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유치원 교사 사망 파장... “아파도 쉴 수 없는 구조가 죽음 불렀다”
【베이비뉴스 이유주 기자】
"'아파도 교실에서 죽어라'는 현실, 이제 끝내야 합니다."
박영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위원장은 30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부천 사립유치원 교사 사망 관련 기자회견에서 "아파도 교실에서 아파라, 죽어도 교실에서 죽어라, 선생님의 건강도 실력이라는 관리자들의 낡은 인식과, 아픈 교사를 대체할 수 없어 내가 아프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는 구조적인 시스템이 초임교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전교조가 개최한 기자회견은 최근 경기 부천의 한 유치원에서 20대 교사가 고열과 통증 속에서도 출근을 이어가다 끝내 숨진 사건과 관련해, 고인의 사망 경과와 진상을 공개하고 직무상 재해 인정과 제도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됐다.

◇ 39.8°C 초고열 속에서도 근무… "나오지 말라고 안하는데 어떻게 출근을 안해"
전교조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1월 24일부터 고열을 동반한 감기 증세를 보였으나 발표회 준비와 신입생 OT 준비 등으로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같은 달 27일에는 퇴근 후 병원을 찾아 수액 치료를 받던 중 원장에게 이를 알렸다. 고인은 원장에게 "원장님, 독감 검사를 했는데 B형 독감이라고 해요. 몸 관리 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수액 맞아서 증상은 금방 호전될 것 같습니다. 내일 마스크 쓰고 출근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에는 부모가 출근을 만류했으나, 고인은 "나오지 말라고 안하는데 어떻게 출근을 안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고인은 30일 39.8°C의 초고열 속에 조퇴 의사를 밝혔지만 학급 인수인계 등의 이유로 곧바로 퇴근하지 못했고, 결국 새벽에 응급실로 이송됐다. 당시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으며 의식을 잃은 상태였으며, 이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이어갔으나 2월 14일 B형 독감으로 인한 패혈성 쇼크로 사망했다.
고인의 마지막 메시지는 "숨쉬기가 너무 불편해. 흉통이 아파. 기침을 너무해서.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 기침은 계속 나와"였다.
고인의 아버지 A씨는 "병가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유치원 교사들의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다. 아픈 몸으로도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교사들의 상황을 생각하면 부모로서 가슴이 찢어진다"며 "선생님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들을 돌볼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들을 돌보는 교사들이 보호받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박도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기지부 부지부장은 "아이들을 사랑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어느새 서류를 꾸미는 기계가 되고,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버리는 곳, 그 결과 교사가 단 2년 만에 소모품처럼 쓰이다 버려지는 곳이 바로 사립유치원의 현실"이라며 "아파도 쉴 수 없는 구조는 사립뿐만 아니라 공립유치원 역시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모든 교사가 아파도, 심지어 독감에 걸려도 관리자의 눈치와 동료 교사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쓰러져도 교실에서 쓰러져야 순직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교사들의 뼈아픈 농담은 사실 우리들의 가혹한 노동 현실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재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기지부 지부장은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난다'던 고인의 마지막 절규는 대한민국 유아교육 현장이 청년 교사에게 얼마나 비정한 일터였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한다. 이것이 2026년 대한민국 유아교육 현장의 민낯"이라며 "교사가 아파도 쉴 수 없는 곳, 질병관리청의 지침조차 지켜지지 않는 곳에서 아이들의 안전을 논하는 것은 기만이다. 고인의 죽음은 명백한 '직무상 재해'이며, 정부 당국은 즉각 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질병관리청과 교육부가 마련한 시설별 인플루엔자 대응 지침에서는 감염병에 걸렸거나 감염이 의심되는 학생이나 교직원에 대해 등교 중지를 권고하고 있다. 다만 이는 의무 사항이 아닌 권고 수준에 그친다.
◇ 사직서 조작 의혹… "죽음마저 책임 회피"
이 지부장은 "더욱 분노스러운 것은 해당 유치원의 파렴치한 행태"라고 강조했다.
이어 "고인이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던 그 시각, 유치원은 고인의 사인을 허위로 기재하고 자필 서명을 위조해 의원면직 신청서를 작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죽음마저 조작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립유치원의 비정한 범죄 행위에 대해 철저한 수사와 엄중한 처벌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사망 직전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사직서를 둘러싸고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고인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지난 2월 10일 사직서가 허위로 작성됐고, 12일 면직 처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부천교육지원청을 찾아 유치원 측이 제출한 사직서를 확인했으며, 해당 문서는 고인이 사망하기 나흘 전이다. 문서에는 고인의 서명이 포함돼 있었다.
이에 대해 A씨는 "당시 딸은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딸이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더해 유가족은 지난 3일 해당 유치원 앞에서 시위를 벌였으나, 부천시교육청이 유가족을 민원 유발자로 규정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아울러 고인은 초과근무나 휴일 근무를 하고도 수당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 "병가가 '도박' 되는 구조 바꿔야"
전교조는 "사립유치원을 더 이상 사적 영역의 사각지대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교사의 병가가 '일자리를 건 도박'이 되는 구조적 모순을 끝내야 한다"며 "정부는 감염병 발생 시 관리자의 병가 승인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실효성 있는 대체 인력 체계를 즉각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사립유치원의 공적 책무성을 강화하고 법인화 전환 등 근본적인 개선을 통해 제2, 제3의 비극을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교육 당국은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고인의 직무상 재해를 즉각 인정할 것 ▲정부는 법정 감염병 시 교사의 병가 사용 승인을 의무화하고 실효성 있는 대체 인력 체계를 구축할 것 ▲사립유치원의 공적 책무성을 강화하고 관련자를 엄중히 처벌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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