졌고, 결국 YS는 발표 직전 보다 무난한 ‘제심합력(齊心合力·한마음으로 힘을 합친다)’으로 휘호를 고친다.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참모 그룹인 ‘6인회’ 멤버이자 동향 선배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송무백열’이 좌우명이었다고 한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지지자들이 단일화를 기대하며 ‘安茂文悅, 文茂安悅(안무문열, 문무안열)’이라는 표현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오세훈 시장이 베트남에서 ‘송무백열’을 얘기했다. 혹시 현장에서 비슷한 내용을 들은 특정 기자가 윤색한 것은 아닐까 싶어 찾아보니 아니었다. 아예 서울시 보도자료에 이 표현이 담겨 있었다. 그말인즉슨, 오 시장이 처음부터 전략적으로 이 성어를 골라 썼다는 얘기다. 그제서야 필자는 조용히 만면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사실 오 시장과 필자는 ‘송무백열’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약 2년 전 일이다. 오 시장의 뉴욕 출장에 동행했다가 그의 예일대 특강 현장까지 취재했다. 뉴욕 시내에서 예일대가 있는 미 코네티컷주 뉴헤이븐까지는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였다. 뉴욕에서도 바쁜 일정을 보냈는데, 예일대까지 먼 길을 와줬다며 소수의 취재진에 오 시장은 특별한 감사를 전했다. 당시 식사자리에서 필자에게 건배사 차례가 돌아왔는데, 필자의 건배사가 ‘송무백열’이었다. 그 건배사에 오 시장이 매우 유쾌해했던 기억이 있다.

2년쯤 지나 그가 추억의 책장을 들춰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난 것이다. 아니면 그냥 우연히 불현듯 출처 모를 그 표현이 머릿속에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물론, 필자는 출처 표기를 요구할 생각이 없다. 세상의 좋은 성어는 모두의 것이기에.

김수한 에디터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