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쿠팡 독주…쿠팡만 살아남는 ‘쿠팡 유토피아’ 되나[B결노트]

조지윤 기자 2023. 11. 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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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의 성장세에 기존 기업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유통뿐 아니라 OTT, 가전제품 설치 등 여러 분야에 진출하며 기존 기업들과의 충돌이 더욱 격화되는 중이다. 앞으로 쿠팡만 살아남는 이른바 ‘쿠팡 유토피아’ 시대가 올까. 그래픽=정예원
‘유통 공룡’ 쿠팡이 현실이 됐다. 쿠팡은 유통업계 전체가 소비 침체로 고전한 올 3분기(7~9월) 첫 분기 매출 8조 원을 넘어서면서 5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쿠팡은 올해 첫 연간 흑자 달성과 함께 신세계, 롯데를 넘어선 국내 유통업계 1위 등극이 유력하다.

유통업계에선 쿠팡의 질주에 나머지 경쟁사가 모두 몰락하고 오직 쿠팡 하나만 살아남는 ‘쿠팡 유토피아’가 현실이 될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다른 모든 건물이 무너지고 주인공 아파트 하나만 남는다는 내용의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처럼.

유통업계, 더 나아가 대한민국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쿠팡 포비아(공포증)’에 어떤 이유가 숨어 있을까.그런 공포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까?B결노트가 자세히 살펴봤다.

첫 흑자, 첫 1등…반전한 쿠팡 실적

쿠팡이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의 올 3분기 매출은 8조1028억 원(61억8355만 달러·분기 평균환율 1310.39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조8383억 원)보다 18% 늘었다. 쿠팡이 올해 첫 연간 흑자를 달성하고, 신세계 롯데를 넘어선 국내 유통 1위 기업에 등극하는 건 기정사실이 됐다.
국내 ‘유통 3강’의 올해 3분기까지의 매출 추이. 이미 연초부터 쿠팡의 우세가 두드러진다.
매출 추이를 길게 보면 기존 유통업계 ‘두려움’의 이유가 더욱 명확해진다. 아래 그래프를 보자. 2018년 쿠팡 매출은 약 4조4000억 원으로 당시 유통 2강이던 이마트, 롯데쇼핑의 25% 수준에 그쳤다. 그러던 것이 3년 만에 업계 2위 롯데쇼핑을 추월하고, 5년 만에 1위 이마트를 넘어서게 됐다. 다른 유통업체 관계자는 “최근 쿠팡의 성장세가 무서운 정도”라며 “거기에 대항해 우리 쪽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 크다”라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2018년 이후 유통 3사 매출 추이
그런데 이상하다. 쿠팡의 질주가 가속화될수록 기존의 ‘유통 강자’들과 경쟁하는 건 물론 CJ제일제당, LG생활건강 등 제조업체와 싸우고 있다. 뷰티·택배·배달·OTT 등 종목(?)을 막론하고 쿠팡 진출 업종마다 마구잡이로 갈등이 불거진다. 심지어 삼성전자와 LG전자 같은 글로벌전자 대기업까지 쿠팡에 경계심을 보인다. 쿠팡 실적이 치솟을수록 ‘반(反) 쿠팡’ 기업이 늘어나는 이유, 대체 뭘까?

싸움닭 된 쿠팡…늘어나는 반 쿠팡 전선

쿠팡과 제조업체 다툼이 본격화된 햇반 발주 중단 사태. 이후 범 CJ그룹 계열사와 쿠팡 간의 갈등이 표면화됐다.
요즘 쿠팡은 ‘파이터’라는 별칭이 어색하지 않다. 쿠팡의 파이터 기질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제조업체들과의 갈등이 불거지면서다.

쿠팡은 지난해 11월 햇반과 비비고 등 CJ제일제당 제품 발주를 중단했다. 당시 양쪽 주장은 엇갈렸다. CJ제일제당은 쿠팡이 무리하게 낮은 마진율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그런 요구를 들어주면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쿠팡은 CJ제일제당이 먼저 납품가를 올리고, 약속된 발주 물량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발주를 중단했다고 주장했다.

