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산이 가장 솔직해지는 계절이다,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 박민구 강사 인터뷰
베테랑 등반가 박민구 강사는 눈이 시릴 정도로 하얀 설경의 매력에 푹 빠졌다.
산 정상에서 마주하는 수묵화 같은 풍경은 그가 눈보라를 뚫고 겨울 산행에 나서는 이유다.
박민구
·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 등산 강사
· 한국등산학교 등산 강사
· 토왕성폭포, 끄라비, 마터호른, 몽블랑, 아르코, 트레치메 등반
언제부터 등산을 시작했나?
20대 초반, 4월쯤 가족과 함께 설악산을 간 적이 있다. 기온이 높고 날씨가 맑아 반바지에 반팔 차림으로 산을 올랐는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날씨가 점점 추워져 대청봉에 오르자마자 부리나케 내려왔다. 그 후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설악산을 다시 오르고 싶다는 마음이 떠나지 않아 처음으로 등산화, 등산복 등 각종 등산 준비물을 구비했다. 그날 이후 등산의 매력에 푹 빠졌다.
처음 설산을 올랐을 때의 경험이 듣고 싶다
고향이 부산이다 보니 추위에 익숙지 않은 편이다. 경기도로 올라와 보낸 첫 겨울이 너무 추워 겨울 산행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빙벽을 타면서 설산을 처음으로 오르게 됐다. 쉬었다 오르기를 반복하다 보니 땀을 많이 흘렸는데, 나중에는 입고 있던 옷이 땀에 젖어 얼어버리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다. 다행히 일행에게 여벌이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겨울 산행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겨울 산행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신혼여행으로 아내와 함께 브라이트호른을 등반했다. 마터호른 등반을 앞두고 고소 적응 훈련을 겸해 갔는데, 고도 4000m에 처음 도전하는 아내에게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당시 기상이변으로 눈이 슬러시처럼 녹아 있어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이었지만,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아내와 함께 정상에 서서 알프스 산군을 마주한 그 순간의 감동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처음으로 4000m 정상에 오른 아내는 “마터호른도 고소증 없이 오를 수 있을 것 같다”며 하산하는 내내 콧노래를 불렀다.
최근에는 어디에 다녀왔나?
일본 나가노현에 위치한 야쓰가다케에 올랐다. 처음에는 날씨가 맑고 깨끗했는데 코스의 절반 정도를 지난 무렵부터 눈보라가 몰아치더니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화이트아웃 상태가 됐다. 순간 내려갈까 고민도 했지만, 일행과 함께 천천히 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니 눈발이 멎고 구름이 걷혔다. 정상인 아카다케에 도착해 마주한 겨울 하늘도 정말 아름다웠다.
설산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겨울은 산의 진정한 얼굴을 볼 수 있는 계절이다. 푸릇푸릇한 산도, 알록달록하게 단풍이 든 산도 멋지지만 눈 덮인 하얀 설산은 겹겹이 이어지는 능선과 앙상한 나무가 한 폭의 수묵화처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겨울 산행 강의에서 특히 강조하는 내용이 있나?
겨울 산은 다른 계절에 비해 더욱 철저히 대비하고 올라야 한다. 모자와 장갑을 착용하고 여벌을 챙겨 체온을 유지하며, 물과 행동식을 확보하는 등 준비물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만약 설산 등반을 목표한다면 장비 활용법을 제대로 익혀야 한다. 기본 장비만 잘 활용해도 체력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설산을 오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동료와 함께 산을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설산은 절대 혼자 올라서는 안 된다.
체온 유지를 위한 본인만의 방법이 있다면?
‘움직이면 벗고, 멈추면 입는다’는 원칙을 지킨다. 산행 중에는 옷차림을 가볍게 하고, 쉴 때는 체온을 유지해 주는 보온 의류를 꺼내 입는다. 옷은 여러 벌을 겹쳐 입는데, 피부에 직접 접촉하는 내의와 보온 기능이 있는 의류는 여벌을 준비해 등반을 마치고 나면 반드시 갈아입는다. 장갑과 양말도 여벌을 챙겨 젖은 감이 있다면 바로 교체한다.
설산을 오를 때 꼭 챙기는 장비가 있다면?
장비는 설산의 난이도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두 발로 오를 수 있을 정도의 경사도 50~60도 이하 등로를 걷는 것을 ‘등산’, 두 발과 두 손을 이용해 경사도 60도 이상의 등로를 오르는 것을 ‘등반’이라고 한다. ‘등산’을 할 때는 아이젠, 스패츠, 등산 스틱, 장갑을 준비한다. 국내 설산은 대부분 이 정도 장비로도 충분히 오를 수 있지만, 난도가 더 높은 설산을 ‘등반’할 때는 앞부분에 발톱이 있어 이동하기 쉬운 크램폰과 피켈이 필요하다. 일몰 후에 하산하게 되거나 비상시 구조를 요청하는 상황에 대비해 헤드 랜턴과 여분의 보조배터리도 꼭 챙긴다.
어떤 기준으로 장비를 선택하나?
반드시 필요한 장비인지 한 번 더 생각한 뒤 국내에서 AS가 가능한 브랜드인지 확인한다. 장비의 디자인, 무게, 가격 순으로 확인해 구입을 결정한다.
디지털기기를 이용하는 것이 산행에 도움이 되나?
GPS가 내장된 휴대전화와 스마트워치는 등로 이탈을 방지하고 길을 찾기에 유용해 안전하게 귀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배터리 소모가 빠르기 때문에 보조배터리를 필수로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되도록이면 가고자 하는 산의 지도를 미리 찾아보고, 휴대전화에 이미지 형태로 저장하는 것을 권한다. 배터리 소모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지형을 조금 더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해외 설산과 국내 설산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가장 큰 차이는 산의 높이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은 가장 높은 산이 3778m다. 해발고도 1950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과도 차이가 크다. 높이가 다르다는 것은 산에 쌓인 눈의 성질이 다르다는 의미다. 산을 오르는 코스나 시간도 차이가 많이 난다.
해외 설산에 도전할 때는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할까?
코스와 시간이 국내 설산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강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계획을 세울 때는 반드시 체력을 고려해야 하고, 기상이변 또는 신변 이상에 따른 대비책도 세워두어야 한다.
ㅣ 덴 매거진 2024년 12월호
에디터 김보미 (jany6993@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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