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서 잘렸다고? 이런 사람 없소”…LG는 왜 이광환을 감독으로 영입했나

[이재국의 엘팬알백] ㉖시대를 앞서 간 야구혁명가…LG 이광환 감독 시대 개막

LG 트윈스 김종정 사장(왼쪽)이 이광환 감독과 계약한 뒤 악수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LG와 한국 야구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스포츠서울

“작년(90년)에는 우승까지 했던 우리 LG가 올해는 바닥권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다시 상위권으로 올라서려면 어떻게 해야 좋은지 방법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1991년 9월 27일. LG 트윈스 김종정 사장과 조광식 단장은 잠실구장 인근 인터컨티넨탈호텔(강남구 삼성동)에서 이광환과 마주앉았다.

당시 이광환은 스포츠서울에서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전날 대구에서 벌어진 롯데-삼성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 관전평을 쓴 뒤 상경한 시점이었다.

“제가 LG 내부 사정을 잘 알지 못합니다.”

이광환은 김 사장의 요청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김 사장은 자세를 고쳐 앉고 간곡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 구단을 위해 조언을 좀 해주십시오.”

김 사장의 거듭되는 정중한 요청에 이광환은 난감해 하면서도 자신이 보고 느낀 몇 가지 부분에 대해 소견을 밝혔다.

1990년 시즌 도중 성적 부진으로 OB 베어스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이광환이었다. 하지만 야구에 대한 선진 이론과 해박한 지식은 물론 남다른 야구철학을 관전평과 칼럼에 담아내면서 야구계와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던 시절이었다.

김 사장과 조 단장은 이광환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어디 가서 한잔 더 합시다.”

대화가 무르익자 LG 김종정 사장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이광환에게 장소를 옮겨 이야기를 이어가자고 제안했다. 2차로 자리를 잡은 곳은 잠실 석촌호수의 뉴스타호텔 9층 스카이라운지였다.

술이 몇 순배 돌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자 조광식 단장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광환 씨, 우리팀 감독을 맡아줄 생각 없나요?”

조 단장은 이광환의 중앙고 10년 선배였다. 동아일보 스포츠부장과 MBC 스포츠국장을 역임한 뒤 1982년 MBC 청룡 초대 단장을 지냈고, 1990년 LG 트윈스로 넘어와 초대 단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조 단장의 갑작스러운 제의에 이광환은 흠짓 놀랐다. 다른 팀도 아닌 잠실 라이벌 OB 감독에서 잘린 자신을 LG가 영입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엘팬알백-LG 트윈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26번째 주제는 LG 트윈스 제2대 사령탑 이광환 감독 계약 과정이다. LG 트윈스의 상징과도 같은 자율야구와 신바람야구의 서막을 알리는 이야기다.

LG 트윈스 제2대 감독으로 선임된 이광환 감독이 특유의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다. ⓒLG트윈스

◆이광환 LG 제2대 감독…최초 서울 2개팀 감독이 되다

“선배님이 미천한 저를 그렇게까지 생각해주시니 정말 과분합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당장 뭐라고 말씀 드리기는 곤란하고 며칠간 생각할 여유를 주십시오.”

이광환은 자신에게 LG 감독 자리를 제안해준 김 사장과 조 단장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도 즉석에서 감독직을 수락하지는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이광환은 1989년 OB 베어스 제3대 감독에 오를 때 4년 장기계약을 했다. 1990년 시즌 도중 해임 통보를 받았지만 1992년 11월까지는 OB에서 연봉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OB의 양해를 구하는 절차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광환은 OB 새 사령탑 윤동균 감독 취임식 때 친정팀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했다. OB 구단으로선 하필이면 옆집 LG 감독으로 간다는 사실이 다소 충격적이기는 했지만, 감독 연봉이 이중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으니 한편으론 반가운 소식이기도 했다.

결국 이광환은 빙그레-삼성의 플레이오프가 끝난 뒤 10월 3일 전화를 통해 LG 감독직을 수락했다.

이상의 이야기는 1994년 LG 트윈스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뒤 스포츠서울 야구부 기자들(이종남, 문상열, 홍헌표)이 펴낸 <LG, 이광환 & 자율야구(지성사)> 책에서 이종남 기자가 쓴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1994년 LG 트윈스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스포츠서울 기자들이 쓴 LG, 이광환 & 자율야구 책 표지. ⓒ스포팅제국
『이광환 씨가 LG 새 감독으로 취임했다. 이광환 씨는 8일 상오 10시 영동 반도유스호스텔 2층 장미홀에서 LG 측과 계약금, 연봉 각각 6천만 원에 감독계약을 맺었다. 계약기간은 3년.』 <1991년 10월 9일자 스포츠서울>

이로써 LG는 앞서 9월에 자진사퇴 의사를 밝힌 제1대 백인천 감독에 이어 제2대 사령탑으로 이광환 감독을 영입했다. 이광환은 OB에 이어 LG까지 사상 최초로 서울 2개팀 감독에 오르는 역사를 썼다.

