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 한국, 1929년 월가와 소름 끼칠 정도로 비슷”

박진성 기자 2026. 4. 25.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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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가 만난 사람]
NYT 저널리스트 앤드루 로스 소킨
1929/웅진지식하우스

1929

앤드루 로스 소킨 지음|조용빈 옮김|웅진지식하우스|632쪽|3만2000원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계속 경신하고 있다. 미국의 나스닥, S&P500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시장이 뜨겁다. 특히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반도체 호황이 이 주식 시장을 떠받치고 있다.

뉴욕타임스 저널리스트이자 CNBC의 앵커인 앤드루 로스 소킨은 현재의 시장을 두고 본지에 “1929년 미국 대폭락과 유사한 흐름이 있다”며 “소수 종목이 지수 전체를 이끌며 다수 개인 투자자가 ‘빚투’하는 한국 시장은 구조적으로 취약하다”고 말했다. 1929년 미국처럼 주식에 관심 없던 개인 투자자들이 광적으로 몰리고 빚을 내서 시장에 뛰어든다는 것. 당시 라디오 기술을 중심으로 주식이 폭등했는데, 지금은 AI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코넬대를 졸업한 그는 IBM의 PC 사업부 매각 등 대형 기업 인수·합병 단독 보도로 ‘제럴드 로브상’ 등 다수의 언론상을 받았다. 일론 머스크, 힐러리 클린턴 등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파고드는 인터뷰를 해왔다. 2022년엔 에미상(뉴스·다큐 부문)을 받았다. 소킨은 2008년 금융 위기를 파헤치며 15개국에 번역 출간된 전작 ‘대마불사’(한울) 이후 8년간의 취재를 종합해 ‘1929′(웅진지식하우스)를 썼다. 가장 뜨겁던 시장이 끝없이 붕괴하며 대공황을 부른 ’1929년 폭락 사태‘를 비밀 회의록·비공개 문건 등을 입수해 시간 단위로 재구성했다. 허버트 후버 미국 대통령, 찰스 미첼 내셔널 시티 은행 회장 등 당대의 거물을 중심으로 스릴러 영화처럼 풀어내는 논픽션이다. 작년 10월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워싱턴포스트, 타임, 이코노미스트, 블룸버그 등 세계 주요 언론의 ’2025년 최고의 책’ 중 하나로 꼽혔다. 소킨을 이메일로 만났다.

뉴욕타임스 저널리스트이자 CNBC 앵커인 앤드루 로스 소킨

-왜 지금을 1929년과 비교해서 봐야 하나.

“폭등 메커니즘이 소름 끼칠 정도로 비슷하다. 1920년대의 구호는 ‘금융의 민주화’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돈을 빌리게 해서라도 주식 시장으로 끌어들였다. 라디오 기술이 세상을 연결할 혁신적 기술로 떠올랐다. 라디오가 AI로 바뀌었을 뿐 지금과 똑같다. 오늘날 우리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사모 펀드, 복잡한 레버리지 상품 등에 접근 권한을 주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금융의 민주화’ 구호를 다시 꺼내 들고 있다.”

-당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규모와 속도다. AI의 자본 요구량은 라디오보다 압도적이다. 지난 2년간 미국 증시 상승분의 대부분은 AI 인프라에 수천억 달러를 쏟아붓는 소수의 기업들에 의해 주도됐다. 지금 미국 경제에서 AI를 걷어낸다면 성장은 거의 제로에 가까울 것이다. 이는 라디오 시대엔 없던 ‘집중 리스크’다. 또한 전통적인 은행 시스템 바깥에서 사모 신용을 통해 흐르는 엄청난 자금 조달은 1929년의 시장보다 훨씬 불투명하다.”

-8년간의 취재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실제로 악당도 있었긴 하지만, 위기의 상당 부분이 진심으로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에 의해 주도됐다는 것이다.”

-당신은 위기가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에게서 촉발됐다고 본다.

“증권거래위원회, 예금자 보호 제도 등의 안전장치가 수세대 동안 제2의 대공황을 막아낸 것은 맞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어느 때보다 안전장치가 필요한 순간에 그 장치를 해제하는 인물들이 나타날 수 있다. 1929년 정부를 자신에 유리하게 움직이려 했던 여러 금융 거물들처럼 말이다.”

