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경력 이영은 교수가 말하는 식품 보관의 과학

원광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이영은 교수는 40년 이상 식품과 영양학을 연구해온 전문가다. 서울대학교에서 학문을 시작해 농림축산식품부 추천으로 대통령 표창까지 수상한 그는, “건강한 식생활의 핵심은 식품을 어떻게 보관하고 조리하느냐에 있다”고 강조한다.
식품은 본래 부패하기 쉬운 구조
우리가 섭취하는 식품 대부분은 수분을 70% 이상 함유하고 있어 미생물에 의한 부패 위험이 높다. 특히 농산물은 수확 직후, 축산물은 도축 직후부터 미생물에 노출되기 때문에 빠르게 상할 수밖에 없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저장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옛 조상들은 건조, 염장, 당장(糖藏) 같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삼투압을 조절해 식품을 보존했다. 현대에 들어서는 냉장·냉동 기술의 발달로 저장 기간이 크게 늘어났으며, 최근에는 발효과학이 주목받고 있다. 발효는 단순한 보존 기술을 넘어, 새로운 풍미와 기능성 영양소를 생성하는 첨단 저장 기술로 자리잡았다.
건조 식재료도 방심은 금물
들깨가루, 고춧가루 등 건조된 가루 식재료는 쉽게 곰팡이가 피거나 산패가 일어난다. 이를 모르고 다량 구매해 실온에 방치할 경우, 유해한 물질이 생성될 수 있다. 특히 들깨가루는 지방 함량이 높아 산소나 빛, 열에 매우 민감하다. 따라서 가급적 소량으로 구입하거나 밀봉해 냉장·냉동 보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들기름 보관은 '이렇게'.. 잘못하면 독이 됩니다.

들기름은 식물성 기름 중에서도 오메가-3 지방산, 특히 알파-리놀렌산(ALA)의 함량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 지방산의 55~65%를 차지할 정도로 월등하며, 이는 EPA와 DHA로 체내에서 전환되어 심혈관질환 예방, 염증 완화, 두뇌 활성화 등 다양한 건강 효과를 나타낸다.
하지만 이처럼 불포화지방산이 많은 들기름은 산화에 특히 취약하다. 산화된 기름은 몸속에서 활성산소를 증가시키고 염증 반응을 유도해, 장기적으로는 암이나 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아무리 건강에 좋은 기름이라도 산패된 기름은 독이 될 수 있다.

실험에 따르면, 참기름은 실온에 보관해도 약 9개월 후에야 산패 지표인 과산화물가가 상승하기 시작하지만, 들기름은 5개월 이내에 급격한 산패가 진행된다. 따라서 들기름은 실온 보관 시 5개월 이내에 반드시 소비해야 하며, 장기 보관을 원할 경우 4℃ 이하 냉장 보관이 필수적이다. 냉장 보관 시에는 10개월까지 품질이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관할 때는 반드시 갈색 병 등 차광용기에 담고, 신문지나 알루미늄 포일로 감싸 직사광선을 차단해야 한다. 기름은 공기에 직접 노출되지 않아도, 한 번 빛이나 열에 노출되면 자동 산화가 진행되므로 ‘차광’이 핵심이다.
냉압착 들기름 vs 볶은 들기름
시중에서 판매되는 들기름은 크게 볶은 들깨로 짠 것과 볶지 않은 들깨를 저온 압착한 냉압착 제품으로 나뉜다. 볶은 들기름은 고소한 향이 강해 조리에 활용되기 좋지만, 산화가 빠르다. 반면 냉압착 들기름은 향은 약하지만 알파-리놀렌산 함량이 높고, 건강기능성 측면에서 우수하다.
냉압착 기름은 착유 수율이 낮아 가격이 비싸지만, 항염 및 항산화 효과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소비 목적에 따라 용도를 구분해 구매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고온에서 구운 ‘들기름 김’, 차라리 참기름을

마트에서 흔히 판매되는 ‘들기름에 구운 김’은 매우 높은 온도에서 가열 처리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들기름이 이미 산화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이후에는 자동 산화가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보관 기간이 길수록 품질 저하가 가속된다. 이영은 교수는 “들기름 김은 고온 조리로 산패가 빠르게 진행된다. 건강을 고려한다면 차라리 참기름이나 올리브유로 구운 제품이 더 안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과도한 불안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최근에는 농약, 방사능, 화학물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가 커지면서, 베이킹소다·식초 세척을 비롯해 과도한 세정법이 유튜브 등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오히려 식품의 영양소를 파괴하고, 편식을 유발하는 등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교수는 “식품은 과학적으로 안전하게 먹는 법을 배우는 게 중요하지, 무작정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며 “객관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구매, 보관, 조리 습관을 세워야 건강한 식생활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