(이광환은 훗날 2008년 우리 히어로즈 창단 감독을 맡아 사상 최초로 서울 3개팀 감독을 지낸 주인공이 된다.)

OB 베어스 감독 시절의 이광환 모습. ⓒ스포츠서울

◆“OB에서 잘린 감독인데…”

“LG는 당시 구단의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 프런트 간부 회의에서 토론을 거쳤습니다. 전직, 현직 감독을 포함해 감독 후보를 총망라해 보니 무려 20명이 넘었어요. 후보 한 명, 한 명에 대해 인물평을 하면서 각자의 의견을 발표했는데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선임 부장으로서 간부 회의를 이끌던 최종준 기획실장(전 LG 단장)은 1991년 9월에 백인천 감독이 사퇴한 뒤 긴박하게 후임 감독을 물색하던 과정을 이처럼 기억했다.

“특히 이광환 감독에 대해서는 ‘OB 감독에서 잘린 사람인데’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어요. 그런 부담이 없었던 건 아니죠. 그래서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여러 후보 중에 이광환 감독이 가장 많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우리 구단이 지향하는 방향에 가장 부합하는 적임자라고 본 거죠.”
LG 이광환 감독이 시즌 개막에 앞서 OB 윤동균 감독과 합동고사를 지내며 술을 따라주고 있다. 윤동균은 한 살 아래로 OB에서 동생처럼 아꼈던 후배다. ⓒ스포츠서울

실제로 이광환은 당시 OB 색채가 짙은 감독이었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엔 OB 베어스 타격코치로서 김영덕 감독, 김성근 투수코치와 함께 초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1984년 김성근 감독이 OB의 새 사령탑이 됐을 땐 2년간 코치로 보좌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과 야구관이 극과 극처럼 달랐던 이광환은 OB 코치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와 1986년 일본 세이부 라이언스, 1987년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하며 선진야구에 대한 견문을 넓혔다.

그리고는 1988년 OB로 돌아와 2군 감독을 맡았고, 김성근 감독이 5년 계약 만료로 지휘봉을 내려놓자 1989년부터 OB의 제3대 감독으로 승격됐다.

지옥훈련과 투수혹사, 상명하복식의 강압적인 야구가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 OB 감독에 오른 이광환은 역류하던 강물에 홀로 맞서 싸우며 새로운 야구를 펼치고자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배우고 느꼈던 것을 기반으로 선발 로테이션과 투수 분업화를 확립하고, 선수들에게 책임감을 바탕으로 한 자율야구를 이식하려 했다.

이광환(왼쪽)이 1987년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할 때 화이티 허조그 감독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고 이광환 제공

그러나 결과적으로 OB에서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89년 5위로 가을야구에 나가지 못하고, 1990년 시즌 초반부터 심각한 부진 속에 꼴찌로 내려앉았다. 결국 한 시즌 반도 채 되지 않은 6월 19일 OB 지휘봉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한국야구에서 시대를 앞서간 이광환식 야구는 부진한 성적 앞에서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한마디로 OB에서는 실패한 감독으로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메이저리그 흉내만 내는 야구, 겉멋만 추구하는 야구, 한국야구의 실정을 모르는 시기상조의 실험야구 등등의 수식어들이 나붙었다.

이광환이 1990년 OB 감독에서 해임된 뒤 제주도로 내려가 유배생활을 자처했다. 제주도 갈옷을 입고 바닷가에서 세월을 낚고 있다. ⓒ스포츠서울

◆LG는 왜 이광환을 감독으로 영입했을까

LG는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해 프로야구에 뛰어든 뒤 구단 운영 방향을 메이저리그식 선진 시스템에 맞추고 있었다.

우선 구본무 구단주가 미국 유학 시절 메이저리그 야구에 심취해 있었다. LG가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구단인 뉴욕 양키스의 유니폼을 본따 줄무늬 유니폼을 만든 것도 구본무 구단주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였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 1990년 5월에 프런트의 사령탑인 김종정 사장과 최종준 기획실장이 메이저리그 6개 구단(LA 다저스,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미네소타 트윈스, 뉴욕 양키스, 뉴욕 메츠, 토론토 블루제이스)을 순회하면서 견학을 한 것도 이례적인 행보였다. 곧이어 일본의 3개 구단(요미우리 자이언츠, 니혼햄 파이터스, 세이부 라이언스)도 차례로 방문했다.

