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10조원 미국 재벌 딸이 "한국 매우 특별하다"고 밝힌  뜻밖의 이유

일주일 전 서울에서는 한국 유일의 테니스 투어 대회인 하나은행 코리아 오픈이 개최되어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한국에서 열린 이 투어 대회에는 코리아 오픈 단골 손님인 옐레나 오스타펜코를 포함, 전설 비너스 윌리엄스, 디펜딩 챔피언 예카테리나 알렉산드로바, 베아트리스 아다드 마이아 등등 엄청난 선수들이 출전했는데요. 그런데 우승 트로피는 전설적인 선수들을 모두 제치고 미국 국적의 제시카 페굴라가 차지했습니다.

페굴라는 지난 2019년 대회에 출전해 1회전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4년간 피나는 노력 끝에 세계 랭킹 5위까지 올랐고 결국 코리아오픈 우승자가 되어 도자기 트로피를 들어올렸는데요. 그런데 우승을 거둔 그녀의 성적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주목받은 것은 그녀의 부모님입니다. 그녀의 부모는 미국에서 천연가스, 부동산, 스포츠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는 기업가로 포브스는 이들의 순자산을 50억 달러라고 전했죠. 그러니까 약 10조원에 가까운 자산을 가진 어마어마한 갑부 부모를 둔 선수가 바로 제시카 페굴라입니다. 그래서 남녀 테니스 선수를 통틀어 최고 갑부 선수로도 잘 알려져 있죠.

그런데 10조원에 가까운 자산을 이룬 페굴라의 어머니는 한국계 그것도 입양아라는 점 때문에 한국에서 꽤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어머니 킴 페굴라는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길거리에 버려진 뒤 1974년 미국에 입양됐는데 페굴라가 2019년 코리아 오픈에 출전했을 당시 자신을 하프 코리안이라고 소개 하기도 했습니다. 우승 후 도자기 트로피를 품에 하는 그녀는 매우 특별하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면서 2019년에는 엄마, 그리고 엄마를 입양한 할아버지와 함께 왔다며 4년 전을 회상했습니다. 그리고 코트에서 인터뷰 후 마이크를 내려놓기 전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해 팬들의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죠. 물론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되어 대단한 성공을 거둔 인물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때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아이를 입양 보내는 국가였으니까요.

한강의 기적이 일어나기 전까지 한국은 그야말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습니다. 한국전쟁 이전 자식이 많으면 농사를 돕기에 충분한 노동력이 됐지만 전쟁 후 모든 땅이 폐허가 된 후에는 그 많은 아이들이 불필요해졌습니다. 그래서 노동가치가 없는 아이들, 심지어 부모가 버린 아이들, 부모를 잃은 아이들, 혼혈아, 한부모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 등등 국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우리 아이들은 정부의 도움은커녕 수출하듯 외국으로 보내졌습니다. 입양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정상적인 입양이었다면 아이들이 성장한 후 분명 자신들의 뿌리를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잘 아시겠지만 많은 입양아들이 자신들의 친모를 찾는 데 성공하는 경우는 희박합니다. 왜냐하면 어떻게든 복지 비용을 아끼려던 정부가 '고아입양특례법'이라는 법적 근거까지 마련해 앞장서서 입양을 활성화시켰기 때문이죠. 한국 정부는 전쟁 고아들이 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성장하고 한국 여성과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를 아버지의 나라로 돌려보낸다는 명목으로 해외 입양을 추진했죠.

입양 절차를 간소화시켰고 홀트아동복지회 등 민간 기관 3곳에 입양 업무를 위탁한 후 입양 수수료를 기관이 챙길 수 있도록 했는데요. 가령 1980년대 입양아 1인당 수수료는 4,500~5,500달러로 1인당 국민소득보다 높았습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아이들을 사회적 배려대상자에서 제외했고 기관은 기관대로 높은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 업무에 매진하다 보니 아이 수출국,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이 생긴 겁니다.

여기에 더해 서양의 소위 돈 좀 있는 부자들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한국 아이들의 구원자가 되기를 원했었죠. 서로의 이해관계와 사회적인 분위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바야흐로 어린이 디아스포라의 시대가 막을 연 겁니다. 그런데 아이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만든 것은 1961년 9월 30일부터 시행돼 '고아입양특례법'입니다.

외국인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고아를 양자로 입양함에 있어 절차가 간소해졌고 이 법 시행 이후로 약 20만 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된 것으로 추산됩니다. 최근까지 더한다면 연평균 약 400여 명의 아이들이 고국을 떠나 외국인 부모에게 입양된 것이죠. 한국이 경제적으로 안정되면서 숫자가 줄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보내지다 보니 성장한 후 고국인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의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언론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중소기업 디지털 경제부 장관 및 문화부 장관을 지닌 플뢰르 펠르랭은 1973년 생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길거리에 버려졌다 프랑스로 입양됐고 마찬가지로 프랑스 국가개혁담당 장관을 역임한 장 뱅상 플라세는 친부모에게 버림받아 프랑스로 입양되어 유명 정치인이 됐습니다. 평택 미군기지 사령관 세스 그레이브스의 부인인 타라 그레이브스는 생후 6개월 부모에게 버림받은 후 미국으로 입양됐고, 2021년 미국 에너지부 차관보에 지명된 마리아 로빈슨 역시 1987년 미국으로 입양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위 성공한 한국계 입양아들이 등장할 때마다 한국인으로서 버려진 환경에 절망하지 않고 사회적인 성공을 이룬 유명인의 포커스를 맞출 뿐 그들의 진정한 아픔을 살피지 않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데요. '인종주의의 덫을 넘어서 혼혈 한국인, 혼혈 입양인 이야기'라는 책을 쓴 캐서린 김은 '한국인은 유명한 해외 입양인이나 혼혈인들에게는 그들의 몸에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열광한다. 하지만 보통 해외 입양인이나 혼혈인들에 대해선 차별과 편견이 심하다. 나는 이 책이 한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해외 입양인이나 혼혈인들을 대할 때 편견이나 차별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며 책을 쓴 이유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가슴 속에는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상처가 평생 남아있고 입양아라는 사실 때문에 편견과 차별에 시달려야 하는 그들의 진짜 아픔은커녕 아픔을 이겨낸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이상한 곳에 초점을 맞추는 어이없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땐 어쩔 수 없었다, 너무 힘든 시기였다, 잘 키울 자신이 없어 더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길 바랬다.'고 말이죠.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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