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앞인데도 조용한 집값, 왜일까

역세권은 부동산에서 늘 '프리미엄'으로 통했다. 출퇴근 편의성, 유동 인구, 상권 활성화, 기대 수요까지 모두 잡을 수 있는 입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에서 가까운 집일수록 가격이 높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 '초역세권인데도 집값이 안 오르는 현상'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지하철역 바로 앞이라는 입지적 강점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피하는 실수요자들이 늘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초역세권이라는 타이틀만으로 높은 가격이 책정되지만, 실거래가는 분양가를 따라가지 못한 채 정체되고 있다. 단지 내 매물 회전율도 낮고, 전세가는 빠지고, 실거주 만족도도 낮다는 의견이 쏟아진다. 대체 이 현상의 배경은 무엇일까.
유동인구 많은데, 실거주는 어렵다
지하철역 바로 앞은 사람과 차가 몰리는 공간이다. 특히 상업시설이 밀집된 출입구 앞은 유동인구가 많아 낮과 밤의 경계가 흐릿하다. 24시간 유동 인구가 있다는 말은 반대로 말하면 24시간 소음 노출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초역세권 단지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실수요자들은 "이동은 편하지만, 주거지로서의 안정감은 떨어진다"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유흥가, 대형 마트, 버스정류장, 학원가 등이 겹치는 상업중심지 근처는 심야 시간대까지 소음이 지속되고, 차량 혼잡으로 공기 질이 나쁘며, 외부인의 유입이 잦아 치안 우려도 있다. 지하철역 앞이라고 해서 무조건 주거 만족도가 높지 않다는 것을 체감한 수요자들이 이른바 ‘초역세권 피로감’을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임대 중심 단지의 갭투자 후유증
초역세권에 위치한 오피스텔형 아파트나 소형 단지는 구조적으로 임대 수요가 몰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한때 투자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조건이었지만, 시장이 하락기에 접어든 지금은 되레 약점이 되고 있다. 전세 수요가 줄고, 매매가가 유지되지 않자 공실 리스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 외곽이나 신도시 지역에서는 2021~2022년 갭투자가 집중된 초역세권 구축 아파트에서 가격이 빠지고 있는 현상이 뚜렷하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역에서 도보 2분 거리인데도 전세가율은 떨어지고, 매도자만 많아졌다"며 "실거주보다는 투자 중심 단지였던 경우, 하락기에 민낯이 드러난다"라고 말했다.
구조적 한계, 실거주 외면한 설계
초역세권 단지는 대부분 역 주변 소형 부지에 들어서기 때문에, 단지 자체가 작고 커뮤니티나 조경, 주차 공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입지는 뛰어나지만 실내 구조나 단지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 실수요자들에게는 외면받는다. 실제로 신축임에도 불구하고 '방음 문제', '층간소음', '좁은 주차장', '지하철 진동' 등의 민원이 지속되는 단지가 적지 않다.
또한 역세권 공공주택 사업으로 들어선 단지나 상가주택 혼합구조 단지는 외부 환경이 주거 목적에 맞지 않아 실거주 비중이 낮은 구조로 고착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초역세권이라는 타이틀이 오히려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역 앞이라고 다 같은 역세권은 아니다
결국 문제는 ‘초역세권’이라는 이름 속에 숨어 있는 다양성이다. 역에서 가까운 거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근거리가 가져오는 부작용이 실거주자 입장에서는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앞으로의 시장에서는 ‘지하철역에서 몇 분 거리냐’보다 ‘그 역의 주변 환경과 단지의 특성은 어떤가’를 따져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역 앞이니까 무조건 오른다’는 공식은 깨졌고, 이제는 ‘역세권 중에서도 실거주 친화적인 역세권’만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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