우리보다 앞서 있는 선진 구단들의 조직과 운영, 야구장의 각종 시설물 구조와 관리 등을 배워온 것이었다.

LG 트윈스 김종정 초대 사장과 최종준 기획실장이 1990년 5월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연수 중이던 허구연(현 KBO 총재)과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LG는 내부적으로 감독 자격 요건에 대해서도 ‘야구에 대한 철학이 뚜렷하고 구단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으로 정해 놓고 있었다.

백인천 감독은 MBC 청룡 구단이 선임하고 계약한 뒤 LG 초대 감독을 맡은 케이스였다. 결국 LG 구단이 정한 감독 자격 요건은 이광환 감독 선임부터 발효되기 시작한 것이다.

LG가 이광환을 눈여겨 본 것은 OB 감독에서 해임된 뒤의 행보 때문이었다.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 제주도로 내려가 스스로를 돌아보며 수양을 한 것부터 남달랐다. 1991년부터 스포츠서울 객원기자를 하며 당시로선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한 선진야구 이론과 자신만의 뚜렷한 야구철학을 글로 표현해냈다.

다음은 1991년 5월 27일자 스포츠서울에 게재된 칼럼 '이광환의 눈' 내용이다.

당시 한국야구에서 누구도 얘기하지 않던 선발 로테이션의 필요성을 의학적 이론에 근거해 논리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요즘 흔히 인용하는 "투수 어깨는 분필과 같다"는 말도 이때 이광환이 칼럼에서 설명하고 있어 눈길을 모은다.

아래에 '이광환의 눈' 칼럼 전문을 인용한다.

야구는 전신운동이 아니다.

투수는 한쪽 팔로만 던지고 타자는 거의가 한쪽 방향으로 때리고 주자는 왼쪽 방향으로만 돌면서 득점한다.

신체의 일부분만 집중 가동하면서 투수와 타자는 홈플레이트의 소유권을 놓고 집중력과 기백으로 영원한 결투로 맞서고 있는 것이 야구의 본질 아닌가?

그러나 타자는 한번 싸우고 나면 그 자리를 다음 타자에게 물려주지만 투수는 일단 3명을 처치하지 않으면 쉴 기회가 없어 타자보다 훨씬 힘든 것은 당연한 일.

그런 의미에서 9회까지 완투한 경기는 투수로선 매우 값진 것이나 그만큼 위험부담도 수반된다.

실제로 7회까지보다 나머지 2회에 부상당한 확률이 높아 현대야구에서는 경기 후반의 투구수 체크와 동시에 마무리 투수의 필요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된 것이다.

사실 오랜 야구역사와 경험을 가진 미국에서는 투수의 팔을 곧잘 백묵(분필)에 비유한다. 쓰면 쓸수록 닳아간다는 것이다.

관절은 뼈나 근육과 달라 한번 손상을 입으면 원상회복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손상 후의 오랜 휴식보다 규칙적인 휴식과 자연회복 속에 선수의 부상을 최대한 사전에 막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들은 철저히 4일간 휴식을 기본으로 로테이션을 지키며 장기레이스의 막바지에 이르러 승부처나 더블헤더 경기에만 3일 간격의 등판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26개 전 구단(당시 MLB 구단수)이 천편일률 같이 그 원칙을 지키는 이유가 무엇인가?

100개 이상의 투구를 했을 경우 팔꿈치 어깨 등 집중 사용 부분에 모세혈관 파손에 의한 소량의 내출혈과 관절 부위의 미세한 손상이 있게 되고 그 내출혈을 멈추는 데 최소한 24시간의 얼음찜질이 필요하며 그 출혈분을 회수하고 관절을 자연회복시킨 후 연습투구와 더불어 다음 경기 출장 준비를 갖추는 데 최소한 4일이 필요하다는 의학상의 이유가 그 첫째다.

심신의 피로는 몸의 움직임을 둔하게 하고 집중력을 상실하여 하나하나의 플레이에 대한 의욕도 약해지고 한층 더 현저하게 머리의 회전이 나쁘게 되어 좋은 경기를 치를 수 없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그뿐만 아니라 집중 혹사 선수 수명의 단축과 아울러 가까운 장래 팀몰락의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선수보호가 팀에 이익이 된다는 LA 다저스 구단주의 말은 저변이 엷은 한국야구에 더 귀담아 들을 만한 것이 아닐는지.

