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장애 일란성 쌍둥이에 지원은 제각각?…갈 길 먼 장애 심사

진선민 2024. 10. 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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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장애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 자매에게 국가 지원은 각각 다르게 적용된다면 어떨까요.

정부는 지난 2019년, 장애를 6등급으로 나누어 복지서비스를 차등 제공하던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대신 장애 종합조사를 도입했습니다. 장애 유형이나 가구 환경 등에 따라 15개 구간으로 나누고, 1구간에 가까울수록 서비스 제공 시간이 늘어나는 방식입니다.

지체장애가 있는 쌍둥이 자매 진성선·진은선 씨는 2022년, 장애등급제 폐지 후 처음 받게 된 국민연금공단의 장애 종합조사에서 전체 15개 구간 중 각각 10구간과 6구간을 받았습니다.

■ 쌍둥이 자매 엇갈린 결과…"달랐던 건 조사원뿐?"

언니인 성선 씨는 조사 결과를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기존에 받았던 월 431시간의 활동 지원 시간이 반토막으로 삭감된 데다, 과거 같은 '1급 지체장애' 판정을 받았던 쌍둥이 동생 은선 씨가 받은 6구간과도 차이가 컸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장애 정도를 갖고 있어요. 인정조사 때도 동일한 1등급을 받았었고, 둘 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어요. 나왔던 조사원이 달랐던 것 말고는 (자매의) 상황이 달랐던 건 크게 없어요." (지체장애인 진성선 씨)

종합조사 결과에 따라 활동지원 수급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홀로 일상을 꾸려가기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구간 판정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여겨집니다.


두 차례 이의 신청과 재조사 끝에 동생과 같은 6구간을 받은 성선 씨. "장애가 비슷한 동생과 결과가 다르게 나온 것 자체가 종합 조사가 장애인의 삶을 반영하지 않고, 조사원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공단에서는 '조사원이 엄격한 원칙을 적용한 것 같다'며 조사원 개인의 문제로만 설명하려 했지만, 심사 방법 자체가 문제"라면서 "어떤 근거로 점수를 매기는지는 알 수가 없고, 그러다 보니 조사원이 누군지 어떤 관점을 가졌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지적했습니다.

■ 매년 1천 건 넘는 이의신청… 담당 직원 35.8% '1년 미만' 경력

장애 종합조사 이의신청은 해마다 1천 건이 넘고, 그중 절반은 재조사 등을 거쳐 상향 조정되고 있습니다.

최초 심사가 그만큼 잘못 이뤄지고 있다는 걸 방증한다고 볼 수 있는데요. 올해도 상반기에 접수된 이의신청 1,140건 가운데 51.8%는 기존 결과보다 위 구간으로 조정됐습니다.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원인 중 하나로 장애 심사 인력의 전문성 문제가 지적됩니다.

현재 국민연금공단에서 종합조사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301명입니다. 장애 업무 경력이 1년 미만인 직원이 108명으로, 세 명 중 한 명꼴이었습니다.

공단에서 순환 보직의 원칙에 따라 인사 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간 장애 심사만 전담하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어려운 상황인 겁니다.


공단 관계자는 "순환 보직제라 장애 업무만 전담하는 직원을 둘 수는 없다"면서 "심사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수시로 대면·온라인 교육을 실시하고 내부 검증 프로그램도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전신마비도 1구간 못 받는다?…"수요자 중심으로 바꿔야"

더군다나 적은 인력으로 매년 장애 심사 8만 건 안팎을 처리하다 보니, 수요자 관점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행정 중심적으로 이뤄진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와상장애인 김준우 씨는 홀로 밥을 먹고, 씻고, 옷을 입고, 휴대전화를 쓰거나 컴퓨터 작업을 하는 일상생활을 하기 어렵습니다. 턱으로 휠체어를 조종하지만, 엘리베이터나 출입문을 열 수 없어 이동할 때도 활동 지원사가 곁에 있어야 합니다.

하루 24시간 활동 지원, 야간·휴일수당을 고려하면 한 달에 840시간(28시간X30일)이 필요한 상황.


하지만 김 씨는 종합 조사에서 '5구간'(월 360시간)을 받았고, 이의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목 밑으로는 전혀 못 움직여요. 2~3구간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5구간이라 깜짝 놀랐어요. 도대체 여기서 어떤 장애가 더 생겨야, 어떤 장애를 더 만들어야 구간이 올라갈 수 있는지 정말 정부에 묻고 싶어요." (와상장애인 김준우 씨)

이처럼 종합조사로 시간이 삭감된 장애인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보건복지부는 '활동 지원 산정 특례' 지침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종합조사 결과, 장애등급제 시절보다 활동 지원이 줄어든 장애인에게는 기존과 동일한 지원을 하는 겁니다.


하지만 정부가 '특례' 적용 기간을 무한정으로 약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활동 지원은 언제라도 줄어들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하루 24시간 이용하다가 갑자기 줄인다고 하면 다들 죽는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죽어요. 밤늦은 시간에 (지원사 없이) 집에 불이 나면 못 나가서 죽고, 폭염에 집에 있다가 더워서 죽어요. 삶의 질 문제가 아니라 정말 죽고 사는 문제라는 걸 알아야 해요." (와상장애인 김준우 씨)

시각장애인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미화 의원은 "장애 판정 문제를 마냥 공단의 몫으로만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면서 "본질적인 문제는 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인을 중심으로 판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의료적 기준으로 행정 중심의 통제적 판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국제적 기준에 따른 장애인식 개선이 필요하고, 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인 모두가 마땅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충분한 재원 마련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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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민 기자 (js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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