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왜 일본의 불법 식민통치를 눈감아주나
역사 시계 되돌리는 대한민국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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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부정한다면 그 미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더구나 그 미래가 스스로의 소멸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무엇을 위한 부정인가. 자기희생을 통한 자아 부정은 숭고한 종교적 행위이겠지만, 권력자가 권력을 휘둘러 피해자에게 희생을 강요한다면 폭거일 뿐이다. 국가의 원수가 국가 정체성을 부정한다면 국가를 대표할 자격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대통령이 국제평화나 평화적 통일과는 거리가 먼 미래를 지향한다면 헌법적 의무에 반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정체성 자체를 부인했다. 3월6일 박진 외교부 장관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제3자 변제’ 방식으로 배상하겠다고 발표했고,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이 ‘해법’이 안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을 원수로 하는 대한민국이 일본제국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스스로 지웠다는 것이고, 헌법에서 대한민국 법통의 근원으로 명시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당성을 부인했다는 점이다.
불법 강제동원 역사 따지자는 건데
2018년 한국 대법원은 그야말로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2012년 양금덕·김성주 할머니 등 원고 5명이 광주지방법원에 미쓰비시를 상대로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을 낸 것으로 시작된 법정 공방에서 최종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 판결이 역사적인 이유는 대법원이 원고 1명당 1억~1억5000만원을 배상하라고 명령을 내린 이유에 있다. 대법원은 원고가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의 피해자라고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강제동원은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과 직결됐다고 명시했다.
피해자들의 소송은 금전적 보상을 받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일본 기업이 합법적 활동을 했지만 미수금 내지 보상금이라는 금전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금전적 변제를 받아야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것은 아니었다. 이들이 확인하고자 한 사실은 일본제국 식민지배의 ‘불법성’, 강제동원의 ‘불법성’이었고, 이러한 불법성 때문에 이들이 금전적·육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는 역사였다. 마침내 2018년 대법원이 확인해준 것은 바로 이 불법성이었다.
이 판결이 역사적인 이유는 일본 정부가 패전 이후 일관되게 유지해오던 입장을 정면에서 부인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는 일본제국의 식민지배가 한-일 합방조약 등을 통한 ‘합법적’ 통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식민지배가 “불행한 과거”(1984년 히로히토 일왕)였다고 인정하고, “불행한 기간 동안 당신의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에 대한 “가장 큰 유감”(1990년 아키히토 일왕)을 표명했을지언정 그 모든 행위의 불법성 자체는 철저하게 부인해왔다. 1965년 2월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한-일 협정)을 가조인하기 위해 방한한 시나 에쓰사부로 외무상도 “양국 간 오랜 역사 가운데 불행한 시기가 있었던 것은 실로 유감이며 깊이 반성한다”고 했지만 식민지배 자체의 불법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대법원 판결에 강력하게 반발한 핵심 이유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16일 정상회담 직후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 발언의 핵심이다.
일본제국이 당시 조선반도를 합법적으로 통치하고 있었다면 독립운동은 불법활동이 된다. 독립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단체는 불법단체, 조선반도를 대표하는 정부를 ‘참칭’하는 기구는 반국가단체이고, 무력을 행사해서라도 독립을 쟁취하겠다고 하는 인물은 ‘테러리스트’가 된다. 즉, 일본 정부가 식민지 지배를 합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것이고, 1941년 12월10일 임시정부가 김구 주석의 명의로 발표한 대일선전성명서를 테러리스트 성명서 정도로 폄하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적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역으로 일본제국의 식민지 획득과 지배를 불법행위로 인정하는 순간 일본은 ‘제국’ 자체의 불법성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제국을 경영하는 와중에 불행하고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있었던 정도가 아니라 제국의 존재 자체가 법적으로도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음을 시인하게 되는 것이다.
1965년 6월 정식 서명된 한-일 협정은 이 핵심적 문제를 애매하게 무마했다. 2조에서 “1910년 8월22일(병합조약)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을사조약 등)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한 것이 문제였다.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는 근거가 되는 조약이 무효가 됐으니 새롭게 양국 관계를 쌓아가자는 이 조항이 왜 문제인가? “이미”라는 부사어가 정반대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병합조약 등이 처음부터 불법·무효였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데 견줘, 일본은 원래는 합법·유효했지만 1965년 현재 무효가 됐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와다 하루키는 이러한 일본의 입장을 “조약에 의한 병합이라는 기만”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대법원의 판결은 이러한 ‘기만’을 정면에서 반박했다. 판결문에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명기했기 때문이다. 1951년 한국 정부는 샌프란시스코 평화회담에 당사자로 초청받지조차 못해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따질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당하는 굴욕을 겪었었다. 1965년 한-일 협정에서는 일본의 자금에 목말라 하던 박정희 정부가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이미’라는 표현으로 봉합하고 넘어갔다. 2018년이 되어서야 사법부가 국제정치의 폭력성, 행정부의 기만행위를 비로소 바로잡은 것이다.
국제정치 흐름과도 거꾸로인 윤 정부
이는 국제정치의 흐름과도 부합하는 미래 지향적인 판결이었다. 독일이 일본에 많이 비교되지만 그 나라도 2차 세계대전의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했지 식민지 통치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하지만 2004년부터는 나미비아에 과거의 폭력을 사죄하고, 헤레로·나마족의 유해를 봉환하는 등 일련의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연방대통령은 2021년 독일의 식민지 지배 역사가 망각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유럽의 현대 문명이 식민지 지배 위에서 건설되었음을 자성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독일뿐만 아니다. 이탈리아와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도 제국주의 시대의 야만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공식적인 반성을 표명하고 있다.
식민주의와 전쟁으로 점철된 ‘야만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21세기를 창출하려는 이 시점에 윤석열 정부는 ‘제3자 변제’라는 재를 뿌리고 나섰다. 사법부가, 세계가 불법이라고 얘기하는 식민지 지배를 왜 부인하는가. 식민지 지배 피해를 당한 대한민국 정부가 불법행위의 책임을 왜 일본으로부터 면제해주는가. 왜 대한민국의 근원이 ‘불법단체’라고 자폭하는가. 그 이유가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해서 북과 더 잘 싸우고 중국과 더 확실히 대결하겠다는 것이라면 헌법의 평화주의에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시카고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국제관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방문학자로 하버드대학 옌칭연구소에 머물고 있다. 한반도와 국제관계에 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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