아무튼 프로야구 10년 동안 다른 부분에 비해 가장 낙후되고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 투수 운용 부분으로서 그것은 어릴 적부터 연투에 습관된 선수들의 오기 등판과 승부에 급한 한탕주의 구단의 사고방식, 청문회를 열어야 직성이 풀리는 악성팬들의 덕분이라 말하면 비오는 날의 횡설수설로 걸맞은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명한 것은 45세에 노히트노런 게임을 해내는 한국판 놀란 라이언은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LG 제2대 사령탑으로 선임된 이광환 감독이 선수단을 모아놓고 뭔가를 설명하고 있다. ⓒ스포츠서울
“객원기자 활동을 할 때 신문에 게재되는 칼럼을 통해 이광환 감독의 야구에 대한 안목과 식견을 알 수 있었고, 철학에 대해 공감을 할 수 있었어요. LG가 추구하는 야구단 운영 방향에도 가장 잘 부합하는 인물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면서 이광환 감독을 구단 수뇌부에 적극적으로 추천하게 됐던 겁니다.”

최종준 전 기획실장의 얘기다.

조광식 단장은 최 실장으로부터 차기 감독 후보로 이광환을 추천받자 “내 중앙고 후배이기도 하니 한번 만나 보면 좋겠다”며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온화한 인품으로 합리적으로 구단을 운영해 오던 김종정 LG 초대 사장은 조 단장의 보고를 받고는 구본무 구단주를 찾아가 최종 재가를 얻어냈다. 그러면서 1991년 9월 27일 인터컨티넨탈호텔과 뉴스타호텔에서 2차까지 가며 이광환에게 감독직 제안을 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구본무 구단주 역시 이광환이라는 인물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던 터였다.

스포츠서울 이종남 기자가 쓴 <LG, 이광환 & 자율야구>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구본무 구단주가 신문을 읽다가 이광환이 자진 유배생활을 하면서 자기 반성을 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고는 무릎을 탁 쳤다는 것이다.

이광환 감독(왼쪽)이 구본무 구단주에게 술을 따라주고 있다. ⓒLG트윈스
“아니, 야구계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나? 대개 감독 자리에서 밀려나면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고 남들이 잘못한 탓이라고 변명이나 원망을 늘어놓기 마련인데 이 사람은 그렇지 않네. 남이 시킨 것도 아닌데 제 스스로 제주도로 내려가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니 보통 사람하고는 다르구만. 우리가 필요한 사람은 이렇게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야.”

다시 말해 LG가 구단 내부에서 바텀업(Bottom-up) 형식으로 추천한 후보와 결정권자인 구본무 구단주의 의견이 일치했던 것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같은 서울 연고이자 라이벌 팀 OB에서 실패한 감독이 과연 LG 팬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겠느냐’였다.

하지만 구단주는 “이런 사람 없소”라면서 흔쾌히 재가를 하기에 이르렀다. LG는 과감하게 편견의 울타리, 고정관념의 벽을 제거하면서 이광환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맞이하게 됐다.

LG가 이광환 감독과 계약한 사실을 전한 1991년 10월 9일자 스포츠서울 지면.ⓒ스포츠서울
“서울팀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LG 감독을 맡게 돼 영광입니다. 전임 백인천감독이 팀을 훌륭하게 키워 왔습니다. '혼의 야구'를 되살리면서 선진야구를 추구해 나가겠습니다.”

이광환 감독은 감독 취임식에서 이같은 소감과 목표를 밝혔다. 백인천 감독이 닦아 놓은 '혼의 야구' 토대 위에 자신이 추구하는 메이저리그식 선진야구를 덧입히겠다는 포부였다.

LG는 이광환 감독에게 “당장 좋은 성적을 내달라는 게 아니라 3~4년 뒤 우승팀을 가꿀 수 있도록 그 안에 밑바탕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이광환 감독 시대를 시작하기에 앞서 LG는 해결해야 할 큰 숙제를 만났다. 구단의 방향과 미래를 결정하는 일. 간판스타인 김재박과 이광은의 은퇴 여부와 임선동 조성민 등 초고교급 선수들의 신인 1차지명 문제였다.

[엘팬알백] ㉗편에서 계속

LG 이광환 감독(왼쪽)이 프랜차이즈 스타 이광은과 얘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스포츠서울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유튜브 '이재국의 와일드피치' 운영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