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칸전투기 엔진 막자, 터키 "중국 것 쓰겠다"

뉴욕의 한 기자회견장. 터키 외무장관 하칸 피단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2025년 9월 28일, 그는 미국 의회가 터키의 차세대 전투기 KAAN에 필요한 핵심 엔진 수출을 차단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죠.

5세대 스텔스 전투기 개발국 대열에 합류하려던 터키의 야심찬 계획이 미국의 제재로 좌초 위기에 처한 겁니다.

더욱 흥미로운 건 이 사태가 인도네시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10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고 KAAN 48대를 주문한 인도네시아도 덩달아 난처한 상황에 빠졌으니까요.

과연 터키는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까요? 그리고 중국이라는 새로운 선택지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S-400 구매가 불러온 나비효과


사실 이번 사태의 시작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터키가 러시아제 방공 시스템 S-400을 구매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S-400

도널드 트럼프의 첫 임기 중에 발표된 CAATSA(적성국 제재법)는 러시아, 이란, 북한 같은 미국의 적대국으로부터 무기를 구매하는 동맹국들에게 제재를 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이었습니다.

2019년, 미국은 이 법을 근거로 터키에 첫 제재를 가했습니다.

당시 제재는 터키를 F-35 5세대 전투기 프로그램에서 퇴출시키는 것으로 시작됐죠. NATO 동맹국이자 F-35 부품 생산에도 참여하던 터키였지만 미국은 단호했습니다.

러시아제 무기 체계를 도입한 국가에게 최첨단 전투기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터키는 여기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F-35 프로그램에서 쫓겨난 대신, 자체 5세대 전투기를 개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KAAN입니다.

2024년 첫 비행에 성공하면서 터키는 자신들의 기술력을 전 세계에 과시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등장과 100억 달러 계약


KAAN의 성공적인 첫 비행은 터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단순히 자국 공군의 노후화된 F-16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 국제 무기 시장에서 수출까지 노릴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리고 2025년 7월, 드디어 첫 번째 고객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인도네시아였습니다.

인도네시아는 KAAN 48대를 주문하며 100억 달러, 한화로 약 167조 루피아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터키 입장에서는 자국 방산의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죠. 미국, 중국, 러시아에 이어 네 번째로 5세대 스텔스 전투기를 양산하는 국가가 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요.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KAAN이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미국산 F110 엔진이 반드시 필요했던 겁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체를 만들어도 심장에 해당하는 엔진이 없다면 그저 땅에 박힌 철덩어리에 불과한 것이죠.

터키는 자체 엔진 개발에도 나섰지만, TRMotor라는 터키산 엔진은 아직 개발 단계에 있었습니다.

미국 의회의 차단과 터키의 분노


에르도안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하칸 피단 외무장관은 숨기지 않고 분노를 드러냈습니다.

미국 의회가 F110 엔진의 수출 허가를 계류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입니다.

"CAATSA는 우리에게 큰 문제입니다. 아시아-아프리카 협력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라고 피단은 강조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이 문제는 단순히 터키만의 문제가 아니었죠.

인도네시아와 맺은 계약도 위험에 처했고, 터키가 추진하던 국제 방산 협력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피단은 "2019년 이후 발생한 CAATSA 문제는 두 동맹국 간 방위 시스템 거래를 방해하는 체계적인 문제"라며 미국의 조치를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NATO 동맹국끼리 이런 식으로 서로를 제재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죠. 엔진 허가가 미 의회에 계류 중이지만, 언제 승인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TRMotor, 영국과의 합작이 가져온 희망과 한계


터키는 처음부터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엔진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추진한 것이 바로 TRMotor 프로젝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프로젝트가 순수 터키 단독 개발이 아니라는 사실이죠.

TRMotor는 세계적인 항공엔진 제조사인 영국의 롤스로이스와 터키 기업들이 함께 설립한 합작기업입니다.

롤스로이스는 민간 항공기 엔진은 물론 군용 전투기 엔진 분야에서도 오랜 역사와 기술력을 자랑하는 기업입니다.

영국의 유로파이터 타이푼에 들어가는 EJ200 엔진 개발에도 참여했을 정도니까요. 터키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파트너를 찾기 어려웠을 겁니다.

롤스로이스의 기술력과 터키의 생산 능력이 결합된다면 5세대 전투기용 엔진 개발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죠.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5세대 전투기용 엔진은 현대 항공 기술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초고난도 기술입니다.

단순히 강력한 추력만 내면 되는 게 아니라, 스텔스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초음속 순항이 가능해야 하고, 극한의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하죠.

