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 취약지 산모들 "'경남도 찾아가는 산부인과, 고마워요"

통계청이 최근 집계한 '분기별 인구동향조사'를 보면, 2024년 1분기(1~3월) 경남지역 출생아 수는 3433명이다. 경남 합계출산율은 올해 1분기 0.86명으로 같은 기간 전국 평균(0.76명)보다는 높았지만, 지난해 같은 시기(0.9명)보다는 낮았다.

이런 가운데 분만 취약지는 날로 늘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국립중앙의료원은 경남 18개 시군 중 절반이 넘는 13곳을 취약지로 선정했다. 경남도는 이런 사정을 고려해 2008년 3월 전국 최초로 '찾아가는 산부인과 사업'을 시작했다. 의료진은 의령·함양·산청 3개 시군을 번갈아 가며 군별로 월 3~5회씩 찾아 의료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경남도는 의료 취약지역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산부인과를 운영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산부인과 하나 없는 분만 취약지 = 지난 13일 오전 9시께, 아침 일찍부터 '찾아가는 산부인과'라는 글귀가 새겨진 15.5t 규모 빨간 특장차 한 대가 의령군보건소(의령읍 서동리)로 들어왔다. 의료 장비 12종이 구비된 차량이다.

구체적으로 혈압계, 신장체중계, 심전도기, 초음파 검진대(초음파 진단에 필요한 침상), 산부인과 검진대(전동), 흉부 엑스선 촬영기, 유방 촬영 장치, 골밀도측정기, 위상차현미경, 요비중측정기, 원심분리기 등이 마련돼 있다. 이를 활용한 간단한 진료가 차량에서 가능하다. 분만 시설은 따로 있지 않다.

이 차에 탄 인구보건복지협회 경남지회 소속 김진홍(59) 의사, 황희영(49) 임상병리사, 박지민(28) 간호사가 도착과 동시에 '내원객 맞이'에 들어갔다. 이내 드나드는 사람이 적던 보건소에 하나둘 여성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긴 줄이 만들어질 정도는 아니지만, 드문드문 한국인과 외국인, 그 가족들도 강한 자외선을 뚫고 진료차 모습을 드러냈다.

오전 10시 10분께, 의령읍에 사는 30대 임신부 이지은(가명) 씨가 익숙하다는 듯 차량 내부와 연결되는 여덟 칸짜리 철제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 한 칸 한 칸 올라 문을 옆으로 밀고 안에 들어갔다. 황 임상병리사가 짧은 인사 후 이 씨 키와 몸무게, 혈압을 연달아 확인했다.

"출산예정일이 바뀌었죠?" 뒤이어 김 의사가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 사이 공간에 놓인 의자에 앉아 물었다. 그러자 이 씨는 "출산예정일이 3월 9일이었는데 24일로 바뀌었다"고 했다. 불편한 곳은 없냐는 물음에는 "크게 불편한 것은 없지만, 2주 전쯤 출혈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쭉 듣던 의사는 초음파 검사를 하자고 했다. 결과는 정상.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말에 이 씨가 안도했다. 이어 두 달 뒤면 세상 밖으로 나올 배 속 아이 모습이 담긴 초음파 사진을 뗐다. 건강하게 태어나길 바라면서 오른손에 쥔 사진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경남도 찾아가는 산부인과 차량 내부. /김구연 기자

◇병·의원 한곳 없는 의령·산청·함양 = 보건복지부 의뢰로 국립중앙의료원이 진행해 지난해 12월 31일 발표한 '2023년 의료취약지 모니터링 연구' 결과를 보면, 의령은 △60분 내 분만 의료 이용률 30% 미만 △60분 내 분만 가능 의료기관 접근 불가 가임여성인구비율 30% 이상으로 분석됐다. 태아사망률은 1000명당 26.3명으로 도내에서 가장 높다.

해당 조사에서 의령은 남해, 합천과 함께 최상위 분만 취약지에 해당하는 A등급을 받았다. B등급은 사천·고성·산청·함양, C등급은 함안·창녕·하동·거창·통영·밀양이다. 같은 등급이어도 의령은 의료 환경이 유독 더 좋지 않다. 산부인과 진료를 볼 병·의원이 한 곳도 가동되지 않는다.

2년 전 같은 평가 때 A등급을 받았다가 지난해 B등급으로 하향 조정된 함양과 C등급 산청도 사정이 같다. 3개 지역 군민 모두 진료받으려면 창원과 진주까지 차로 1시간가량 나가야 한다. 한 번 갈 때마다 비용부담도 커 방문이 편할 리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의료진은 의령과 함양·산청을 주기적으로 돌면서 취약지 의료 공백을 메우고 있다. 의령 43회, 산청 57회, 함양 50회, 이렇게 연 150회다. 진료 시간은 오전 9시 30분~낮 12시, 오후 1시~2시 30분까지.

