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대 적' 여야, 예산-세법 '시계제로'…국회에 '역대급' 한파 왔다
더불어민주당이 30일 이태원 참사와 관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발의하면서 여야 '적 대 적' 국면이 절정을 향한다. 민주당은 "국민과 유가족의 명령"이라고 했고 국민의힘은 "국정조사 계획서의 잉크도 마르기 전"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처리 시한이 임박한 내년도 예산안과 세법개정안에 대한 전망 역시 '시계제로'다. 12월9일 본회의 처리가 잠정 목표인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우려가 여야 모두에서 나온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협치의 정신을 강조하며 여야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본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헌법이 보유한 국회의 권한으로 이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발의하고 이번주 본회의에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성곤 민주당 수석부대표와 이수진 원내대변인이 이날 오후 4시 해임건의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민주당은 또 이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다음주 탄핵소추안을 내고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했다.
박 원내대표는 "재난에 대한 안전과 예방, 관리를 담당하는 정부 책임자로서 이 장관의 실책은 명백하다"며 "주무장관으로서 이태원 참사 대처 과정에서 경찰 등 인력을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고 수차례 상황을 오판하고 오도했다. 지휘 권한이 없다, 법적 책임이 없다, 폼 나게 사표 쓰고 싶다며 유가족 마음에 대못을 박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소방 고위직 인사권을 가진 장관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소방공무원과 서울시, 용산구청 관계자가 자료를 제출하고 증언할 수 있겠나"라며 "국정조사와 경찰수사가 철저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라도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겨냥해 "막가파식 자기모순 정치"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당의 해임건의안 발의가 예고되자 이날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여야가 이태원 사고 국정조사에 합의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다"며 "철저한 경찰 수사가 먼저라는 입장이었음에도 대승적 차원에서 국정조사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정조사의 조사 대상에 행안부 장관이 포함됐는데 국정조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장관을 조사하기도 전에, 장관을 그냥 해임하겠다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라며 "애당초 국정조사를 할 생각은 있었던 것인가"라고 했다.
친윤(친 윤석열 대통령) 인사로 꼽히는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 역시 민주당을 향해 "진실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를 하자면서 진실을 묻고 재발방지책을 요구할 대상인 주무장관을 탄핵부터 시키겠다는 막가파식 정치행태를 보인다"며 "재발방지책 마련은 고사하고 제대로 진상규명을 할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야의 극한 충돌에 내년도 예산안과 세법개정안 처리도 더욱 요원해졌다는 분석이다. 예산안을 다루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파행을 거듭하다 처리 시한을 이틀 앞둔 30일 이른바 '소소위'를 열고 협상을 재개했다. 여야는 다음달 9일 본회의 의결을 목표로 협상에 임한다는 방침이나 연말까지 늘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는 의원도 상당수다.
헌법 제54조 2항에 따르면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 즉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일(매해 1월1일)의 30일 전인 전년도 12월2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
세법개정안을 심의하는 기획재정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여야는 법정 시한인 30일까지도 추가 상정 법안과 향후 심의 일정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한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이날 오전 법인세법·소득세법 개정안 등 정부가 제출한 세법개정안을 포함한 25건을 세입예산안 부수법안으로 지정했다. 예산안 부수법안은 국회법에 따라 이날까지 심의를 마쳐야 한다.
예산안과 세법개정안 심의가 사실상 공전하는 상황에서 적 대 적 대치가 '불난 집에 기름 붓는다'는 우려가 높아진다. 잘못된 관행과 결별을 시도하고 협치에 힘썼던 최근 정치권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지적이다.
앞서 여야는 2020년 12월2일 다음연도 예산안을 합의 처리하며 법정시한을 지키지 않았던 정치권 관행을 6년만에 끊어냈다. 지난해에는 법정시한까지 사실상 합의를 마친 후 다음날 의결했다.
세법개정안의 경우 2018년 이후 4년만에 세법개정안의 처리 시한(매해 11월30일)을 지키지 못할 것으로 유력시된다.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지난해와 2020년의 경우 여야는 11월30일 예산안 부수법안 심의를 마쳤다. 2019년에는 11월29일에 마무리했다. 2018년에는 법정 기한을 넘겼지만 법인세법, 종부세법, 부가가치세법,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 일부 법안만 추후 논의했다.
김진표 의장도 목소리를 냈다. 김 의장은 이날 여야를 향해 "기획재정위원회, 교육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 소관 위원회의 심사가 완료되지 못한 상황이나 본회의로 부의된 이후에도 여야가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예산안과 부수법안이 조속히 합의되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김 의장은 "금리인상 등 서민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국회가 머리를 맞대 국민을 위한 예산과 세법을 만들어 내도록 협치의 정신을 발휘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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