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어스골퍼] "왜 18홀이고 14개일까? 골프 규칙에 담긴 흥미로운 '우연'과 '합의'

골프는 'Rules of Golf (골프규칙)'이라는 하나의 규범 아래에서 플레이하게 됩니다. 사실 규칙 책자 자체가 쉽게 읽히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도대체 왜 이런 복잡하고 까다로운 규칙이 만들어졌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많은데요. 이 방대한 규칙들 중에는 과학적인 근거보다 '우연'과 '합의'에 의해 규칙이 된 흥미로운 사례들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특정 시점의 결정과 역사적 우연이 굳어져 굳건한 '전통'이 되다

오늘은 왜 골프가 18홀로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가방 속 클럽은 왜 14개로 제한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정설'이라 믿는 이유가 있는가 하면, 어떤 경우에는 그저 하나의 '이야깃거리'에 불과한 불확실한 소문들도 섞여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위스키 설'이죠. 당시 스카치위스키 한 병을 잔에 따르면 딱 18잔 정도가 나왔고, 한 홀에 한 잔씩 마실 수 있다는 의미에서 18홀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논리적 설득력이나 사실 여부를 따지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골프와 술'을 낭만적으로 엮은 이야기는 충분히 그럴싸해 보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낭만적인 이야기만큼이나 실제 골프의 역사 역시 어떤 과학적이고 필연적인 계산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18홀이나 14개 클럽이라는 기준은 정교한 설계의 산물이라기보다, 특정 시점에 이루어진 '결정'과 '합의'가 오랜 시간 쌓여 굳어진 결과물에 더 가깝습니다.

세인트앤드루스 골프 코스의 모습, 18홀의 코스가 탄생한 곳입니다 <출처: 게티이미지>

18홀 -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의 홀수 변경

골프의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골퍼들이라면, 죽기 전에 반드시 쳐보고 싶은 골프장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코스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입니다. 골프가 태어났다고 알려진 바로 그곳입니다. 골프의 성지와도 같은 곳입니다.

이 성지가 현대 골프에 남긴 가장 거대한 유산 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18홀'이라는 숫자입니다. 사실 골프의 초창기에는 홀의 개수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었습니다. 지형의 생긴 모양에 따라 어떤 곳은 5홀, 어떤 곳은 12홀인 식이었죠. 성지라 불리는 세인트 앤드루스조차 1764년 이전까지는 총 22개 홀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변화는 1764년에 일어났습니다. 당시 세인트 앤드루스의 골퍼들은 코스의 초반 4개 홀이 너무 짧고 단조롭다고 느꼈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그들은 4개의 홀을 2개로 합쳐버리는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나가는 11개 홀'과 '들어오는 11개 홀' 중 각각 2개씩이 줄어들며 자연스럽게 합계 18홀이라는 숫자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결정에는 어떤 수학적인 설계나 논리적 근거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코스를 조금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한 지극히 실용적인 선택이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세인트 앤드루스의 권위가 워낙 압도적이었던 탓에, 전 세계의 골프장들은 이 우연한 숫자를 '표준'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한 골프장의 지형적 고민에서 비롯된 전통이 수백 년이 흐른 지금까지 전 세계 골퍼들의 라운드 기준이 된 셈입니다.

우리 골퍼들에게 기쁨과 슬픔, 심지어 '화나게' 만드는 18홀이 만들어진 계기가 오래전 스코틀랜드 골퍼들이 내린 그 우연한 결정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클럽을 운반하는 캐디의 모습, 1930년대 이전에는 몇 개의 클럽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규정이 없었습니다. <출처: 게티이미지>

14개 클럽 - 장비보다 기술을 중시한 역사적 합의

18홀이라는 숫자가 우연의 산물이라면, 우리가 가방 속에 넣고 다니는 '14개'라는 클럽의 숫자 역시 흥미로운 역사적 결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실 193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골프백 속에 몇 개의 클럽을 넣어야 한다는 규칙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장비의 발전이었습니다. 나무로 만들던 샤프트가 강철(Steel)로 바뀌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자, 선수들은 온갖 상황에 대비해 수십 개의 클럽을 가방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대 중반, 로슨 리틀(Lawson Little) 같은 선수는 무려 30개가 넘는 클럽을 들고 경기에 나섰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는 골프가 개인의 기술이 아닌 '장비의 물량 공세'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고, 무엇보다 그 무거운 짐을 모두 짊어져야 했던 캐디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1938년 USGA(미국골프협회)가 먼저 14개의 클럽 제한을 시작했고, 이듬해 R&A(영국왕립골프협회)가 이 결정에 동참했습니다. 여기에도 특별한 과학적 공식은 없었습니다. 그저 당시 가장 표준적인 클럽 세트인 우드 몇 개와 1번부터 9번까지의 아이언, 그리고 퍼터를 합쳤을 때 나오는 '적당한' 숫자를 합의한 결과였습니다.

"인간의 기술이 장비에 압도당해서는 안 된다"는 이 철학적인 결정은 이후 골프의 가장 강력한 전통 중 하나가 된 것이죠.

그동안 어렵고 복잡하게만 느껴졌던 골프 규칙 뒤에 이토록 인간미 넘치는 '비과학적(?)'인 배경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골프라는 스포츠가 조금은 더 만만하고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물론 필드 위에서 우리가 마주해야 할 골프의 난도 자체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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