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쌀집 딸에서 명품 보컬로, 이영현의 성장기
이영현은 그룹 빅마마의 메인보컬로, 대한민국 대표 여성 보컬리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어린 시절 그는 쌀집과 연탄배달로 생계를 이어가던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당시 이영현은 배달하는 부모님이 창피해, 혹시라도 친구들이 자신을 알아볼까 두려워 눈물을 흘릴 정도로 힘든 유년기를 보냈다고 회상한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실용음악과 진학을 결심한 그는 보컬학원에 다니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상 학원비를 마련할 길이 없었다. 결국 일주일간 단식까지 하며 간절함을 보였고, 부모님은 보험까지 해지해 학원비를 마련해줬다. 이영현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눈물로 감사함을 전했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부모님의 희생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지원 덕분에 이영현은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영상음악과에 진학했다. 대학 1학년이던 2000년 강변가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며 음악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이후 2003년 빅마마로 데뷔, ‘체념’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품 보컬로 자리매김했다.

‘체념’의 탄생과 저작권료, 그리고 효도
빅마마 1집에 수록된 ‘체념’은 이영현이 처음으로 작사·작곡한 곡이다. 절절한 감성과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사랑받은 이 곡은 20년 넘게 노래방 인기곡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영현은 ‘체념’의 첫 저작권 정산금으로 2,600만 원을 받았고, 망설임 없이 부모님께 효도 선물로 드렸다. 이영현은 “그때는 몰랐지만, 부모님이 보험까지 해지해 학원비를 마련해주셨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며 부모님의 희생에 대한 고마움을 여러 차례 밝혔다.

저작권료의 진실과 음악 산업의 현실
‘체념’은 노래방에서의 인기로 월 2,600만 원까지 저작권료가 찍힌 적도 있다. 하지만 방송이나 음원 수익은 상대적으로 적었고, 거액의 목돈이 필요했던 시기에 결국 저작권을 매각하게 됐다. 이영현은 “지금은 저작권이 남의 떡이 됐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념 후(後)’, ‘연’ 등 자작곡과 타 가수에게 준 곡들로 매월 적지 않은 저작권료 수입을 이어가고 있다.

무대 공포증과 정신적 시련, 그리고 재기
이영현은 한때 무대 공포증과 정신적 어려움으로 활동을 중단한 적이 있다. ‘나는 가수다’ 출연 당시 극도의 부담감과 긴장으로 무대에 오를 때마다 손이 떨리고 땀이 흘렀다고 고백했다. 활동 중단 후 생활고에 시달리며 언니에게 휴대전화 요금을 빌릴 만큼 힘든 시기를 보냈다. 불안 장애와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고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처방받은 약을 감기약처럼 생각하고 복용한다”고 털어놓았다.

교수로서의 새로운 도전과 음악적 유산
이영현은 현재 실용음악과 교수로도 활동하며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다. 빅마마 멤버들 역시 모두 실용음악 교수로 활동하며 ‘교수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영현은 “자신의 음악적 경험과 진심을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정규 3집 앨범을 발표하며 작사·작곡, 프로듀싱 등 음악적 역량을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다.

가족의 유대와 모전여전 노래 실력
이영현의 어머니 역시 노래자랑에서 경품을 휩쓸던 실력자였다. 가족 예능에 함께 출연해 뛰어난 가창력을 선보이며, 모전여전 ‘가왕 DNA’를 입증했다. 이영현은 “어릴 때는 부모님이 창피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음악적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FAQ
Q1. 이영현은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됐나요?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희생으로 보컬학원에 다니며 음악을 시작했고, 대학 진학 후 강변가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며 가수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Q2. ‘체념’의 저작권료는 실제로 얼마나 됐나요?
노래방 인기 덕분에 월 2,600만 원까지 저작권료가 나왔으며, 첫 정산금 2,600만 원을 부모님께 효도 선물로 드렸습니다.
Q3. 이영현이 저작권을 매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목돈이 필요했던 시기에 ‘체념’의 저작권을 팔았고, 현재는 저작권이 남의 떡이 됐다고 밝혔습니다.
Q4. 이영현이 겪은 어려움과 현재 활동은?
무대 공포증과 정신적 시련으로 활동을 중단한 적이 있으나, 현재는 실용음악 교수, 작곡가, 가수로 활발히 활동하며 음악적 유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