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이냐 '관행'이냐…공정위는 알고 있다

김아름 2024. 9. 2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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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유통]'유통업계 갑질' 박멸 나선 공정위
무신사·올리브영 잇따라 현장조사 나서
유통업계선' 관행' 주장하는 경우 많아
그래픽=비즈워치
[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편집자]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그 조직

유통업계에는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그 사람' 같은 조직이 하나 있습니다. 기업들 중 이 조직과 연관돼서 좋은 경우가 있었던 경우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 번 걸리면 '혐의 없음'으로 빠져나갈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유통업계의 저승사자라고 할 만합니다. 바로 '공정거래위원회'입니다.

공정위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일까요. 공정위 홈페이지에는 '독점 및 불공정 거래에 관한 사안을 심의 의결하기 위해 설립된 국무총리 소속의 중앙행정기관이자 합의제 준사법기관으로 경쟁정책 및 소비자정책을 수립 운영하며 관련 사건을 심결 처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래픽=비즈워치

공정위가 밝힌 주요 기능도 한 번 볼까요. 각종 진입장벽 및 영업활동을 제한하는 반경쟁적 규제를 개혁하고 시장지배적지위남용행위·부당한 공동행위 등 불공정거래행위를 금지해 공정한 경쟁질서를 확립하는 게 첫 번째 기능입니다.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약관을 시정하고 표준약관을 보급해 불공정 약관에 따른 피해를 방지하는 일, 허위·과장광고를 시정하고 소비자에게 필요한 정보는 필수 공개하도록 하는 일도 공정위의 주 업무입니다.

또 하도급대급지급·물품수령 등 하도급 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형업체들의 각종 불공정행위를 시정하고 기업집단 계열사간 상호출자·채무보증 금지·부당내부거래 억제 제도 등을 운영해 대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는 일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도 있습니다. 

'갑'들의 천국

최근 유통업계에서 공정위의 활약(?)은 눈부십니다. 지난달에는 쿠팡이 자체 상품을 상단에 노출했다는 이유 등으로 유통업계 사상 최대인 162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습니다. CJ프레시웨이도 인건비 부당 지원 혐의로 245억원의 과징금을 물게 됐죠. 지난해 말엔 CJ올리브영이 납품업체들을 상대로 경쟁사에 입점하지 못하도록 막는 행위를 갑질로 규정하고 약 1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이밖에도 큐텐 사태나 편의점·배달플랫폼의 불공정관행도 조율에 나섰습니다.

지난주엔 CJ올리브영 본사로 현장조사를 나가기도 했습니다. CJ올리브영이 납품업체들에게 무신사가 개최한 '무신사 뷰티 페스타'에 참가하지 않도록 압박을 했다는 혐의 때문입니다. 지난해 과징금을 낸 이슈와 똑같은 일이 1년여 만에 재발한 겁니다. 진위 여부는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CJ올리브영으로서는 손에 땀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픽=비즈워치

무신사가 피해자이기만 한 건 아닙니다. 뷰티 시장에서 CJ올리브영과 비교하면 '을'이지만 패션 플랫폼 시장에서의 무신사는 '갑'이기 때문입니다. 무신사 역시 입점 브랜드들이 다른 패션 플랫폼에 입점하지 못하도록 압박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이 의혹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한 쪽에서는 갑질을 당한 것 같다던 기업이 또 다른 곳에선 똑같은 방식으로 갑질을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공정위의 손길은 공평합니다. 지난달 공정위는 무신사 본사 현장 조사에 나섰습니다. 공정위의 움직임과 쏟아져나오는 기사들을 보면 유통업계는 그야말로 갑질의 천국입니다. 

그놈의 '관행'

물론 공정위가 유통업계만을 타깃으로 하는 건 아닙니다. 최근엔 구글이 유튜브 프리미엄에 유튜브 뮤직을 끼워팔고 있다는 의혹을 조사하기도 했죠. 그럼에도 유독 유통업계가 공정위의 레이더에 많이 걸려드는 건 유통업계가 유난히 '관행'이 많은 업계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은 유통업계의 특성에서 기인합니다. 유통 기업 자체도 IT·전자·화학·중공업 등 다른 산업군에 비해 규모가 작고, 이들이 거래하는 곳들도 영세한 개인사업자이거나 소기업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때문에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곳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앞서 무신사와 CJ올리브영 등이 걸려든 '타 플랫폼 판매 금지' 요구는 사실 업계에서 당연시되던 관행 중 하나였습니다. 심지어 업계 수위 업체가 아닌 카카오스타일(지그재그)도 입점업체에 비슷한 요구를 해 오다가 최근 공정위의 레이더에 걸려들었죠. 꼭 1위 업체만 이런 행위를 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최근 5년간 공정위 승패소율 현황/사진=공정위

하지만 결과는 공정위가 옳다고 말합니다. 공정위는 올해 상반기 확정판결이 난 소송 43건 중 36건에서 승소해 83.7%의 승소율을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일부승소까지 포함하면 승소율이 90.7%에 달합니다. 기준을 과징금으로 바꾸면 1325억2000만원 중 1314억원을 승소, 99%가 넘는 금액을 인정받았습니다. 기업의 억울함과 달리, 법원은 공정위의 문제 지적이 타당했다고 봤습니다. 

처음에는 억울할 수 있지만 남들이 다 내가 문제라고 하면, 한 번쯤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해야 합니다. 지금 유통업계가 그렇습니다. 매번 똑같은 이슈로 조사를 받고, 과징금을 부과받고, 대중에게 비판받는다면 관행을 몰라주는 세상을 탓할 게 아니라 이 관행이 문제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논어에서 공자는 평생을 지켜야 할 단 한가지를 묻는 제자 자공의 질문에 '네가 원하지 않는 바는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관행을 이야기하는 기업들에게 전해 주고 싶은 한 마디입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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