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과학수사 리포트]③프로파일러와는 다릅니다...사이코패스 속마음 들여다보는 검찰 심리분석관

김종용 기자 2023. 6. 26. 06:1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06년 ‘통합심리분석’ 기법 개발한 대검
정유정도, 연쇄 살인범 이기영도 검사 받아
심리생리검사, 뇌파 검사 등으로 고의성 밝혀
정유정, 사이코패스 지수 26.3…강호순과 근사치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방철 심리분석실장이 19일 오후 서울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심리생리검사 그래프. /박상훈 기자

2020년 무기징역이 확정된 고유정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 데는 검찰의 과학수사 공이 컸다. 검찰은 DNA 감정 기술로 고유정 차량 속 무릎담요에 묻은 혈흔에서 졸피뎀 성분을 검출했고, 이 혈흔이 피해자의 것임을 확인했다. 검찰이 강압적인 심문을 통해 수사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이렇듯 철저한 과학적 분석을 토대로 증거를 확보해 피의자를 가려내고 있다. 조선비즈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진화하고 있는 검찰의 과학 수사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편집자 주]

최근 온라인 과외 어플리케이션(앱)으로 만난 또래 20대 여성을 수차례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정유정은 뚜렷한 이유가 없음에도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고, 이를 위해 치밀한 계획까지 세워 세간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정유정은 단순히 살인을 해 보고 싶어서 54명의 과외교사와 접촉했고, 가장 범행을 저지르기 쉬운 대상을 주도면밀하게 물색했다. 계획을 이루기 위해 중학생으로 변장을 하기까지 했다. 검거 이후 정유정의 동기와 범행 이유에 대해 갖은 예측이 나왔지만, 정작 당사자가 입을 꾹 다물고 있어 심리상태를 파악할 수 없었다.

결국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심리분석실 소속 분석관들이 투입됐다. 대검 심리분석실은 범죄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사건 해결의 단서를 찾아내는 국내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2015년 9월에는 국내 최초로 미국 폴리그래프 협회(APA)에서 교육기관 인증을 취득했다. 현재 APA 인증기관은 전세계 30곳에 불과하다.

◇악의 마음과 싸우는 심리분석관…증거 없는 범죄서 ‘진실’ 찾는다

검찰 심리분석관은 우리가 흔히 아는 경찰 프로파일러와는 다르다. 프로파일러는 범죄 현장에 남겨진 증거들을 토대로 범죄자의 특성을 파악하고 수사망을 좁히는 역할을 하지만, 심리분석관은 진술의 진위 여부와 심리적·성격적 특성 등을 분석해 ‘내심의 의사’를 규명하는 쪽에 더 집중한다.

강력 범죄를 수사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범죄자의 ‘고의성’을 증명하는 일이다. 살해하려는 마음을 먹고 있었는지, 홧김에 살해한 것인지에 따라 양형에 차이가 있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우발적 살인은 감경 요소가 아니지만 계획적 살인은 특별한 가중 요소가 된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검 심리분석실은 범죄의 고의성을 입증하기 위해 ‘거짓말 탐지기(Polygraph)’라 불리는 심리생리검사와 행동 분석, 뇌파 검사는 물론 범죄자의 성향과 정신 병리까지 파악하는 임상심리평가를 진행한다.

심리생리검사는 호흡과 맥박 등 자율신경계 반응을 측정해 진술의 거짓 여부를 판단하는 기법이다. 행동 분석은 표정이나 제스처 등을 관찰해 진술의 진위를, 뇌파 검사는 뇌파를 관찰해 사건 관련 정보의 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이다. 임상심리평가는 심리 검사, 면담, 행동 관찰을 통해 대상자의 지능과 성향, 정신 병리(우울증, 조현병, 성격장애 등)을 파악하는 분석 기법이다. 대검에서는 한국판 웩슬러 지능검사(K-WAIS-IV), 다면적 인성검사(MMPI-II), 정신상태 검사(MSE), 재범 위험성 평가(KORAS-G), 사이코패스 체크리스트(PCL-R) 등의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방철 심리분석실장이 19일 오후 서울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에서 심리생리검사(거짓말 탐지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대검 심리분석실은 지난 2006년 심리생리검사, 행동 분석, 뇌파 검사, 진술 분석 등을 종합한 ‘통합심리분석’ 기법을 개발했다. 대상자 한 명을 대상으로 여러 분석 기법을 적용해 신뢰성을 높이고 오류는 낮췄다. 이후 2015년 말 임상심리평가를 도입해 현재의 통합심리분석 기법을 완성했다. 실제로 통합심리분석을 수사에 활용한 횟수는 매년 60건에 달한다.

