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도시, 내 이름은 그게 아니다 [자물쇠 걸린 땅 ‘도시 개발 자치권’·(2)]
광명의 도시개발사 품은 ‘보람채 아파트’
市 독립 이후에도 태생적 한계 극복 못해
행정구역 안에서조차 도시개발에 소외
내가 사는 지역 고민… 시민의식만 발전
한때 경기도 주요 시군들은 위성도시로 기능했다. 성남시는 서울시에 집중된 인구를 분산할 목적으로, 과천시는 중앙행정수요를 과천정부종합청사가 나눠 짊어지며 서울, 중앙을 중심으로 한 ‘위성도시’로 불렸다. 이밖에도 화장장이나 쓰레기소각장 등 일부 기능을 나눠 가진 시군도 적지 않다.
이제 경기도 시군을 위성도시로 일컫는 사람은 없어도 서울, 중앙과 그 주변을 부속으로 나눠 사고하는 경향은 여전히 남아 성숙한 주민의식의 발목을 잡고 있다. 실제 3기 신도시를 지정할 당시에도 주민들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았다.
보람채 아파트는 이 같은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물과도 같다.
광명시 도시개발사
보람채 아파트는 광명시의 도시개발사를 담고 있다. 서울의 부속도시로 구상된 광명시가 독립해 성장한 지금에 이르러서도 태생적 비애를 벗어나지 못하는 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광명시의 시 승격을 담은 1981년 7월 법률 제3425호가 나오기 전까지 광명시는 시흥군에 속했다. 앞서 1963년 9월 발표된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구역(건설부 고시 제547호)에는 시흥군 서면 광명리, 철산리, 하안리가 편입돼 주택지구로 개발됐다. 이 과정에서 서울 목동 인근 지역에 거주하던 철거민들을 대거 수용한 역사는 성남시의 역사와 닮아있다. 성남시도 서울시가 설치한 ‘광주대단지 사업소’를 통해 철거민 집단 이주로 조성됐다.
지자체 간 협의가 필요한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중앙의 필요로 도시개발계획이 세워질 때여서 행정구역은 큰 의미가 없었다. 현재 철산동 일대인 광명리가 서울 개봉지구의 일부로 개발되면서 본격적인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철산리는 서울 구로공단을 배후로 하는 택지지구로의 개발이 계획됐다가 시 승격 이후 완성됐고, 서울시 통화권(지역 번호 02)에 편입됐기 때문에 광명시는 하나의 독립된 지자체의 개념이라기보다는 행정구역만 분리됐을 뿐 사실상 서울시에 종속된 부속도시와 같은 모양새였다.
광명시 퇴직 공무원 A씨는 “1981년 광명시청이 개청해 여러 지역에서 공무원들이 광명시로 전입했는데, 한동안 곧 서울시로 편입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당시 공직사회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람채 아파트는 중앙중심 행정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물과 같은 존재다. 당시 광명시는 행정구역상으로 경기도 속했지만, 구로공단의 배후지역으로, 또 개봉지구 일부로 서울에 집중된 주택 수요 등을 분산하기 위해 들어섰기 때문. 여성근로자의 열악한 주거가 도시문제로 떠오르자, 서울시는 광명시에 부지를 매입해 사용했고, 여전히 광명시 내에 섬으로 남아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대한민국 산업화를 위해 필요했던 도시개발과 안정적인 노동력 수급이라는 대의를 위해 광명시가 개발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광명시 역시 논과 밭, 갈대로 무성한 습지에서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도시로 성장하는데 산업화시기 주어졌던 그 역할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한 때는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이 점심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고된 노동을 잊기 위해 술 한잔을 기울일 곳으로 광명시를 찾았으니 서울 배후지역의 경제적 이익을 누렸다. 지역의 인구수 자체가 지자체의 경쟁력을 말해주는 시대였기에 인구가 늘어난 것 역시 서울, 중앙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여러 이점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방자치시대가 본격화되고, 자신이 사는 지역을 더 나은 환경으로 가꾸려는 시민의식이 성숙하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한 행정이나 정책은 수도권 지자체가 공통으로 겪는 비애가 됐다.