2019년에는 LG생활건강이 쿠팡에 제품 공급을 중단하기도 했다. 당시 LG생활건강은 쿠팡이 납품업체들을 상대로 경쟁사 온라인몰에만 판매 가격을 높게 책정하도록 강요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쿠팡을 신고했다. 공정위가 쿠팡에 과징금을 부과하며 LG생활건강의 손을 들어주자 쿠팡은 지난해 2월 공정위에 불복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쿠팡이 각 업종에 진출해 기존 기업들과 경쟁하거나 갈등이 생긴 현황
유통업체와 제조업체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납품 단가를 최대한 낮추려는 유통업체와 마진율을 높이려는 제조업체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쿠팡 이전에도 여러 차례 ‘유통사 갑질’이 논란이 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쿠팡의 갈등이 유달리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제조 납품기업 외에 여러 산업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기존 선점 기업과 다툼을 벌이기 때문이다.

특히 쿠팡과 CJ그룹의 ‘악연’은 깊어지고 있다. 쿠팡은 올 7월 CJ올리브영을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쿠팡이 2019년부터 화장품 판매에 나섰는데 올리브영이 특정 협력사들이 쿠팡에 납품할 수 없도록 독소조항을 넣어 계약했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쿠팡 물류 자회사 쿠팡 물류 서비스(CLS)는 8월 CJ 계열사인 CJ대한통운을 비롯해 롯데, 한진 등 택배사들이 시행하는 ‘택배 없는 날’ 참여를 거부하면서 기존 택배업체 및 택배노조와 갈등을 빚었다. 쿠팡 자체 OTT 서비스 ‘쿠팡플레이’가 9월 월간 사용자 수(MAU) 기준으로 CJ ENM가 출범시킨 OTT 서비스 ‘TVING’을 앞지르기도 했다.

쿠팡이 장기적으로 삼성전자, LG전자 등 전자 기업과 대립각을 세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쿠팡은 지난 2019년 배송에 설치를 겸한 ‘로켓 설치’ 서비스를 도입하며 가전제품 분야에 뛰어들었다. 냉장고, 에어컨, 타이어 등으로 품목을 넓히다 지난 7월부터 유모차, 카시트로 확장했다.

여기에 ‘로켓 A/S’라는 이름으로 상표권 출원을 신청하고 채용 플랫폼 링크드인을 통해 ‘가전제품 A/S 전담 CS 운영팀’ 직원을 모집하기도 했다. 쿠팡이 롯데하이마트 등 가전제품 유통업체는 물론이고 장기적으로는 기존 전자제품 기업과 경쟁할 여지가 있다고 보는 이유다.

태생부터 충돌은 예고됐다?…쿠팡의 플라이휠이란

자동차 부품인 플라이휠 모습. flickr.com@nzhamstar 제공
사실 쿠팡의 성장 동력인 ‘플라이휠’ 특성상 쿠팡은 태생부터 다른 산업군 기업들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

플라이휠이란 동력 없이 관성만으로 작동하는 자동차 부품을 뜻한다. 미국의 경영 컨설턴트 짐 콜린스는 한 번 추진력을 얻으면 알아서 굴러가는 이 부품의 특징을 기업의 선순환 성장 구조에 비유했다. 미국 아마존의 성장 모델로도 유명하다.

플라이휠의 원리는 간단하다. 우선 다양한 상품으로 고객 만족도를 높여 이용자를 확보한다. 그다음 사용자 수를 앞세워 판매자를 늘린다. 그 결과 플라이휠의 시작점인 판매 상품 다양화에 더욱 힘을 쏟는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으로 바라본 작동 방식일 뿐 쿠팡 플라이휠의 핵심은 사업 확장에 있다. 플라이휠이 순환되는 과정에서 운영 효율성을 개선하고 고정비 부담을 낮춤으로써, 판매가 인하 및 고객 서비스 다각화에 재투자하는 것이다. 김범석 쿠팡 의장은 올해 3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우리의 플라이휠이 가속화되고 있다”라고 자평했다.
쿠팡이 말하는 플라이휠 구조.