일선 검찰청의 의뢰를 받으면 임상심리전문가, 심리생리검사관, 행동분석관, 뇌파검사관 각 1명씩으로 구성된 팀이 이동식 장비를 챙겨 출동한다. 이후 모든 분석관들은 피의자를 면담하고 검사를 진행한다. 통상 1일차에 임상심리평가, 2일차에 심리생리검사 및 행동 분석을, 3일차에 뇌파 검사를 수행한다. 면담과 검사를 마치면 분석관들은 대검으로 복귀해 종합 분석을 실시한다. 구속 사건의 경우 통상 ‘5일 이내’에 분석 결과를 통보한다.

통합심리분석을 통해 피의자의 인지적·성격적 특성, 사이코패스 여부, 재범 위험성 등이 확인되면 수사와 공판 단계에서 객관적인 양형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방철 대검 심리분석실장은 “강력범죄 피의자들은 사실관계 자체를 부인하기도 하지만, 살인의 고의성을 부인하기도 하고 심신 미약을 주장하기도 한다”며 “이 모든 것은 추후 양형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분석을 통한 전문가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죽이려고 부른 건가” 질문에 “아니오” 답한 이기영, 거짓 반응 들통나

방 실장은 통합심리분석을 통해 흉악범의 거짓 주장을 반박해낸 실제 사례를 소개했다. 모두가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들떠있던 2022년 12월 25일 오전 3시 30분, 경기 일산 동부경찰서에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고 한다. 불과 30분 전 아버지와 카카오톡을 주고 받았는데 다른 사람인 것 같다는 신고 전화였다. 8시간이 지난 오전 11시 22분, 한 여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112에 신고 전화를 걸어왔다. “남자친구 아파트 옷장 안에 죽은 사람이 있어요.”

경찰은 이튿날 새벽 일산 백병원에서 다친 손을 치료받고 있던 30대 남성을 용의자로 체포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이 남성이 또 다른 여성을 살해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택시기사가 숨진 범행 현장에서 다른 여성의 혈흔과 범행 도구 등이 발견된 것이다. 동거녀와 택시기사를 연달아 죽인 살인마 이기영의 꼬리가 잡힌 순간이었다.

경찰은 이기영을 강도살인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살인 등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문제는 사라진 동거녀의 시신이었다. 경찰은 “범행 다음날 A씨의 시신을 경기도 파주 공릉천에 유기했다”는 이기영의 진술을 토대로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벌였지만 시신을 찾지 못했다. 사건의 유일한 증거인 이기영의 진술과 현장에서 발견된 혈흔 등에 의존해 범행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제 유일한 해결 방안은 통합심리분석뿐이었다.

택시기사와 동거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이기영. /뉴스1

방 실장은 이기영을 상대로 통합심리분석을 했던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검사관이 이기영에게 물었습니다. 애초에 택시기사를 살해할 목적으로 집으로 부른 게 아니냐고요. 이기영은 300만원을 준다며 택시기사를 집으로 불렀지만 기사가 1000만원 이상을 요구했고, 서로 옥신각신하다 바닥에 있던 고양이 모래를 뿌리고 뺨을 때리는 등 몸싸움을 했다고 거짓말했죠. 그러던 중 옆에 있던 아령으로 홧김에 내려친 것이라고요.”

