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웨스트우드가 패션의 역사를 바꾼 방법

패션계가 혁명가이자 소중한 친구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애도하는 가운데, 그의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되돌아본다.

진정한 의미의 패션 혁명가인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길을 개척했다. 펑크의 원조 격인 더비셔(Derbyshire) 태생의 그는 팝 문화의 가장 상징적인 순간을 정의하며 목적 없는 소비보다 문화적 혁신을 설파했다. 조니 로튼(Johnny Rotten)의 무명 셔츠, 나오미 캠벨(Naomi Campbell)의 전설적인 “추락” 사건의 원인이 된 높은 플랫폼 슈즈, 시위를 위한 런웨이 쇼 등 웨스트우드에게 의상은 창의적인 무기였다.

1950년대 로큰롤 전성기에 자란 웨스트우드는 14살 때부터 패션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아이에서 다 큰 여자로 변하는 시기가 완전히 일치했기 때문에 가장 놀라운 시간이었다. 바로 그 시기 우리는 옷을 만들고 있었다. 우린 로큰롤의 한중간, 바로 그 곳과 그 시기에 있었다.”라고 그는 2016년에 말했다. 하지만 그가 항상 패션과 관련된 직업을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런던 북부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을 시작한 웨스트우드는 포토벨로(Portobello) 시장에서 주얼리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미술학교 시절 연인이었던 말콤 맥라렌(Malcolm McLaren)을 만나게 된다. 1971년, 두 사람은 킹스로드(King’s Road)에 가게를 차렸고, 나머지는 패션의 역사가 되었다. “그는 나보다 네 살 어렸다. 어느 순간 그는 50년대를 재해석하고 싶다고 말했고, 나는 곧바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다.”

이후 웨스트우드는 맥라렌과 함께 직접 의상을 디자인했고, 나중에 매장 임대가 중단되자 본격적으로 패션에 뛰어들었다. 웨스트우드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지속하기로 결심했다.”라고 회상한다. “그게 내 의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그의 디자인은 사회 및 정치에 대한 특유의 비판적 메시지로 처음에는 조롱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박수를 받았다. 요즘에는 강의 계획서에 그의 작품이 없는 패션 강좌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결국,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부패와 기후 위기에 맞서며 패션 행동주의의 한 시대를 열었다.

물론 정치적으로 활발했던 그는 유머와 유쾌함의 화신이기도 했다. 미니어처 크리놀린, 본디지 팬츠, 해적 부츠 등을 통해 웨스트우드는 패션의 궤도를 새롭게 정립했고 그 유산은 이제 그의 남편이자 공동 작업자인 안드레아스 크론탈러(Andreas Kronthaler)를 통해 유지되고 있다. 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웨스트우드가 남긴 무수한 이정표 중 일부를 되돌아본다.

테드와 펑크(Teds and Punks)

오늘날 ‘월드 엔드(Worlds End)’로 알려진 맥라렌과 웨스트우드의 가게는 디자이너 트레버 마일스(Trevor Myles)의 ‘미스터 프리덤 앤드 파라다이스 개러지(Mr Freedom and Paradise Garage)’로 운영되며 이미 서브 컬처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430 킹스 로드에 ‘렛 잇 락(Let It Rock)’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1960년대 런던 반문화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맥라렌과 웨스트우드의 환상적인 상상력 아래 1950년대 스타일의 의상과 장식에 매료된 테디 보이(teddy boys)들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되었다. 고인이 된 아내 겔린데(Gerlinde)와 함께 300점이 넘는 웨스트우드 제품을 수집한 마이클 코스티프(Michael Costiff)는 “킹스로드는 전 세계 패션의 중심지나 다름없었다”고 회상한다. “나는 그들이 이사 온 날부터 알고 지냈는데, 웨스트우드는 재봉틀 뒤에 앉아 주크박스를 틀어놓고 있었다. 그들은 남들처럼 인생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평범한 부부였다.”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두 사람은 가게의 이름과 테마를 계속 바꾸었다. 1973년에는 바이커 장비 전문점인 ‘투 패스트 투 리브, 투 영 투 다이(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로, 1974년에는 라텍스와 방독면이 즐비한 변태들의 천국 ‘섹스(Sex)’로 이름을 바꿨다. 안하무인으로 악명 높았던 점원 조던(Jordan)이 근무한 ‘섹스’는 페티시스트와 패셔니스타로 구성된 열혈 고객을 끌어모으며 펑크의 씨앗을 뿌렸다.

가게는 1976년에 ‘세디셔너리(Seditionaries)’라는 이름을 채택하고, 본디지와 같은 과거의 섹시 컨셉을 일부 차용하여 펑크 룩의 원형을 만들었다. 타탄 본디지 수트는 이 매장의 상징이 되었으며, 이들의 가장 유명한 친구였던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는 스와스티카와 누드가 새겨진 의상으로 빌 그룬디(Bill Grundy)를 영국 TV에서 출연 금지시킨 전설적인 인터뷰에 나서 유명해졌다.

