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친정 부엌 서랍을 하나씩 열어 보길래.." 그 이유를 듣고 한참 서 있었다

딸이 친정에 오면 부엌 서랍을 하나씩 열어 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을 찾는 줄 알았습니다.그런데 서랍을 다 열어 본 딸이 조용히 무언가를 적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듣고 저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서랍을 여는 딸

딸은 차를 한 잔 마시고 나서 부엌으로 향했습니다. 수저 서랍부터 양념 서랍까지 차례로 열어 보았습니다. 오래된 행주와 이 빠진 그릇을 하나씩 꺼내 식탁에 올려놓았습니다. 저는 멀쩡한 걸 왜 꺼내느냐며 괜히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딸은 대답 대신 휴대폰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습니다.

딸이 적고 있던 것

딸이 적은 것은 새로 바꿔 드려야 할 살림살이 목록이었습니다. 손잡이가 헐거운 냄비와 무뎌진 칼, 낡은 도마까지 꼼꼼히 적혀 있었습니다. 엄마는 새것을 사 드려도 아까워서 안 쓰실 것 같아 직접 확인했다고 했습니다. 다음에 올 때 하나씩 바꿔 드리겠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퉁명스럽게 굴었던 제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하나씩 바뀌어 가는 부엌

그 뒤로 딸은 올 때마다 살림 한두 가지를 들고 왔습니다. 헌것은 제가 직접 버리게 해서 서운하지 않게 배려해 주었습니다. 새 냄비로 끓인 찌개를 함께 먹으며 옛날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부엌이 조금씩 환해질수록 제 마음도 가벼워졌습니다. 이제는 딸이 오는 날이 은근히 기다려집니다.

부모는 낡은 물건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식이 먼저 살펴 주는 작은 관심이 큰 위로가 됩니다.부모님 댁에 가면 한 번쯤 부엌을 둘러보시면 어떨까요. 말하지 않은 불편함이 그곳에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Copyright © 본 콘텐츠는 저작권이 보호되며 카카오 운영지침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