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쇄살인’ 누명 쓴 피해자 유족에… 법원 “국가가 7700만원 배상하라”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불법 감금과 강압 조사를 당했던 고(故) 홍성록씨의 유족에게 국가가 7700여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1심 판단이 나왔다. 재판부가 국가 책임을 인정했지만, 유족이 청구한 4억7000여만원 중 일부만 받아들여지면서 유족 측은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906단독(재판장 안동철 부장판사)은 15일 홍씨의 자녀 2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가 자녀들에게 각각 38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 3월 국가가 유족들에게 각각 1억800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화해권고 결정을 했지만, 국가 측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정식 선고가 이뤄졌다.
홍씨는 1987년 5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 조사를 받았다. 유족 측에 따르면 홍씨는 구속영장 없이 약 7일 동안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조사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장시간 신문과 폭행, 수면 제한을 겪었다. 경찰은 이러한 조사 끝에 홍씨로부터 화성 연쇄살인 3·5·6차 사건에 대한 허위 자백을 받아냈고, 일부 증거물도 조작했다는 것이 유족 측 주장이다.
경찰은 이후 언론에 홍씨의 자백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언론 보도에서는 홍씨의 얼굴과 신상이 공개됐고, 범행 동기와 정신 상태를 단정하는 내용도 나왔다. 홍씨는 확실한 물증이 없어 석방됐지만, 이후에도 경찰의 탐문이 이어지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홍씨의 자녀들도 수사 과정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했다. 당시 각각 10세와 7세였던 자녀들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진술을 강요받았고, 아버지의 혐의와 관련한 압박성 질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홍씨는 사건 이후 사회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하다 2002년 3월 숨졌다. 2019년 이춘재가 진범으로 확인됐지만, 홍씨는 생전에 명예를 회복하지 못했다.
유족 대리인인 박준영 변호사는 선고 직후 “누구로부터도 사과받지 못한 상태로 낙인 속에서 산 당사자와 그 가족들의 피해에 대해서 국가가 책임 있는 모습 보일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러한 기대와 상당히 거리가 먼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어 “낙인 속에서 힘들게 살아온 삶의 고통을 이렇게 몰라주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며 “아쉬운 판결이지만 이 판결을 통해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억울하게 수사받은 분들이 권리를 주장할 길이 열려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길 바란다”고 했다.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과 관련해 억울하게 수사·처벌을 받은 피해자들의 국가배상 소송은 이어지고 있다. 8차 사건 범인으로 몰려 약 20년간 복역한 윤성여씨와 가족들은 2022년 총 21억7000만원의 국가배상 판결을 받았다. 법무부가 항소하지 않으면서 1심 배상액이 확정됐다. 9차 사건 범인으로 몰려 복역했다가 사망한 고 윤동일씨의 경우 지난해 10월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유족이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은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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