이기영은 동거녀를 살해한 것도 홧김에 벌어진 일이라고 강조했다. 검사관이 “렌치로 동거녀의 머리를 내려찍은 적이 있냐”고 묻자, 이기영은 “방에서 자전거를 수리하는 중 동거녀가 들어와 ‘고글을 왜 샀느냐’며 화를 냈고 경제적 문제로 다퉜다”며 “이런 상황에서 동거녀가 결혼사진 액자를 부수자 화가 나 렌치를 던졌으며, 그 렌치에 뒷통수를 맞고 침대에 쓰러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때, 검사관의 모니터에 나타난 이기영의 자율신경계 그래프 패턴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동시다발적으로 이기영의 호흡과 맥박, 땀 분비량이 전체적으로 치솟는 등 유의미한 거짓 반응이 나타난 것이다. 심리생리검사는 미국 폴리그래프 협회에 보고된 임상 결과로는 정확도가 90% 수준이다. 실제 형사사건의 실무 데이터를 기초로 한 현장 연구에서는 96%의 정확성을 기록했다. 다만 이것만으로 이기영의 계획범죄를 완벽하게 입증할 수는 없었다. 아직까지 법원은 거짓말 탐지기 검사 결과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심리분석실은 행동 분석관을 투입했다. 이때 이기영은 인지적 과부하가 걸렸을 때 나타나는 반응을 보였다. 다른 질문과는 다르게 “동거녀를 렌치로 내리쳐 살해한 것 맞느냐” 등 계획적 범행을 묻는 질문에는 답변이 늦어지고, 한숨을 쉬며,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이 길어지는 특성이 나타났다고 한다. 또 다른 질문을 받았을 때는 얼굴을 매만지거나 눈을 가리는 등 얼굴의 표정 변화를 감추려는 모습이 여러 번 나타났다.

뇌파 검사 그래프. /대검찰청 제공

◇ “젊은 여성 앞에선 고압적, 중년 분석관에겐 90도로 인사”

이 과정에서 이기영은 범행 당일 동거녀의 뺨을 2~3차례 때렸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이는 범행 직전에 둘 사이에 심한 갈등이 있었다는 증거가 됐다. “홧김에 렌치를 던졌는데 동거녀가 맞고 쓰러졌다”며 우발적 살인을 주장하던 이기영의 진술이 거짓으로 판명나는 순간이었다.

방 실장은 이기영의 임상심리평가에서 사이코패스 성향이 발견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사이코패스 진단은 물론 567문항으로 이뤄진 다면적 인성검사와 로샤 검사(데칼코마니 형태의 그림을 보여주고 떠오르는 것을 답변하는 방식), 꾀병 탐지 검사, 재범 위험성 평가 등이 진행됐다. 그 결과 이기영은 자기중심성 및 반사회성, 강한 사이코패스 성향, 감정 및 충동 조절 능력 부족, 높은 재범 위험성 등의 결과가 나왔다.

“이기영은 과도하게 예의를 갖추며 능동적으로 면담을 주도하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젊은 여성 분석관과 유년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제 앞에서는 90도로 인사하며 두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등 공손한 자세로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분석관과의 대화에서 추임새도 넣고, 의견을 물어보면 정중하게 대답했습니다. ‘많이 힘들죠. 아버지랑은 무슨 이야기 하셨어요?’라고 물었더니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방 실장은 협조적이며 적극적으로 질문에 답변하던 이기영의 모습을 ‘분석관을 조종하기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상황을 본인이 주도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라며 “이는 누군가를 조종하고 통제하려는 욕구가 굉장히 큰 사이코패스적 성향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1심 재판부는 지난달 19일 이기영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30년 간의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살해 행위와 그 이후 범행까지도 철저히 계획한 다음에 스스럼없이 살해 계획에 나아간 후 일말의 양심의 가책 없이 피해자의 돈으로 경제적 이익을 실현했다”며 “만일 법이 허용했다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형을 선고해서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하는 방안을 고려했을 만큼 대단히 잔혹하고 중한 범죄”라고 판시했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오는 7월 13일 항소심 재판이 시작된다. 이기영이 항소하지 않은 만큼 형량은 무기징역 또는 사형 중 하나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