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내 ‘두 국가론’이 북한 동조? 반응할 가치도 없어” [인터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냉온탕을 오가는 남북 관계를 언제까지 지속해야 합니까.”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전 의원은 20일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전날 광주에서 열린 9·19 공동선언 6돌 기념식 기조연설에서 ‘통일, 하지 맙시다’란 도발적 발언을 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며 “제가 원한 건,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한 현실적 대안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발로 “북한 정권의 뜻에 동조하는 그런 의견과 유사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에 대해선 “반응할 가치조차 없다고 여긴다”고 잘라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8·15 통일 독트린’ 발표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 규정으로 “남북 간 우발 충돌의 위험이 곳곳에서 커져만 가고 있는” 상황에서 “제발 최소한의 소통을 위한 안전장치라도 마련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나온 진심 어린 조언”이란 것이다. 그는 “지금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우리의 소원은 평화’”라고도 했다.
자신의 발언을 겨냥한 민주·진보진영 내부의 비판과 관련해선 “(2개 국가 수용 발언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를 고민해온 많은 사람이 고민해왔던 문제다. 정권이 바뀌어도 안정적인 남북 관계를 만들어나갈 기반을 만들기 위해 이참에라도 건강한 토론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일 하지 말자’는 도발적 표현에 대해 “견해가 다른 양쪽이 서로 수용 가능한 선에서 논의의 출발점을 찾기 위한 (전략적 화법)”이라고 설명했다. “통일을 전제로 남북 관계를 얘기하다 보면, (남북) 양쪽에서 모두 반감을 갖는 이들이 나오겠지만, 남북 관계가 평화로워야 한다는 데는 범국민적 합의가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20대를 중심으로 국민 상당수가 예전만큼 통일을 당위로 여기지 않는다는 판단도 작용했다고 한다. 임 전 의원은 “요새 대학생들과 토론할 기회가 많은데, 젊은층은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통일이라는) 당위를 따르지 않는다. 평화로운 남북 관계하에서 교류·협력의 장이 만들어지는 걸 보게 되면, 젊은 세대들도 자연스럽게 통일 필요성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게 되지 않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통일, 하지 맙시다’란 말을 했다고 해서 통일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내 발언문 제목이 ‘평화를 위한 제언’이라는 데 주목해달라”고 했다.
다음은 임 전 의원과의 일문일답.
—‘통일, 하지 말자’ ‘2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는 내용의 기조연설을 했다. 왜 지금 이런 발언을 한 건가.
“오래 고민했던 얘길 용기내 꺼낸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남북관계가 냉온탕을 오가는 데, 계속 이것을 반복해야 하느냐는 데 문제 의식이 있었다. 비단 이게 나만의 생각이 아니고, 남북관계 문제를 고민해온 사람들 사이에선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사인이기도 하다. (같은 장소에서 열린) 광주 평화회의 1, 2세션 때도 내 얘기와 비슷한 논의들이 진행되기도 했다. (남북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인) 지금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우리의 소원은 평화’다. 내가 원한 건 (정권 교체에 따라) 냉온탕을 오가지 않을 현실적 대안 도출뿐이었다.”
—대통령실과 보수언론 쪽에서는 ‘북한 정권의 뜻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내 말이 ‘김정은 생각과 같다’는 식의 비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말들에는 반응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고. (나를 비판하기 전에) 이 정부는 제대로 된 통일 정책이 있길 하냐, 평화 정책이 있길 하냐. 오히려 남북문제를 고민해왔던 사람들 사이에선 ‘잘했다’는 얘기들도 나온다.”
—민주당 정부들도 당장 ‘통일’을 하자고 했던 건 아니지 않나. 굳이 이 시점에 이런 말을 꺼낸 걸 두고 비판도 있다.
“통일하지 말자는 말 자체가 다소 충격적으로 들렸을 수도 있겠지만, 내 기조연설 제목이 ‘평화를 위한 제언’이다. 그 취지를 봐달라. 연설문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통일하지 말자는 말 그 자체가 ‘우리가 통일을 해야 한다’는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다만 통일을 전제로 남북 관계를 얘기하다 보면, 남북 양쪽에서 모두 반감을 갖는 이들이 나온다. 하지만 남북 관계가 평화로워야 한다는 데는 범국민적 합의가 있지 않나.”
—그래도 통일 자체를 포기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 않나.
“기조연설에도 있지만, 앞으로 살아갈 건 젊은층, 미래세대다. 내가 최근에 대학생·대학원생 등과 토론할 기회가 많았는데,이 사람들은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통일이라는) 당위를 따르지 않는다. 평화로운 남북 관계가 정착돼 교류·협력의 장이 만들어지는 걸 보게 되면, 젊은 세대들도 자연스럽게 통일 필요성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게 되지 않겠냐. 그때 미래세대들이 스스로 통일 논의를 할 수 있도록, 30년 간 봉인해두자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현실화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할 생각인가.
“오래 고민하고 용기내서 한 발언인 만큼, 자연스럽게 토론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참에 건강한 토론이 이뤄지길 바란다. (내 발언에 대한) 지적 하나하나에 그때그때 반응하기 보다 시간을 두고, (이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서) 조만간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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