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 노트의 계절
잠깐 찾아왔던 가을이 스쳐 가고 엄동설한의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팬들에게 겨울은 야구가 없는 계절이지만, 선수들에게만큼은 추위란 본격적인 담금질이 시작되는 계절임을 반증하는 존재다. 서늘한 공기 속에서 입김을 내뿜으며 구슬땀을 흘리는 시간, 시즌을 마치고 받아본 성적표에 오답 노트를 써 내려가는 손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의 야구 인생 마지막 순간을 함께 써 내려간 박준현은, 이제 본인 야구 인생의 첫 장을 작성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겨울 동안 꼼꼼하게 작성한 오답 노트가, 내년 이맘때 박준현의 손에 만족스러운 성적표를 쥐여주길 바란다.
Photographer 나인비 Editor 손하현 Location 더그아웃매거진스튜디오
출생 2007년 8월 29일
신체조건 188cm 93kg
출신교 대구 율하초 – 대구 경상중 - 북일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2024년 성적 11경기 31이닝 평균자책점 3.48 3승 2패 30탈삼진 23사사구 29피안타

#성적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와 간단한 근황 소개 부탁해요. (11월 4일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천안 북일고등학교 2학년 투수 박준현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전국대회를 마친 지 2달 정도 지났는데, 대회 기간에 조금 많이 던졌어요. 체력적으로 조금 지쳐서 투수 코치님이랑 같이 체력도 키우고, 피지컬도 키우면서 지냈습니다. 전국대회를 마치고 휴가를 5일 정도 받아서 휴식도 취했어요. 투구폼에서 보이는 문제점들도 찾아서 수정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24시즌을 31이닝 ERA 3.48 30탈삼진으로 마쳤어요. 만족스러운 기록이에요?
초반 페이스는 괜찮게 출발했는데, 후반기가 되면서 체력적으로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공을 던지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구위나 볼 끝 등 세부적인 부분들이 부족해서 후반기에 성적이 조금 부족했다고 평가하고 있어요. 투수 코치님께서도 스피드는 잘 나오는데, 구위가 떨어졌다고 여러 번 지적해 주셔서 시즌을 마치고 체력 운동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스스로 어떤 장단점을 가진 선수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직구를 많이 던지는 투수예요. 제일 큰 장점은 구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고 구속은 152km/h 정도이고, 평균으로는 148km/h 정도예요. 제구력이나 변화구는 조금 더 갈고닦아야 할 필요를 느껴요. 슬라이더랑 커브를 던지고 있는데 커브 제구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거든요. 이제 시즌을 마쳤으니까 비시즌 동안 잘 준비해서 내년에는 더 괜찮은 변화구를 보여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어떤 경기인가요?
전주고등학교를 상대했던 봉황대기 마지막 경기요. 제가 부족하다고 느낀 경기였어요. 공을 나쁘지 않게 던졌다고 생각했는데 타자들이 정말 잘 치더라고요. 연습을 더 해야겠다고 자극받은 경기여서 기억에 크게 남습니다.
신세계 이마트배 포항제철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4이닝 무실점 피칭을 하고 고교 첫 승을 달성했어요. 접전이어서 승리가 그만큼 짜릿했을 것 같은데요?
포항제철고등학교가 예상보다 잘해서 저까지 등판하게 됐어요. 정신은 없었지만 볼 배합이랑 리드를 잘 듣고 던져서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극적인 승부다 보니 이닝을 마칠 때마다 제가 조금 들뜨고 흥분했어요. 코치님이 옆에서 계속 진정시켜 주셔서 차분하게 이어갈 수 있었어요.
휘문고등학교와의 봉황대기 경기에서는 3: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실점을 허용했어요. 그럼에도 큰 기복 없이 마지막 이닝까지 막을 수 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 회를 잘 막았는데, 다음 이닝부터 힘이 좀 많이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인지 제구가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요. 마운드에서 내려올 때마다 진필중 코치님께서 걱정하지 말고, 역전당해도 타자들이 추가점을 내줄 수 있으니까 자신감 있게 던지라고 말씀해 주셔서 부담을 좀 덜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타자들이 점수를 내주기도 했고요. 덕분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경기 전후로 어떤 관리를 하는지 궁금해요.
멘탈적인 부분으로 별다른 관리를 하고 있지는 않아요. 경기 전에는 스트레칭이랑 러닝을 해서 몸을 잘 풀어주는 편이고요. 시즌 중반에 밸런스가 흐트러져서 힘들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럴 때도 혼자 힘들어하기보다는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조언을 구해요. 코치님들이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말씀해 주신 걸 토대로 야간에 나와서 같이 수정하며 운동하고요. 슬럼프 상황도 보통 운동으로 이겨내는 편이죠.
큰 키에 좋은 체격을 갖고 있어요. 피지컬 관리도 꾸준히 하는 편인가요?
일단은 잘 먹는 편이에요. 저녁에는 트레이너 코치님들이 시켜 주시는 웨이트 프로그램을 꾸준히 하다 보니까 몸이 자연스럽게 커지고 있기도 하고요. 동계 기간도 트레이너 코치님들이 일정이랑 운동을 알려주셔서, 그대로 자연스럽게 좋아질 거라고 믿어요.
