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의 시대’ 마침표 찍은 한은… “가계부채 대책 효과 있었다”

최온정 기자 2024. 10. 1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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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 3.5→3.25%로 인하… 동결행진 종료
9월 가계대출 5.7兆 늘어… 전월比 증가 폭 축소
물가 상승률 1.6%로 ‘뚝’…물가안정 목표 달성
채권시장 반응 미미… “내년 분기별 25bp씩↓”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3.25%로 인하하면서 2021년 8월 시작된 긴축기조에 종지부를 찍었다. 은행권의 대출규제 강화 이후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했고,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1%대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게 주된 판단 근거였다. 한은은 금융안정 상황과 수도권 집값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결정하기로 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11일 열린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25%로 0.25%포인트(p) 인하했다. 이로써 1년 7개월째 지속된 역대 최장기간 동결 행진도 종료됐다. 한은은 지난해 2월 금리를 3.50%로 동결한 후 4·5·7·8·10·11월과 올해 1·2·4·5·7·8월까지 13번 연속 금리를 유지한 바 있다.

◇ “가계부채 의미있는 진전… 소폭 금리 인상으로 물가안정 달성”

한은이 공개한 통화정책방향 결정문(통방문)을 보면 가계부채와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꺾였다는 데에 대한 안도감이 묻어났다. 한은은 통방문에서 “정부의 거시건전성 정책 강화로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되기 시작했다”면서 “주택시장은 수도권에서는 가격 상승세가 둔화되고 거래량도 축소됐으며 지방에서는 부진이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기준금리 결정에 관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8월 금통위까지만 해도 한은은 심상찮은 가계부채 증가세를 우려했었다.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부동산·가계부채에 따른 금융 안정 신호는 지금 막지 않으면 좀 더 위험해질 가능성이 커지겠다”면서 “현 상황에서 한은이 이자를 급격히 낮추거나 유동성을 과잉 공급해서 부동산 심리를 자극하는 실수를 범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달부터 가계대출 잔액 증가세가 꺾이자 한은의 판단도 달라졌다. 한은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은 1135조70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5조7000억원 늘었다. 증가 폭은 전월(9조2000억원)의 62% 수준으로 작아졌다.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6조2000억원 증가·896조8000억원) 증가 폭도 전월(8조2000억원)보다 2조원 축소됐다.

이날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창용 총재는 “(가계부채는)정부의 거시건전성 정책 강화 이후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면서 “9월 아파트 거래량이 7월 대비 2분의1 수준이고, 수도권 가격 상승률도 8월의 3분의1 수준이다. 주택담보대출이 2~3개월 전 주택 거래량에 후행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미뤄볼 때, 11월쯤 되면 대출 규모도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한은은 주요 책무 중 하나인 ‘물가 안정’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나타냈다. 통방문에서는 “국내 물가상승률은 안정세가 뚜렷해졌다”면서 “9월 중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6%로 낮아졌으며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율(1년 뒤 물가 수준에 대한 일반인들의 전망)도 2.8%로 낮아졌다. 앞으로 물가상승률은 낮은 수요압력으로 안정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 총재는 “지난 2년간의 물가를 안정시키는 과정은 한 사이클은 끝났다고 본다”면서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물가 목표 2%를 달성했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외환시장 등 문제를 해결했다”면서 “주요국보다 적은 폭의 금리 인상으로 빠르게 물가안정을 달성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 “연내 추가 인하는 어려울 듯… 내년 분기별 25bp씩 인하”

시장 관계자들은 일단 모처럼 맞닥뜨린 한은의 금리 인하 결정을 반기면서도, 통방문과 기자회견을 통해 암시된 ‘점진적인 인하 속도’에 주목했다. 우선 연내 추가 인하는 없다는 점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금통위 회의는 올해 단 한 차례(11월 28일)만 남았다.

그래픽=손민균

김명실 iM증권 연구위원은 “큰 이변이 없다면 당장 11월에는 5명의 금통위원이 ‘인하’로 돌아서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향후 부동산 가격이나 가계대출과 같은 금융안정 요인을 계속해서 고려하겠다고 강조한 점 역시 다음달 추가 인하 가능성을 낮추는 포인트로 해석된다”고 했다.

내년 들어서는 분기당 25bp씩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류진이 SK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금융 안정이 여전히 주요 변수”라며 “인하 속도는 가계부채 증가세를 자극하지 않도록 내년 3분기까지 분기당 25bp씩 점진적으로 인하해 내년 3분기 중립금리 수준인 연 2.5%에 도달할 전망”이라고 바라봤다.

박석길 JP모건 이코노미스트도 내년 1·2분기(1·4월쯤)에 분기별 25bp씩의 인하를 전망했다. 그는 “한은의 후속 결정은 금융안정 등 정책 목표 간의 상충 관계를 고려해 신중하게 내려질 것”이라며 “되레 중립적인 입장에서 더욱 조심스러운 선택을 해나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평가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이날 채권시장의 반응은 미미했다. 10월 인하는 충분히 예견된 재료였던 데다, 전일 발표된 미국 물가·고용 지표 등 결과는 악재로 작용하는 등 복합적이었기 때문이다. 한은 총재가 금융 안정을 강조한 점을 고려할 때 11월 추가 인하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채권시장의 추가 강세 압력을 저지한 모양새다.

이날 금리 인하로 국고채 금리는 대부분 연물에서 하락했지만, 하락세가 그리 강하진 않았다.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1.5bp 내린 연 2.947%를 기록했다. 5년물과 10년물 금리는 각각 1.6bp, 0.3bp 내린 연 2.998%, 연 3.085%로 마감했다. 30·50년물 초장기채의 경우, 오전에 하락하다가 오후엔 되레 상승 전환했다. 각각 0.3, 0.2bp 오른 연 2.911%, 연 2.837%로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오후 3시30분 종가 기준 전날보다 0.7원 내린 1349.50원에 거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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