플라이휠 굴릴 때마다 커지는 갈등…“혁신 없이 내수시장만 노려”

문제는 쿠팡이 플라이휠을 굴릴 때마다 다른 기업과의 갈등이 커지는 데 있다. 정확하게는 기존 기업들이 경쟁하던 시장 위주로, 일종의 ‘출혈 마케팅’도 불사하면서 진출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쿠팡발 전장(戰場)은 기존의 업계 내부 다툼에 비해 폭이 넓고, 싸움터마다 유혈이 낭자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출범 3년 만에 국내 2위까지 오른 쿠팡플레이. 여러 업종에 진출하는 쿠팡식 경영의 대표적인 사례다.
대표적인 게 2020년 12월 론칭한 쿠팡플레이다. 쿠팡의 유료 구독상품인 ‘와우 멤버십’ 가입자에게 무료 제공하는 OTT 플랫폼으로 출발했는데, 콘텐츠 라인업을 보완하면서 이용자 확보에 성공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9월 쿠팡플레이는 월간활성이용자 수에서 531만 7417명으로 티빙과 웨이브를 제치고 국내 2위에 올랐다. 만 3년이 지나지 않아 ‘토종 OTT’ 중 1위에 오른 것이다.
여기엔 무료 혜택을 줘 와우 회원들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인기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집중한 방향이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SNL코리아를 시작으로 배우 수지 주연의 안나, 신하균 주연의 유니콘 등의 콘텐츠를 독점 확보했다. 손흥민 선수가 속한 토트넘 홋스퍼 FC 경기 등을 독점 중계한 것도 바람을 탔다.
쿠팡의 물류 시스템 모습. 쿠팡 제공
물류 또한 ‘쿠팡 바람’이 거세게 몰아친 분야 중 하나다. 쿠팡은 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에 수년간 대대적인 투자를 하면서 전국 곳곳에 물류센터를 강화했다. 나아가서는 이런 인프라를 발판 삼아 3자 물류 서비스에 진출했다. 3자 물류란 판매자가 고객이 주문한 제품을 배송하는 데 필요한 일련의 물류 활동을 제3자에게 위탁하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 3월 로켓그로스 서비스를 도입하며 이같은 3자 물류 서비스 진출을 공식화했다. 국토교통부로부터 택배 운송사업자 자격도 취득했다. 지금까지 쿠팡이 직매입 상품만 배송했다면 이제는 다른 회사 상품까지 운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상 택배업계와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실제 쿠팡은 점유율 면에서 기존 택배사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쿠팡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의 점유율은 지난해 12.7%에서 올 8월 말 24.1%로 1년 만에 2배 가까이로 성장했다. 롯데택배, 한진택배, 로젠택배를 제치고 단숨에 업계 2위가 됐다.
쿠팡이 굴린 플라이휠은 배달플랫폼 시장 경쟁도 격화시키고 있다. 2019년 론칭한 쿠팡의 음식 배달 플랫폼 쿠팡이츠는 멤버십 무제한 할인 등 기존 쿠팡 고객을 발판으로 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모바일인덱스 집계 결과, 지난 10월 쿠팡이츠 월간활성이용자 수는 433만 496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8.8% 늘었다. 반면 기존 주요 사업자들인 배달의민족과 요기요의 월간활성이용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각각 2.5%, 14.1% 감소했다. 쿠팡의 참여로 기존 사업자 시장이 무너지는 사례다. 쿠팡이츠 역시 와우회원을 대상으로 무제한 10% 할인 등 혜택을 제공한 것이 성공 원인이 됐다.

이제 각 업계에서는 “쿠팡이 무섭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하지만 “쿠팡이 별다른 혁신 없이 미국 아마존의 성공 모델을 따라 하면서 내수 시장만 장악한다”는 비판도 흘러나온다. 쿠팡으로선 “소비자 편익을 늘리며 시장을 장악한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적지 않은 소비자들도 쿠팡의 혁신성 자체에 대해선 의구심을 가지는 상황이다.

과연 쿠팡은 한국판 혁신 기업일까. B결노트 2편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쿠팡의 ‘혁신성’을 평가해 본다.

조지윤 기자 george@donga.com
이한규 기자 hanq@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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