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억짜리 지각 용역, 장난질은 계속된다

김완 기자 2024. 10. 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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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서울시 발주 연구 요약본, 개선책으로 성과이윤제 제시
전문가 “비용 절감 유인돼 노동 환경만 악화할 것”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3년 8월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 출석해 사모펀드의 버스 잠식 논란에 대해 “장난질을 치지 못하도록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연합뉴스

‘버스업체에 투자할 경우, 버스 준공영제 시행으로 인한 재정 지원으로 업체 부도 등의 위험요인이 거의 없고 적자로 운영돼도 적정이윤이 보장돼 손실이 나지 않는 구조.’

2024년 3월, 국토교통부가 발간한 ‘시내버스 준공영제 가이드라인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가 분석한 사모펀드의 버스업체 진입 동인이다. 버스사업은 어떻게 ‘손실 우려가 낮고 재무적으로 탄탄한 자산으로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한 사업이 됐을까. 열쇳말은 지방자치단체가 이윤을 보장해주는 ‘준공영제’ 덕분이다.

정부가 적자 보전, 수익 보장

2019년 이후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차파트너스) 등 사모펀드들이 공세적으로 버스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준공영제를 빼곤 설명되지 않는다. 버스 준공영제는 한국만의 독특한 버스 운영 체계다. 민간의 창의성과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이 결합해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됐고 실제로 성과도 냈지만, 20년이 지나면서 한계에 다다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준공영제는 공공 서비스인 버스사업을 노선권을 가진 민간업자들이 운영하도록 하되, 정부가 적자는 보전해주고 수익은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형태다. 자본 관점에서 보자면 버스사업은 소유하되, 결코 손해는 보지 않는 사업이다. 투자해서 수익을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모펀드로선 정부가 수익을 보장해주는 준공영제 버스사업 모델이야말로 틈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최적의 전략 상품인 셈이다.

이는 2023년 6월 한겨레가 탐사 보도한 ‘준공영제 버스 삼킨 사모펀드’ 기획 시리즈가 이미 지적한 대목이다. 차파트너스 등 단기 수익 목적 사모펀드는 금융회사와 대기업 등의 투자를 받아 서울과 인천의 알짜배기 시내버스 회사들을 인수한 뒤 과배당 등을 하며 버스사업을 부실화했다. 한겨레 보도 이후 수익을 최우선 목적으로 하는 투기자본이 공공 서비스인 대중교통을 소유하게 된 상황에 비판이 거셌다.

논란을 의식한 듯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3년 8월 서울시의회 시정 질문에 출석해 사모펀드의 버스 준공영제 잠식 상황에 대해 “버스 준공영제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며 “장난질을 치지 못하도록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민간의 이익을 시가 보장해주는 체계인 준공영제 개선에 당장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것처럼 들렸다.

이후 서울시는 9억원에 이르는 연구 용역을 발주해 버스 준공영제 개선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애초 보고서 마감 목표는 2024년 7월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보고서는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고, 시장 보고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겨레21 취재 결과, 이 보고서는 10월 중순이 지나야 오 시장에게 보고될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이미 투자자들에게 훌륭한 수익을 안겨준 차파트너스는 대개 사모펀드들이 그런 것처럼 엑시트(투자금 회수) 계획을 가동할 시간을 좀더 확보했다. 차파트너스는 2024년 말로 만기가 돌아오는 펀드들부터 차례로 매각하겠다는 입장이다. 오 시장이 막겠다고 한 ‘장난질’이 본격화하는 셈이다.

준공영제 바꿀 생각 없는 서울시 용역

한겨레21은 서울시가 발주한 9억원 연구용역 보고서 ‘시내버스 준공영제 20주년 혁신대책’(이하 준공영제 혁신대책)의 일부 요약본을 입수했다. 서울시의 준공영제 혁신대책의 진단과 개선책을 보면, 설령 연구 마감이 시간표대로 진행됐더라도 차파트너스의 장난질을 막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준공영제 혁신대책은 ‘민영제는 충분한 서비스 제공이 어렵고, 공영제는 과도한 초기 투자비용이 발생’한다며 ‘현행 준공영제를 보완·운영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버스 운영 체계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준공영제만을 상수로 두니 개선 방식 역시 사모펀드가 틈입한 원인의 근본에 다가서지 못한다. 서울시는 버스업체에 무조건 보장해주던 기본이윤 40%를 점진적으로 폐지해, 2027년에는 성과이윤을 100%로 확대하는 방안을 재정지원 구조 개선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표준운송원가 산정 방식을 바꾸는데 ‘△차년도 비용과 수입을 추정해 미리 지급하고 △이윤 발생시 이를 운송업체에 귀속시켜 자율적 경영 혁신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논란이 된 사모펀드의 과배당 방지책으로는 ‘배당 성향이 100%를 넘으면 성과이윤 점수를 감점한다’는 방침을 마련했다.

하지만 보고서 마감이 늦어지면서 시장 보고를 거쳐 계획이 확정되더라도 서울시는 이미 차파트너스와의 시간 싸움에서 이길 수 없게 됐다. 2024년 연말을 목표로 사업에서 탈출할 계획인 차파트너스는 보고서 속의 대책들과는 무관하고, 최종 보고서 요약본에 담기지 않은 특단의 사모펀드 방지책 같은 것이 있지 않은 한 사업 매각 역시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후에라도 서울시의 이런 대책이 또 다른 사모펀드에 잠식될지 모를 시내버스를 구출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쉽지 않을 것이라 단언한다. 공공교통네트워크 김상철 수석연구위원은 “의미가 없다”며 “성과이윤제는 민간 회사의 배당 억제를 규제할 만큼 강제력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비용을 미리 지급하는 개선책대로라면 비용만 절감하면 이익이 더 나는 구조가 돼 노동 환경 등이 악화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배당 감점제 역시 “주주와 투자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입장에서 감점이 두려워 배당을 안 할 자본이 있겠느냐”며 “단기 수익을 내고 탈출하면 되는 사모펀드 입장에서는 장기적 운영 관점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의 성과이윤 감점은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업자 손실 0’ 구조를 흔들어야

정부가 이익을 보장해주는 현행 구조에선 배당 유혹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얘기다. 주주들에게 상법이 허락하는 선에서 배당을 많이 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과도한 배당은 기업이 보유한 현금을 고갈시키고, 이는 곧 재투자 및 기술발전 등을 위한 재원을 갉아먹는 방식으로 악용될 수 있다. 기업이 미래에 대처하고자 벌어둔 돈(이익잉여금)을 쌓아두지 않고 배당으로 빼돌리면, 향후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 있어 장기적으로 주주들에게도 손해다. 더군다나 버스회사가 쌓은 이익잉여금의 출처는 지자체의 재정지원금, 즉 국민의 세금이기에 배당에 더욱 신중히 해야 한다.

그래서 어쩌면 ‘적자로 운영돼도 적정이윤이 보장돼 손실이 나지 않는 구조’ 자체를 흔들 수 있어야 문제의 진짜 해법이 보일지 모른다. 지금 차파트너스가 매각하려는 7개 노선이라도 노선입찰제 등 공영제적 요소를 들이는 실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버스사업의 이윤을 사업자가 독식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부라도 공익 목적으로 회수하는 시도가 성공한다면, 망하지 않는다는 버스사업의 모습도 많이 바뀌지 않을까.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장필수 한겨레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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