-빚은 자본주의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부채 자체가 악은 아니다. 하지만 부채가 이미 ‘또 다른 부채’에 의해 가격이 부풀려진 자산을 살 때 사용되면 위기가 찾아온다. 1929년 찰스 미첼 내셔널 시티 은행 회장이 파멸한 이유다. 개인 투자자에게 주식을 사라고 돈을 빌려줬고, 자신의 은행 주가를 지탱했다. 하지만 폭락을 막지 못하고 무너졌다.”

1929년 찰스 미첼 내셔널 시티 은행(시티은행의 전신) 회장의 모습/웅진지식하우스

-위기는 ‘서서히, 그러다 갑자기’ 온다고 했다. 지금은 어떤 단계일까.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1929년 폭락 전에 예리한 관찰자들이 보였던 경고 신호들이 있다. 극단적 레버리지, 집중된 시장 상승, 신용의 약화, 행동을 주저하는 연준 등. 오늘날에도 대부분 보인다. 언제 폭락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우린 ‘서서히’의 단계에 있다.”

-1929년 위기의 책임은 당시 엘리트들에게 있었다고 했다. 오늘날은?

“정직하게 말해서 똑같은 계층의 사람들일 것이다. 자신의 도구가 이전의 리스크를 관리하기에 충분하다는 가정을 하고 움직이는 억만장자들, 창업자들, 중앙은행가들 그리고 정책입안자들.”

-한국 주식 시장도 광풍이다. 정부는 부동산으로 가던 자금을 주식 시장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최근 코스피의 급등은 성과임과 동시에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정부가 가계 자본을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것은 중립적인 행위가 아니다. 시장이 오르는 동안엔 성공한 정책이지만 시장이 떨어지면 정치적 부채가 된다.”

-한국은 개인 투자자의 비중이 높다. 1920년대와 비교하자면?

“1929년의 개인 참여도는 전례 없던 수준이다. 주식을 소유해 본 적 없는 수백만 명의 평범한 미국인이 시장에 들어왔다. 많은 이가 증거금 대출을 끼고 있었다. 결과는 가혹했다. 오늘날 한국은 매우 활동적이고 젊은 개인 투자자 층을 보유하고 있다. 레버리지와 파생상품을 거래하고 단기 모멘텀에 집중한다. 1929년과 유사한 구조적 특징이다. 상승할 땐 유토피아 같겠지만 하락할 땐 장기 기관 자본이 지배하는 시장보다 훨씬 더 가파르게 무너진다.”

1929년 대폭락 직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밖에 군중들이 모여든 모습/웅진지식하우스

-한국엔 ‘빚투’ 문화가 있다.

“가장 지적하고 싶은 패턴이다. 투자를 위해 돈을 빌리는 것은 금융 역사상 가장 오래된 ‘가속 페달’ 중 하나다. 20%의 시장 조정은 개인에게 50%의 손실로 돌아온다. 감당할 수 있는 시장의 사건이 가계 단위에선 대재앙이 된다. 1920년대에 ‘미국에서 가장 민주적 형태의 신용’이라 불린 주식 마진 대출은 평범한 미국인을 파산시킨 메커니즘이었다.”

-유례없는 주식 호황기에 한국은 무엇을 살펴야 하나.

“첫째는 ‘집중’이다. 소수 종목이 지수를 끌어올릴 때 특정 섹터의 충격은 지수 전체의 사건이 된다. 둘째는 ‘레버리지’다. 최근 단기 마진 거래(보유 주식 등 증거금을 담보로 투자한 주식 거래)에서 발생한 강제 매도의 급증은 위기를 알리는 신호다. 셋째는 투자자의 단기적 시야와 장기적 구조 개혁 사이의 불일치다.”

-1929년 관점에서 딱 한 가지만 한국에 경고할 수 있다면?

“정부, 금융권 등을 막론하고 ‘이번 상승장은 이전의 것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하는 이들을 의심하라. 상당 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래픽=양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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