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됐다” 신고에 “부부싸움 같은데”…엽기적 살인 막지 못한 ‘그날’ [그해 오늘]
2012년 4월 1일 밤 10시 30분경.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 20대 여성 A씨가 조선족 오원춘(당시 42세)에 납치됐다. A씨는 오원춘이 자리를 비운 사이 112에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신고했지만,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A씨 흔적을 바로 찾지 못했다.

그날 밤 10시 30분쯤. 피해자 A씨는 일을 마친 뒤 귀가 중이었다. 그때 오원춘이 A씨에게 다가와 “돈을 줄 테니 성관계하자”고 제안했고, 거절하는 A씨를 집으로 끌고 갔다.
오원춘은 조사 당시 “집 앞에서 어깨가 부딪혀 시비 끝에 집으로 데려가 살해했다”고 주장했으나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오원춘은 걸어가던 피해자 앞에 갑자기 나타나 피해자를 밀치고는 자신의 집으로 끌고 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납치 후 피해자를 살릴 기회는 있었다. 18분 뒤인 오후 10시 50분쯤 A씨는 오원춘이 나간 사이 방문을 잠그고 112에 전화를 걸어 “납치돼 성폭행당하고 있다”며 피해 사실을 알렸다.
A씨는 자신이 있는 곳을 아는 대로 정확히 표현했다. 하지만 신고 접수자는 “주소 다시 한번 알려달라”는 질문을 반복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피해자의 구조 요청을 부부싸움으로 오인하는 실수도 저질렀다.
당시 통화 내용에서 A씨는 “○놀이터 전의 집인데 저 지금 성폭행당하고 있다”고 말했고, 경찰이 “○놀이터요?”라고 묻자 A씨는 “○놀이터 전의 집인데 어느 집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경찰은 “△동이요?”라고 다시 물었고 A씨는 “초등학교 좀 지나서 ○놀이터 가는 길쯤”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자세한 위치 모르겠냐”고 물었다. 이후에도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급기야 “누가, 누가 그러는 거냐”고 물었다. A씨는 “아저씨 아저씨 빨리요 빨리”라고 다급하게 외쳤다. 경찰은 “누가 어떻게 아냐”고 했고 A씨는 “모르는 아저씨”라고 답했다.
그 사이 오원춘은 방문을 열고 A씨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공포에 질린 A씨는 “잘못했어요. 아저씨 잘못했어요”라며 흐느꼈다. 이에 경찰은 “아는 사람인데? 남자 목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부부싸움 같은데”라고 했다. 전화는 곧 끊겼다.
신고 4분 후 순찰차 5대와 형사기동대 1개 팀 등 모두 16명이 최초 수색 활동에 나섰지만 피해자를 찾지 못했다. A씨 휴대전화 위치가 추적된 기지국 근처 500m 내외에서 빙빙 돌 뿐이었다. 늦은 시각 주택가라는 이유로 사이렌을 울리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 피해자 시신 무참히 훼손…사형→무기징역 감형
오원춘이 잡힌 건 그로부터 13시간이 지나서다. 다음날 경찰은 집 앞에서 어떤 여자가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비명을 들었다는 주민의 제보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 그 집 화장실에서 피해자 시신을 발견했다. 오원춘은 경찰에 “성매매를 하자며 제의했는데 완강히 거부해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오원춘이 피해자 시신을 심하게 훼손하는 등 범행이 잔혹하고, 반성의 기미가 없다며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오원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인육 제공이나 장기 밀매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며 “성폭행 목적 외에 다른 사람에게 인육을 제공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범죄를 엄중히 문책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피고인을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판결에 불복한 오원춘은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항소 이유에 대해 오원춘은 “사형에는 이견이 없으나 사람들이 (내가) 인육을 팔았다고 해서 (억울해서)”라고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재판부는 “범행 수법이 잔인하다”면서도 “인육 제공이나 장기 밀매를 목적으로 범행했다는 원심판결의 명확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판결은 2013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오원춘은 현재 경북 북부제2교도소(옛 청송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오원춘 사건은 경찰 112신고 대응체계의 문제를 드러낸 사례였다.
당초 경찰 발표는 흉악범 검거에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신고 시간과 범인이 체포된 시간 등이 알려지면서 경찰의 안일한 대응 논란이 일었다. 경찰은 신고 전화가 15초에 불과해 구체적인 장소를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지만 나중에 공개된 신고 녹취록은 1분20초 분량이었다. 뒤이어 언론을 통해 7분36초 분량의 녹취록이 확인됐다.
결국 이 사건으로 당시 경찰청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으며 경찰 11명이 징계를 받았다.
박윤희 기자 py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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