취약지에서 임산부만 진료하는 것은 아니다.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 가임기 여성, 남성 배우자도 진료 대상이다. 주요 내용은 산전 진찰을 비롯해 가임여성 임신 전후 건강검진, 비가임여성 건강검진, 배우자 건강검진, 유방암·난소암종양 표지자 검사, 니프티검사(고위험 임신부 태아 기형아 정밀검사) 등이다. 한 번 검사할 때마다 50만~70만 원이 드는 니프티검사는 올해 진료 대상이 기존 40세 이상에서 35세 이상으로 나이 폭을 낮춰 무료로 지원되고 있다.

인구보건복지협회 경남지회 소속 김진홍 의사. /김구연 기자

◇이용자들 호평 일색...만족도 98% = 도가 2008년부터 2023년까지 집계한 '찾아가는 산부인과' 분만 취약지 진료 건수는 3만 6207회다. 그중 내국인은 3만 823명, 외국인은 5116명이다. 만족도도 높다. 인구보건복지협회 경남지회가 지난해 이용자 100명을 대상으로 서면·문자 방식으로 진행한 만족도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 98%는 '검진 프로그램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이용 이유로는 '정기적인 순회진료가 편리해서'가 33%, '진료·검사를 무료로 받을 수 있어서'가 21%, 주변 주민에게 '찾아가는 산부인과를 소개하겠다'는 응답은 81%를 기록했다. 최근 1년간 병·의원을 이용하고 싶어도 이용하지 못한 이유를 묻는 문항에는 응답자 28%가 '병원이 멀어서'라고 답변했다.

임신 36주차인 주가영(42·의령군 의령읍) 씨는 "둘째를 갖기 전인 2년 전쯤부터 한 달 1~2회꼴로 다니다가 아이가 또 생겨 다시 찾아가는 산부인과를 찾고 있다"며 "집과 군보건소가 차로 3분 거리라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1시간씩 걸려 도시까지 나가지 않아도 되니 그 점이 가장 좋다"면서 "도시에서 산부인과를 다니는 지인 얘기를 들어보면 돈이 많이 들 때는 100만 원 가까이 나오기도 하는데 비용 절약 측면에서도 이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경남도 찾아가는 산부인과 내부 시설. /김구연 기자

다른 지역에서도 호평이 이어진다. 다음 달 21일 넷째 출산을 앞둔 캄보디아 국적 헤이소 베이소(36·함양군 백전면) 씨는 "2010년 9월 임신한 뒤로 아이 가질 때마다 꾸준히 찾아가는 산부인과 도움을 받고 있다"면서 "출산은 진주에서 하더라도 일상 진료는 집과 차로 10분 거리에서 받을 수 있어서 아이를 가질 때마다 큰 도움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한국말도 안 되고 아이 낳는 게 처음이라 모든 게 힘들었다"면서 "외국인인 나에게도 선생님들이 모두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마운 마음이 크고, 더 많은 사람이 내가 누린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의료진은 이런 반응에 큰 힘을 얻고 있다. 김진홍 의사는 "직접 취약지를 찾아 진료를 보는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돼 보람이 크다"며 "거리가 먼 곳까지 진료하러 가야 하는 점이 힘들긴 해도, 취약지 환자를 도울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산부인과 자체가 낮은 수가 문제에다 옛날에 비해 출산율이 낮아졌고, 분만 자체를 안 하는 추세라서 사실상 군 단위는 분만이나 진료받을 수 있는 곳이 극히 제한적"이라며 "그 점에서 이번 사업이 갖는 의미가 적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만난 분 중에서는 진료 때 자신도 모르고 있던 커다란 혹을 우연히 발견해 조기에 치료를 도운 적이 있었다"며 "추가로 장비 개선이 이뤄진다면 더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도는 우선 사업 지역을 더 늘리는 것은 현재로서는 계획하고 있지 않다. 초기까지만 해도 함안, 창녕, 고성, 남해, 거창에서도 진료했었지만, 산부인과 병원 측이 수입 감소를 이유로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병·의원 없는 세 개 지역으로 진료지가 좁혀진 것도 같은 배경이다. 고칠선 도 보육정책과 주무관은 "추가 반발 우려 탓에 진료 지역을 추가로 늘리지 못하고 있다"라면서 "찾아가는 산부인과 이용자 사이에서 호응도가 높은 만큼 일단 현행 지역 위주로 사업을 지속해서 이어 나갈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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