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국방부가 조용히, 그러나 다급하게 한국 정부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순하지만 흥미롭습니다.
대만이 자국 육군의 주력 105mm 포탄을 생산하려면 반드시 한국산 추진제가 필요한데, 그 수출 허가가 아직 나지 않은 것입니다.
대만 입법원 예산 심의 과정에서 이 사실이 공개되었고, 탄약 생산 차질을 우려한 의원들이 관련 예산을 동결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군사력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대만이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인지, 그 이면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습니다.
대만이 만들려는 포탄, 그게 뭔가
문제의 탄약은 105mm 계열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훈련용 예광탄, 다른 하나는 고폭 대전차 예광탄(HE-AT-T)입니다.
특히 고폭 대전차 예광탄은 대만이 '게파르트 프로젝트' 하에 독자 개발한 탄약으로, 105mm 차륜형 전차와 자주포에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고폭탄과 대전차 기능을 동시에 갖춘 다목적 탄약으로, 경장갑 차량은 물론 벙커와 인원 제압에도 쓰이는 중요한 탄종입니다.

생산은 국방부 무기국 제202공장이 담당합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두 탄종의 국내 생산을 완료한다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죠. 그런데 일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공장 이전 하나가 불러온 나비효과
문제의 시작은 제205공장 이전입니다. 대만 국방부는 제205공장을 가오슝시 다수구로 이전하기로 결정했고, 시설 건설과 설치는 국립중산과학기술원(NCSIST)이 맡았습니다.
얼핏 보면 국내 방산 인프라를 정비하는 평범한 행정 조치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이전 과정에서 결정적인 문제가 생겼습니다.
105mm 포탄 생산의 핵심 원료인 'M30 추진제' 생산이 중단된 것입니다. M30 추진제는 포탄이 포신을 벗어나는 순간 발생하는 추진력을 결정짓는 핵심 화약입니다.
이게 없으면 포탄은 그냥 쇳덩이에 불과한 것이죠.
자체 생산이 막히자 군수국은 해외 조달로 방향을 틀었고, 공개된 바에 따르면 이탈리아, 한국, 캐나다가 공급 후보군으로 거론되었습니다.
한화그룹이 낙찰됐지만, 허가가 없다
결국 입찰 끝에 낙찰을 받은 곳은 한화그룹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방산 대기업이자, K9 자주포와 천무 다연장 로켓으로 글로벌 방산 시장을 누비고 있는 바로 그 한화입니다.
과거 납품 실적에서도 성능이 우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 신뢰도 면에서는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화그룹이 M30 추진제를 대만에 수출하려면 한국 정부의 수출 허가가 필요한데, 아직 그 허가가 나지 않은 것입니다.
대만 국방부는 그 이유로 '국제 전쟁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사태'를 들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 방산 공급망이 뒤흔들리고 한국 정부의 수출 심사가 까다로워진 상황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낙찰업체는 정해졌는데 물건을 보낼 수가 없는, 어이없지만 현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대만, 외교 채널 가동에 나서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대만 국방부는 2024년 11월 29일 외교 채널을 통해 한국 외교부에 공식 서한을 발송했습니다.
수출 허가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 역시 현재 한국 외교부와 협력하며 이 문제를 처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만 측은 단일 창구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각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폭발물 제조 경험이 있는 업체를 찾는 한편, 해외 원산 제조업체와도 접촉해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을 협상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미 낙찰된 한화그룹과의 계약이 가장 빠른 길이기에, 한국 정부의 허가가 핵심 변수로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입법원이 예산을 동결한 이유
이 사실은 대만 입법원의 국방예산 심의 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
의원들은 제202공장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해당 탄약 생산을 위탁받았음에도 핵심 자재 조달이 이뤄지지 않아 실질적인 생산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말하자면 예산은 배정됐는데 탄약은 안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죠.

결국 입법원은 관련 예산을 동결하고 국방부에 해명을 요구했습니다.
대만 국방부는 이에 대해 205공장 이전 경위와 M30 추진제 외부 조달 전환 과정, 그리고 한국과의 외교적 협의 상황을 상세히 보고해야 했습니다.
군사 기밀에 가까웠을 이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도 바로 이 과정에서였습니다.
한국을 제재하자더니, 뒤에선 한국 물자를 기다린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장면이 있습니다. 최근 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국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대만 국방부는 조용히 한국산 추진제 수출 허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공개적으로는 강경한 목소리를 내면서, 실무 차원에서는 한국 방산 기업이 납품해 주기를 기다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죠.

이는 국제 방산 시장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합니다.
정치적 수사와 실제 안보 협력은 별개의 차원에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K9, 천무, 그리고 이제는 M30 추진제까지 한국 방산의 존재감은 대만 국방 현장에서도 이미 현실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수출 허가가 언제 떨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만, 대만의 105mm 포탄이 포구를 나서는 날, 그 안에는 한국의 손길이 담겨 있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