롤스로이스의 기술 지원을 받는다 해도 이런 수준의 엔진을 완성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터키의 국방 및 산업 전문가들은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TRMotor가 실제로 KAAN에 장착되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최소 7년은 더 걸린다는 것이죠.

롤스로이스와의 협력으로 기술 개발 기간을 어느 정도 단축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긴 시간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는 곧 인도네시아에 납품하기로 한 48대의 KAAN도 7년 이상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터키는 원래 향후 10년 안에 인도네시아의 주문을 이행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엔진 개발까지 고려하면 실제로는 20년 가까이 걸릴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물론 이는 TRMotor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가정 하에서의 이야기입니다. 터키 정부는 긴급 자금을 투입하며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지만, 기술 발전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죠.

더욱이 롤스로이스와의 합작이라는 구조도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영국 역시 NATO 회원국이고, 미국과 긴밀한 동맹 관계를 맺고 있으니까요. 만약 미국이 영국에 압력을 가해 롤스로이스의 기술 이전을 제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처럼 엔진 개발에는 많은 정치적 기술적 변수가 많아 TRMotor의 엔진 개발은 더욱 지연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결국 터키의 독자 엔진 개발 노력조차도 서방 동맹국들의 정치적 결정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상황인 것입니다.

러시아도, 중국도 선택지가 될 수 있을까


절박한 상황에서 터키는 다른 대안들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로 떠오르는 선택지는 러시아였습니다.

Su-57에 사용되는 엔진을 수입할 수 있다면 당장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었죠. 하지만 이 방법에는 치명적인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Su-57

우선 러시아에서 엔진을 수입하면 터키와 미국, 그리고 NATO 회원국들과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S-400 구매만으로도 이미 F-35 프로그램에서 퇴출당했는데, 전투기 엔진까지 러시아에서 들여온다면 NATO 탈퇴 압박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죠.

게다가 러시아 자체도 Su-57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현재까지 러시아가 생산한 Su-57은 고작 22대 정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중국입니다. 중국은 WS-15라는 5세대 항공기용 엔진을 이미 대량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WS-15 엔진

이 엔진은 중국의 5세대 전투기 J-20에 장착되어 실전 배치되고 있죠.

중국항공엔진공사 산하 베이징 항공재료연구소의 장융 디렉터는 중국중앙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WS-10과 WS-15 엔진의 양산이 완료되었습니다. 재료 선별 및 검증도 완료되었습니다."

중국 국방 평론가들은 베이징이 이 상황을 절호의 기회로 볼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터키에 WS-15를 수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5세대 항공기의 공동 개발까지 제안할 수 있는 황금 같은 찬스니까요.

기술적으로 보면 중국은 터키의 수요를 즉시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인 것입니다.

지정학적 딜레마, 터키의 선택은


하지만 중국산 엔진을 선택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정치적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터키는 엄연히 NATO 회원국이고, 중국은 NATO가 공식적으로 위협 국가로 지목되어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터키가 중국 엔진을 도입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아마도 더 강력한 제재가 뒤따를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하칸 피단 외무장관의 말은 터키의 복잡한 심경을 잘 보여줍니다.

"이는 기술적인 문제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미국과의 관계가 제한될 때, 이는 필연적으로 국제 시스템 내에서 대안을 모색하게 만듭니다."

다시 말해, 미국이 계속 터키를 압박한다면 터키도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인 셈이죠.

KAAN

터키는 2028년까지 KAAN을 대량 생산하여 노후화된 F-16 전력을 대체하고 싶어합니다. 시간이 촉박하고, 선택의 여지도 많지 않습니다.

자체 엔진 개발에는 최소 7년이 걸리고 롤스로이스와의 협력마저 정치적 변수에 좌우될 수 있으며, 러시아는 현실적인 선택지가 아니며, 중국은 가능하지만 정치적으로 위험합니다.

결국 터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대가를 치러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100억 달러를 투자한 KAAN 프로그램이 최소 7년 이상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향후 10년 내에 48대를 모두 인도받을 예정이었지만, 이제는 20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죠. 공군 현대화 계획이 차질을 빚는 것은 물론이고, 막대한 예산이 묶여버린 셈입니다.

결국 이 모든 상황은 현대 국제 무기 거래가 얼마나 복잡한 정치적 계산 속에서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입니다.

터키의 선택은 단순히 어떤 엔진을 쓸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어떤 진영과 함께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결정이 될 것입니다.

과연 터키는 NATO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자주 국방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나설까요?

전 세계가 터키의 다음 행보를 주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