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되고 싶은 너에게 4- 직업인으로서의 예술가가 되기 위하여-구경희
대학 졸업을 앞두고 딸아이는 미국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예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회화와 조각 전공까지 마치고 마스터 과정에 진학하기로 했다. 유럽과 미국 어디로 갈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미국으로 가기로 했다. 우리는 미국 입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기에 유학원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서울에서 학원을 이십 년 넘게 운영했지만 미술 유학원 경험은 마치 딴 세상 경험과 같았다.
원장은 테스트한다며 딸아이를 잠시 다른 교실로 가라고 했다. 그녀는 아이가 없는 동안 본격적으로 컨설팅 비용을 말해주었다. 입시까지 수업료만 기본 3000만 원이며 합격 수수료 1500만 원이 따로 있다고 말했다. '무슨 수업'을 하기에 3000만 원이 드는지는 정확한 설명이 없었고 단지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전시 사진 찍는데 드는 비용이라고 대충 말했다. 그녀가 얘기했던 학교는 뉴욕의 SVS, 예일 대학, 시카고 아트,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RISD), 캘리포니아 예술 학교 (CalArts), UCLA 등이었다. 좋은 학교들이었고, SVS의 경우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어쩐지 이런 시스템이 불편하게 생각이 되어 우리 스스로 입시를 준비하기로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수업료는 미술 유학원의 기본 수업료였다.
미국은 대학원 입시가 학부 입시보다 어렵다. 인지도 있는 대학원 입학 준비를 위해 학부 성적표, 포트폴리오, 토플 점수 100점 이상, 특히 토플 스피킹 점수 20점 이상, 에세이, 수업 계획서 등이 필요했다. 일단 토플 시험부터 치렀다. 에세이는 여러 각도에 포커스를 맞춰 몇 개를 썼다. 처음에 딸아이가 쓴 에세이는 너무나 철학적이었고 모호한 내용이 많았다. 나는 경험을 구체적으로 써서 누가 읽어도 작가를 상상할 수 있도록 써보자고 설득했다.
학원에서 일을 끝내고 와서 밤마다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쓰고 수정하고를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 대학원들은 입학 후에 자신이 어떤 작업을 할 것인지 계획서를 요구하는데 이 부분은 딸아이가 전적으로 고민해서 준비를 했다. 지원했던 학교는 여섯 학교였다. 엘에이, 뉴욕과 동부, 시카고 등에 나누어져 있었다. 서류를 제출하고 통과하면 인터뷰 요청이 오는데 우리는 미리 학교별로 인터뷰 질문을 뽑아 연습을 했다.
당시에 딸아이에게 말은 못 했지만 대학원 학비와 생활비 때문에 걱정이 산더미 같았다. 학비만 거의 일 년에 7000만 원-8000만 원이었고 기숙사, 식비 등을 생각하면 최소한 일 년에 일 억은 기본이었다. 여기에 작품을 하는 재료비는 별도였다. 예술을 하는 아이를 기르며, 어찌어찌 운 좋게 화실 비, 학원 비를 아껴가며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는 돈을 쓰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일 년에 일 억씩 어디선가 돈을 끌어와야 한다고 생각했고, 정 안되면 집이라도 잡히든지 팔든지 해야겠다고 혼자 궁리하고 있었다.
우리 둘이서 맨땅에 헤딩하며 유학을 준비했는데도 다행히 원했던 학교에 거의 합격을 했다. 딸아이는 캘리포니아 예술 학교(CalArts) MFA과정에 진학을 하기로 결정했다.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기는 했지만 학비에는 크게 부족했다. 유학비 걱정에 전전긍긍할 무렵 딸아이는 정말 운이 좋게 '관정 장학금' 대상자가 되어 이 년 간 학비의 90 %가까이를 지원받게 되었다. 1차, 2차, 3차 심사를 거쳐 아트 전공자로는 첫 '관정 장학금' 수혜자가 되었다. 또 한숨 돌렸다.
드디어 칼아츠 (CalArts)생활이 시작되었다. 엘에이는 미국 내에서도 가장 자유분방한 도시이며 정치적으로도 진보적인 도시이다. 아주 평화로워 보이는 교외 동네 한 중간에 '총기 가게'가 버젓이 있기도 하고, 대마를 팔거나 대마를 피우는 사람들이 10미터마다 보일 정도이다. 그런 곳에 딸아이를 혼자 두고 오면서, 무엇무엇을 하지 마라 를 당부하기에는 당부할 것이 너무 많았다. 대신,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내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라고 일렀다. 버뱅크 근처 이케아에 가서 매트리스, 컵, 의자, 수건 등을 사서 방에 채워주었다. 기쁘기도 했고 쓸쓸하기도 했던 산타 클라리타 (칼아츠가 있는 지역)의 밤이 기억난다.