2학년을 시작할 때 세운 목표 중에 어느 정도 이뤘는지 궁금해요.
제일 큰 목표는 3학년 형들의 마지막 시즌인 만큼 좋은 성적을 내서 우승하는 거였어요. 그게 제 마음대로 안 돼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마지막 대회에 형들이랑 잘 뭉쳐서 8강이라는 성적을 냈고, 그 점이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들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시점입니다. 이번 겨울엔 어떻게 운동할 계획인가요?
이번 시즌에 체력적으로 부족했으니까, 오래 던질 수 있도록 힘을 기르는 게 가장 우선이에요. 그리고 선발 투수 욕심이 있는 만큼 100구까지도 꾸준하게 던질 수 있는 체력을 길러야 할 것 같아요. 부상 없이 완주할 수 있도록 웨이트도 꾸준히 하려고 하고요. 1월 중순쯤에 일본으로 동계를 갈 텐데, 가기 전후로도 잘 준비해 볼 계획입니다.

#박석민, 그리고 박준현
아버지인 박석민의 은퇴식에서 시구를 진행했어요. 처음 제안받았을 때 어땠어요?
시구 날에 마침 주말리그가 있어서 원래는 못 가는 일정이었어요. 아버지가 이상군 감독님께 하루 정도 빠질 수 있을지 여쭤보셨는데, 처음엔 감독님이 조금 곤란해하셨어요. 꽤 중요한 경기였거든요. 그러다가 감독님께서 마지막에 아버지 은퇴식인 만큼 다녀오라고 허락해 주셨어요.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다녀왔어요.
의미 있는 경기에서 시구를 한 만큼,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소감을 들려줄 수 있을까요?
그날이 세 번째 시구였는데, 처음이 아니었는데도 굉장히 긴장했습니다. 처음, 두 번째 시구보다 사람도 많았고 뜻깊은 경기여서 그런지 긴장을 떨치지 못했어요. 무엇보다 마운드에 오를 때 팬분들의 환호성을 들으니, 아빠가 얼마나 팬들에게 사랑받던 선수인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 가장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요?
일본에 연수를 가거나, 투수들에게 운동적으로 좋은 이야기를 들으시면 바로 제게 다 전해주세요. 일본 투수들이 어떤 운동을 하는지, 요즘은 어떤 방식이 좋은지, 도움 될 만한 게 무엇이 있는지 공유해 주셔서 도움을 받고 있어요.
은퇴식을 볼 때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면요?
아빠 옆에 서 있었는데, 아빠가 원래는 잘 우는 편이 아니세요. 근데 눈물을 보이시더라고요. 저도 덩달아 감정이 되게 묘해졌어요. (혹시 본인은 안 울었어요?) 울컥하긴 했는데, 전 울지는 않았어요.
‘박석민 아들’이라는 소개가 부담된 적은 없어요?
부담은 된 적 없어요. 그래도 아빠 덕분에 더 큰 관심을 받고 있긴 하죠. 그리고 덕분에 더 좋은 환경 속에서 야구를 하는 듯해서 오히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야구선수 박석민과 가족 박석민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요.
아빠가 운동장에서는 되게 쾌활하고 웃긴 이미지로 다들 아시더라고요. 막상 집에 오시면 저한테는 잔소리를 엄청 하십니다. 물론 연락도 자주 하는 편이에요. 일주일에 두세 번 이상은 주고받아요. 야구 이야기보다는 야구는 조금 못해도 괜찮으니까 인성이 제일 먼저라고 항상 말씀하셔요. 인성이 첫 번째라고, 사람이 먼저 되자고 하십니다.
야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을까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빠가 야구하시는 걸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야구를 좋아했어요. 밖에 나가서 동네 야구도 하면서 제대로 야구를 하고 싶어 했죠. 처음에는 아빠가 엄청 반대하셨는데, 하고 싶다고 밀어붙이니까 하게 해주셨어요. (왜 반대했을까요?) 본인이 야구를 해온 시간 동안 얼마나 이게 힘든 길이고 어려운 길인지 몸소 느끼셨으니까 저한테 하지 말라 하신 것 같아요. 엄마는 그냥 아빠 의견대로 하라고 하셨죠.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 대구에서 나왔는데 북일고등학교로 진학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중학교 3학년이 돼 보니까 구속도 빨라지고, 기량이 빠르게 늘면서 대구권 팀들에서 스카우트가 많이 오더라고요. 그러다가 윈터리그를 하면서 북일고랑도 연습게임을 하게 됐어요. 그날 경기에서 나쁘지 않았는데, 그때 투수 코치님께서 오라고 불러주셨어요. 여러 조건이 좋다고 이야기해 주셨는데 크게 고려하지는 않고 있었어요. 원랜 대구고 아니면 대구상원고에 진학할 계획이었거든요. 그러다가 북일고가 시설도 좋고, 명문이면서 동시에 후원도 넉넉하다고 해서 최종적으로 진학하기로 결정했어요.
