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봇은 앵무새, 상담원은 통화중… 고객 분통 터진다

유소연 기자 2023. 1. 3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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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 고객센터, 어설픈 디지털화로 불편만 커져

“상담원과 연결이 너무 안 되네요. 전화 부탁드려요.”(A신용카드 이용자)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에요. 고객센터 OOO-OOOO으로 문의 주세요.”(챗봇)

권모(42)씨는 최근 신용카드 발급을 신청했다가 이를 취소하기 위해 A카드회사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지만 상담원과 통화하지 못했다. 30분간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었지만 통화 대기음만 들렸다.

결국 권씨는 카드회사 모바일 앱을 깔고 채팅 상담을 신청했다. 채팅 상대방은 사람이 아닌 챗봇(채팅 로봇)이었다. ‘신청한 카드 발급을 취소하고 싶다’고 했더니 챗봇은 엉뚱하게 ‘카드 해지’를 안내했다. 권씨가 ‘상담원과 통화하고 싶다’고 하자, 챗봇은 ‘유선으로 연락하라’고 했다. 권씨는 “상담원 목소리 듣기가 대통령과 통화하기보다 힘들다는 말이 나온다. 너무 답답해서 폭발할 지경”이라고 했다.

디지털화 바람이 불면서 금융사들은 최근 몇 년 사이 우후죽순 챗봇을 도입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과 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 등 7개 전업 카드사 모두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한 챗봇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방은행이나 저축은행 등도 챗봇 바람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아직 상담원과 대화하는 느낌이 날 정도로는 기술 수준이 높지 않아 소비자들의 불편만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들은 “고객센터가 똑똑해졌다”고 홍보하지만 소비자들은 “인공지능이라고 해서 문의했더니 앵무새 같은 답변만 내놓는다”고 불만이다.

그래픽=백형선

◇금융사 ‘챗봇’ 바람…속 터지는 답변

30일 본지가 B은행 챗봇에 접속해 ‘현재 유지 중인 신용대출 한도를 늘리고 싶다’는 상담 글을 남겼더니 챗봇은 대출 상품 안내 창으로 연결해줬다. 이용자의 신용대출 한도가 현재 얼마인지 확인하거나 한도를 늘리는 방법을 안내하는 기능 등은 없었다.

이 은행은 “챗봇이 ‘예·적금 가입’, ‘이체 한도 변경’, ‘환전 신청’ 같은 업무를 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이런 업무들은 굳이 챗봇을 거치지 않고도 모바일 앱에서 몇 번 터치하면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것들이다. 다른 은행들도 비슷한 수준에서 챗봇 상담을 처리하고 있다.

카드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용 내역 조회’, ‘즉시 납부’, ‘분실 신고 및 재발급’처럼 앱에서도 할 수 있는 업무를 검색해주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또 챗봇이 제대로 안내해도 결국 모바일 앱으로 업무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디지털 기기 이용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에게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사 챗봇은 대부분 수백 가지 고객 상담 시나리오를 미리 입력한 뒤 답변하게 하는 룰 기반(Rule-based) 방식이다. 정해진 질문에 대해 사전 입력된 답변을 내보내 고객이 화면에서 필요한 업무를 누를 수 있게 한다. 문장이 복잡하면 기술적으로 챗봇이 이해하기 어렵다.

입력되지 않은 질문을 받았을 때 챗봇은 “지원하지 않는 기능입니다” “잘 못 알아듣겠어요” 같은 답을 한다. 응답에 실패할 때 보내는 폴백(fallback) 메시지인데, 이런 폴백을 받은 고객은 챗봇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고객센터 전화 문턱만 높아져

특히 실제 상담원과 통화해야 안심되는 금융 거래의 경우 전화 상담 연결이 어렵다는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1년 전화 상담을 운영하는 기관 200여 곳 만족도를 조사했더니 ‘상담원 연결 시간’ 항목에서 금융 투자·결제 서비스(73.5점)와 은행(80점)은 평균(80.7점)보다 만족도가 더 떨어졌다. 상담원 연결 대기 시간은 평균 36.9초로 전년(21.44초)에 비해 1년 새 15.46초 길어졌다.

한 시중은행 AI 부서 관계자는 “비대면 거래의 증가로 상담 수요가 늘고 있지만 상담원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며 “챗봇을 도입한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상담원 연결을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금융사는 전화를 건 고객에게 상담 내용을 선택하게 하고, 상담원 연결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엔 챗봇 안내를 해주는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상담원 업무 처리는 편해졌지만, 고객 입장에서 상담원을 만나기까지 문턱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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