칼아츠는 이론 베이스 수업이 많다. 일방적인 강의보다 학생들의 발표 중심의 수업도 많고 교수와의 대담 형식으로 이루어진 수업도 많다. 코비드 시절, 온라인 수업을 본 적이 있었다. 학생들끼리 대화를 주고받으며 수업을 끌어가고 교수가 방향을 잡아주는 형식이었다. 따라서 준비가 안된 상태라든가, 영어가 부족하면 수업을 따라가기가 쉽지가 않다. 입학한 국제학생들 중 상당수가 중간에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딸아이는 학교의 3D 프린트실에서 일을 하면서 약간의 월급도 받고 캘리포니아 면허증을 따서 운전도 하는등 학교 생활에 익숙해졌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딸아이가 과를 바꾸겠다고 연락이 왔다. 아트과에서 아트 앤 테크놀로지로 바꾸겠다고 했다. 다행히 아트과 교수님이 지원서를 잘 써주었고, 딸아이가 그동안 해 온 작품들을 보고 아트 앤 테크놀로지 교수님이 수락을 해서 전과가 가능해졌다. 미리 수강했던 아트 앤 테크놀로지( Art&Technology ) 학과 수업도 큰 역할을 했다. 덕분에 남은 한 학기는 코딩을 비롯해 디지털 아트를 배우느라 졸업 마지막 학기 내내 불태웠다. 아트와 문학으로 유명한 바사(Vassar) 대학의 매거진인 Vassar Review 에도 유망 아티스트로 소개가 되었다.
칼아츠의 졸업식은 특이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단 강연자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졸업생들이 주인공이다. 졸업하는 학생들이 한 명씩 연단에 올라가서 교수님들에게 졸업장을 받는데 학생들이 입장할 때마다 학생 본인이 선정한 노래가 연주된다. 2022년 졸업식에서는 BTS 노래나 블랙핑크의 노래가 자주 나와서 K-POP 의 열기가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의 의상 또한 특이했는데 미국에서도 진보적인 엘에이, 그중에서도 더 진보적인 칼아츠 졸업에는 졸업 가운대신 본인이 입고 싶은 의상을 입는다. 드라마를 전공한 어떤 학생은 깃털 모자를 쓰고 비키니를 입고 한껏 몸을 흔들며 입장해서 눈길을 끌었다.
딸아이는 마침내 순수미술 전공의 마지막 과정인 마스터 과정을 끝냈다. 로버트 드니로의 유명한 뉴욕대 졸업 연설이 생각난다. "여러분 드디어 해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망했습니다!" 졸업이란 사실 아가리를 벌이고 있는 냉철한 상어 입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전의 마지막 축제와도 같은 것이다. 예술을 전공한 학생들은 더욱 그런 기분이다. 하지만 세상은 예측할 수 없는 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오늘의 기술이 내일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다. 예술이야말로 인간의 고유성을 담아낼 그릇인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딸아이는 박사를 진학할 것인지, 회사를 들어갈 것인지, 전업 작가를 할 것인지 졸업 후 일 년여 동안 깊이 고민을 했다. 그동안 비자 연장을 위해 갤러리에서 일을 하기도 했고 서울이나 엘에이에서 크고 작은 전시에 참가를 했다. 매체에서 신진 아티스트로 소개되기도 했으며 현재는 유럽의 아트 페어에 참가하고 있다. 운이 좋게도 엘에이 PST ART 2024 작가로도 선정이 되었다.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전업작가의 일상은 사업가와 굉장히 비슷한 면모가 많다. 자신을 잘 알고 자신을 잘 경영해야 한다. 딸아이는 요즘 예술가로써 작품 제작에 몰두할 뿐만 아니라 아티스트로써 자신을 경영하는 방법도 수련하고 있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딸의 새 작품을 볼 때마다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 기분이다. 뭉클하게 반갑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막연한 생각이었지만 그 꿈을 안고 여기까지 왔다. 딸아이가 쓴 쓰레드 글귀로 4편의 연작 <예술가가 되고 싶은 너에게>를 마무리 한다.
사람들은 창의력의 중요성, 그 중에서도 언어화 / 추상화된 창의력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런데 나에게는 작업을 할 때 느끼는 몰입 상태가 컨텐츠의 오리지널리티 자체보다도 더 중요하다. 일상적 시간의 흐름에 대해 잊어버린 채, 무엇인가가 나를 통해 전달되는 그 상태... 예술이라는 것은 모든 다른 존재하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에너지인 듯하다. 그 중에서도 아름다움 혹은 진실을 포착하려는 인간의 에너지가 예술이 아닐까. -Herry kim-
글쓴이- 구경희
미술대학입시 전문 컨설턴트이다. 인생 이야기를 즐겨 읽다가 글쓰기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를 키우며 자신까지 해방된 운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고 한때 바위타기를 꿈꾸었다. 요가, 글쓰기, 그림 그리기를 인생의 동반자로 삼고 있다
브런치 https://brunch.co.kr/@cesil1004
코너명소개: 예술가가 되고 싶은 너에게
우리나라에서 예술 교육은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미리 그 싹을 없애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너무 폭력적으로 들렸다. 수학을 잘하거나 이야기를 좋아하거나 특별하게 머리를 잘 매만지는 것처럼 예술적인 재능을 타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를 중학교부터 대학원까지 예술학교들에 진학시킨 방법과 그 학교들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또 집에서는 어떻게 교육을 시켰는지 솔직하게 써 보고 싶다. 모두가 궁금해 하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예술교육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다. 이 글이 예술가를 꿈꾸는 많은 꿈나무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지식토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