북일고만의 장점은 어떤 부분일까요?
프로에서 오신 감독, 코치님이 정말 좋으십니다.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것뿐 아니라, 그동안 배운 모든 것들을 전수해주시려고 해서 저희도 성장 속도가 빨라지는 걸 느낄 수 있어요. 그것 말고도 밥도 잘 나오고, 동기들이랑 같이 뭉칠 수 있는 환경이 큰 장점입니다. 훈련 시설도 굉장히 마음에 들고요. 웨이트 트레이닝장이나 야구장 시설도 쾌적하고, 훈련 루틴도 진필중 코치님이 다 짜주셔서 그대로 따라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운동으로도 충분해서 따로 센터에 가야 한다는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예요.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야구 면에서 가장 변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에요?
중학교에서만 야구하다가, 다른 지역 친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오니까 조금 신기했어요.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적응하고 나니까 오히려 시너지도 났습니다.
투수를 본격적으로 준비한 건 언제부터일까요? 포지션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해요.
아버지가 야수였기 때문에 저도 자연스럽게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야수를 했어요. 근데 어느 날 아버지가 제 배팅이랑 수비를 보시더니 도저히 야수에 소질이 없어 보인다고 하셔서… 그때도 공은 잘 던졌기 때문에 투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그런 말을 안 하셨어도 스스로 투수를 하지 않았을까요? 야수는 8명이잖아요. 투수는 마운드에 올라가는 단 한 명, 한 자리니까 자신감 있게 풀어나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라스트 댄스
3학년 때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어요?
일단 동기들이랑 같이 우승하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전국대회 우승을 꼭 친구들과 해보고 싶어요. 개인적인 목표로는 이번 겨울에 잘 준비해서, 내년에 전체 3순위 안에 지명받는 것이 목표예요.
내년 북일고에서 본인 외에 주목해야 할 선수를 꼽자면 누가 있을까요?
투수 중에 좌투수 강건우라는 친구가 있어요. 야수는 2루수를 맡고 있는 윤찬이라는 친구가있고요. 건우는 투구폼이 워낙 부드럽고, 직구 구위와 볼 끝이 좋은 친구예요. 체인지업이라는 강한 무기도 갖고 있고요. 윤찬은 굉장히 영리하고 리더십도 있어서 마찬가지로 기대돼요. 실제로 여름에 더워서 체력적으로 다들 지치기도 하고, 훈련 분위기가 많이 다운된 적이 있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주장인 윤찬이 파이팅을 적극적으로 외쳐주면서 분위기도 자주 끌어올려 줬는데, 저희에게는 그게 큰 힘이 됐어요.
라이벌로 삼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누구를 지목하고 싶나요?
장충고등학교 문서준 선수랑, 광주제일고 김성준 선수요. 문서준 선수는 일단 키가 무척 크고, 위에서 내려찍는 투구가 강점이라고 느낍니다. 김성준 선수는 제구력이랑 볼 끝이 정말 좋고요. 타자로는 전주고등학교 박한결 선수를 상대하는 것도 기대 중입니다.
기억에 남거나,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타자는 누구였어요?
전주고의 이한림 선수요. 직구 대신 변화구 위주로 승부를 가져갔는데, 변화구 대처 능력이 정말 좋아서 쉽지 않은 상대라고 느꼈던 기억이 나요. 내년에 만나는 게 기대되는 선수는 전주고등학교 박한결 선수요. 자신 있게 대결해 보고 싶어요.
내년 드래프트에서 기대되는 유망주 중에 한 명으로 꼽히고 있어요.
부담되지는 않지만, 기대에 걸맞게 준비를 잘해서 내년에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올해는 스스로 점수를 매기자면 10점 만점에 7점 정도밖에 안 됐거든요. 부족한 체력이랑 후반으로 갈수록 떨어지는 제구력이 개인적으로 아쉬웠어요. 내년에는 그 점들을 보완해서 10점 만점에 10점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2025년을 맞이하는 각오를 들어보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내년이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해예요. 친구들이랑 3년 동안 함께하면서 마지막 시즌인데, 똘똘 뭉쳐서 좋은 성적을 만들고 우승까지 하고 싶어요. 저한테 관심을 보내주시고, 기대해 주시는 만큼 노력해서 내년엔 올해보다 더 발전한 모습으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창원NC파크 마운드에서 환상적인 시구로 화제가 되며 야구팬들의 이목을 끌었던 박준현. 이제 시구가 아닌 자신의 데뷔전을 펼칠 마운드를 만날 시간이다.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많지만, 한정된 시간 속에 때로는 조급함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는 반드시 자신을 증명해 낼 것이다. 이미 야구선수의 길을 성공적으로 걸어 낸 아버지의 발걸음을 이정표 삼아, 차분하게 본인이 그리는 종착지를 향해 나아갈 테니 말이다. 초록 다이아몬드 안의 단 한 자리뿐인 마운드에서 경기를 풀어나갈 에이스, 내년 이맘때의 박준현은 지금보다 환하게 웃고 있길 바란다.

박준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4년 164호 (12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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