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향적 역사관’ 이시바 집권해도 한-일 관계 ‘큰 틀’ 바뀌지 않을 듯
국방군·핵공유·아시아판 나토 주장 ‘안보 매파’
사실상 차기 일본 총리를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시게루(67) 전 자민당 간사장이 극적으로 승리했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는 집권당 총재가 총리가 되며, 그는 다음달 1일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총리에 오를 전망이다. 그는 역사문제에 대해 비교적 전향적인 인물로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아이사와 이치로 자민당 총재 선거관리위원장은 27일 열린 당 총재 선거 결선투표에서 이시바 전 간사장이 전체 415표(당 소속 국회의원 368표, 당원·당우 47표) 가운데 절반을 넘는 215표(국회의원 189표, 당원·당우 26표)를 얻어 당선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1차 투표에서 그는 전체 736표(국회의원과 당원·당우 각 368표)에서 합계 154표를 얻어 2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하지만 결선 상대인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전보장상과 무려 27표차가 벌어져 전망이 어두웠다. 특히 결선 승부에 열쇠를 쥔 국회의원 표에서 이시바 46표, 다카이치 72표로 큰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결선에서 대역전극이 펼쳐졌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국회의원들에게 189표(전체 368표)를 가져오고, 당원·당우표(전체 47표)도 절반이 넘는 26표를 챙겨 상대를 압도했다. 총재 선거 때마다 당내 기반이 약해 번번이 고배를 마셨는데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이시바 당선자는 당선 수락 연설에서 “국민을 믿으며 용기와 진심을 다해 진실을 말하고, 모두가 웃으며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일본을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의 역전 승리 배경에는 상대 후보들의 단점이 부각된 탓이라고 요미우리 신문 등이 전했다. 43살 젊은 나이와 참신함을 내세워 초기 대세론까지 일었던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은 토론회 초기부터 “정책이해 불충분” “정책 실현을 위한 전략 불투명” “경험 부족”을 노출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1차 투표에서 1위를 했던 다카이치 경제안보상은 지나친 우파 색깔에 대한 우려가 지적됐다. 그는 총리가 돼도 태평양전쟁 에이(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현직 총리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지난 2013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마지막이었다. 당시 미국도 “실망했다”고 비판하는 등 외교적으로 문제가 됐다. 요미우리신문은 다카이치 경제안보상이 총리가 되면 “기시다 후미오 정권 때 개선된 한일 관계가 손상되고 한·미·일 연계에 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시바 당선자는 역사 문제 관련해 “(일본이) 독립국이었던 한국을 병합하고, 강제로 이름 등을 바꾸는 일이 있었다” “일본이 패전 후 전쟁 책임을 정면에서 마주하지 않았던 것이 많은 문제의 근원에 있다”고 말하는 등 자민당 정치인 중에는 전향적인 편이다.
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일본 집권당 자민당의 보수 정치인으로 일본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하지 않지만 강제동원 대법원 손해배상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보며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또한, 총리 취임 이후에는 당내 보수파를 더욱 의식할 가능성이 있다.
방위청 장관과 방위상을 역임한 그가 주장하는 안보 정책 자체도 매파적인 부분이 있다. 그는 현행 평화헌법의 핵심인 전력 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에 자위대 근거 규정을 삽입하자는 자민당 기본 정책에 찬성한다. 그의 최근 저서를 보면 이보다 더 보수적인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규정하는 헌법 개정을 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핵무기를 일본에서 공동 운용하는 “핵 공유”를 논의하자고 주장한다.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설립’도 주장하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대통령실은 “한일 양국은 자유, 인권, 법치의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협력 파트너인 만큼, 우리 정부는 양국이 전향적인 자세로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를 기대한다”는 반응을 내놨다.
이시바 총재는 총선이라는 시험대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내각은 파벌 비자금 조성 문제 등으로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진 상태라 총선을 치를 경우 자민당은 쉽지 않은 승부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중의원 조기 해산 문제에 대해서는 “주권자인 국민을 두고 자민당 마음대로 해선 안 된다”며 유보적 입장을 취한 바 있지만, 중의원 조기 해산은 계속 거론되고 있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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