해적과 마녀(Pirates and Witches)

결국 웨스트우드는 펑크에 환멸을 느꼈다. 섹스 피스톨스가 이미 해체했고 동시에 새롭고 화려한 신이 생겨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말에는 뉴 로맨틱(The New Romantic) 신이 생겨났고 펑크 신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차림새를 바꿨다.”라고 DJ 프린세스 줄리아(DJ Princess Julia)는 회상한다. “1978년 무렵 블리츠 클럽(the Blitz Club)이 시작되었고, 80년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다.” 자연스레 웨스트우드도 적응했고, 1979년에는 가게 이름을 ‘월드 엔드(World End)’로 바꾸며 가게의 또 다른 장을 열었다. 맥라렌이 음악에 더욱 몰두하는 동안 웨스트우드는 펑크를 다시 불러와 하이패션에 첫 발을 내딛는 무대를 마련하는 등 활동의 기반을 다졌다.

웨스트우드는 데뷔 컬렉션인 81-82 가을-겨울 컬렉션을 위해 역사책의 프랑스 혁명과 항해하는 해적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Pirates”라는 제목을 붙인 낭만적이고 모험적인 스타일은 해적 부츠, 펠트 해군 모자, 아래로 떨어지는 스타킹이 인상적이었다. 뉴 로맨틱에서 발전한 이 룩은 곧 맥라렌의 고객이자 ‘월드 엔드’의 단골인 밴드 ‘아담 앤 디 앤츠(Adam and the And)’에 의해 유명해졌다. 레이 페트리(Ray Petri)의 반항적인 ‘버팔로(buffalo)’ 스타일을 오마주한 ‘Buffalo Girls’ 컬렉션으로 82-83 가을-겨울 컬렉션을 마무리한 웨스트우드는 기괴한 실루엣, ‘스퀴글(squiggle)’ 프린트, 재활용 소재로 브랜드의 색을 공고히 하며 반패션적인 접근 방식을 이어갔다.

그 후 형광색 그래피티가 그려진 스커트 수트와 마녀 모자가 가득한 패션계의 첫 번째 키스 해링(Keith Haring) 콜라보레이션인 83-84 가을-겨울 ‘Witches’ 컬렉션이 공개되었다. 당시만 해도 웨스트우드의 작품은 주류 패션계의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해당 컬렉션의 의상은 경매에서 최고 3만 6,000파운드에 거래되고 있다. 85 봄-여름 시즌 즈음에는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웨스트우드가 승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크리놀린 소재를 미니 스커트에 적용한 웨스트우드는 포스트모던적 감각을 구현한 ‘미니 크리니(mini-crini)’를 탄생시켰다.

트위드, 타탄 그리고 토플

웨스트우드는 해리스 트위드(Harris Tweed) 87-88 가을-겨울 컬렉션을 통해 80년대 후반까지 오래된 브랜드에 변화를 주었다. 우연히 해리스 트위드 코트와 발레슈즈를 신은 어린 소녀를 만나 영감을 받은 웨스트우드는 보수적일 수 있는 해리스 트위드를 새빌 로(Savile Row)의 정밀한 재단으로 손질해 겨울에도 입을 수 있는 코트와 어울리는 미니 크리니와 왕관을 만들고, 시그니처인 라킹 홀스(rocking-horse) 구두로 룩을 완성했다. 웨스트우드의 컬렉터인 스티븐 필립(Steven Philip)은 “해리스 트위드를 사용하는 것은 유행이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웨스트우드는 영국 사회, 공립학교 교복, 왕실의 공주 등을 영감으로 삼아 영국적이라는 개념을 전복하고 유쾌하게 풀어냈다.”

패션 저널리스트들은 웨스트우드의 패션에 영향을 받은 또다른 스타일에 ‘태틀러(Tatler, 80년대 토리(Tory) 스타일에 엣지를 더한 스타일)’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이 아이러니를 놓치지 않은 웨스트우드는 나중에 “이 여자는 한때 펑크였다(This Woman Was Once a Punk)”라는 제목의 1989년 4월 태틀러(Tatler) 잡지 표지 화보에서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로 분장했다.

실제로 웨스트우드는 문화적 요소를 차용할 때 관습과 전복의 균형을 유지하며 시대를 반영했다. 그의 코르셋 사용을 예로 들자면, 여성 억압을 상징하는 아이템이었던 코르셋을 웨스트우드는 90-91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로코코 디자인으로 재탄생시켰고, 앵글로마니아(Anglomania) 93-94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골드 루렉스 소재를 사용하여 아우터웨어 아이템으로 재탄생시켰다. 여기에 그만의 시그니처 타탄 패턴인 맥앤드레아스(McAndreas), 그리고 나오미 캠벨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엄청나게 높은 플랫폼 슈즈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영국적인 시대정신 그 자체가 완성되었다.

에디터 Joe Bobowicz
번역 Kim Yong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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