보람채 아파트는 광명시 행정과 상업의 중심지역인 철산·하안지역에 10여 년째 방치되고, 더 넓게 본다면 KTX 광명역에서부터 현재 추진되는 안양천 국가정원화 사업, 3기 신도시와 테크노밸리 등과 연계될 주요한 위치에 있는 데도 광명시가 단독으로 활용방안을 세울 수 없는 도심 속 공동(空洞)으로 남았다.
안전한 광명을 위한 시민모임 김성동 대표는 “광명시의 최고 중심지에 있는 땅이지만, 40년이 넘도록 광명시민을 위해 사용하지 못했고, 지금은 방치돼 도심 흉물로 전락해 시민들의 걱정거리가 됐다”며 “기재부가 나서서 하루라도 빨리 흉물을 철거하고 광명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되돌려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박승원 광명시장도 “(현재 광명시에서 진행되는 사업을 봤을 때)새로운 기업들이 많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하는 데, 시너지를 내기 위해 청년들이 교육을 받고 창업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부지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광명시장과 시민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협의 대상일 뿐, 해당 부지의 개발 방향에 대해서는 기재부가 직접 나서야 하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높아진 시민의식, 발목 잡는 ‘위성도시’
경기도 내 여러 시군에서 광명시와 같이 ‘위성도시’라는 태생적 한계로 지자체가 관할 행정구역 안에서조차 도시개발에 소외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광명시 보람채 아파트와 같이 서울시의 기능을 나눴다가 도시개발의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한 사례는 경기도 내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양주시는 서울시 용산구가 주민들이 원하는 방향과 동떨어진 개발계획을 양주시 내에 위치한 용산구 소유 부지에 세우면서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2000년대 후반 서울시 각 구에서 구민들을 위한 휴양소를 만드는 게 유행처럼 번질 때 용산구는 양주시 백석리 기산읍에 ‘용산구민 휴양소’를 조성했다. 서울 동작구가 안면도에, 서초구가 강원도 횡성, 용산구가 제주도에 서울시민을 위한 휴양소를 마련했던 것도 이 시기다.
‘용산구민 휴양소’가 들어선 기산리는 마장호수와 기산저수지 등이 인근이어서 양주시의 주요 관광자원으로 꼽힌다. 지난 2017년 2월 용산구민 휴양소는 폐업했지만, 7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방치되고 있다.
용산구는 방치된 시설을 활용해 치매안심마을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양주시민들은 요양시설이 난립해 도시환경을 저해할 것을 우려했다.
양주시민 A씨는 “이미 관광호텔 등이 요양시설로 바뀌는 추세인데, 서울시 노인요양시설까지 들어온다고 하니 주민 입장에선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양주시는 2019년 치매마을 건립 반대 주민 의견을 모아 용산구에 통보했고, 이듬해에는 양주시의회가 치매마을 건립 철회 촉구 의견을 낸 바 있다.
용산구는 2021년 양주시를 상대로 건축협의 부동의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의정부지법은 2022년 8월 23일 양주시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법원은 지자체법과 건축법에 근거해 건축물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허가권자, 양주시의 동의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용산구는 치매안심마을 조성 사업을 취소했지만, 여전히 활용방안을 찾지 못한 채 양주시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 고양시에는 서울시립승화원과 서울시립벽제묘지 등 장사시설 정리가 고양시민의 오랜 숙원이다. 이밖에 난지물재생센터와 음식물류 폐기물처리시설, 은평 광역자원순환센터 등 쓰레기 처리시설, 서울시립고양정신병원까지 6개의 서울시 기피시설을 떠안고 있다. 더욱이 고양시와 인접한 상암동에는 마포 광역자원회수시설(소각장)이 추진되고 있어 주민들의 불만이 상당한 상태다.
1963년 조성된 서울시립벽제묘지는 현재 신규매장을 하지 않아 분묘가 감소하고 있어 고양시는 친환경 공간으로 조성하는 공동개발 또는 고양시로의 반환을 서울시에 제안했다. 이 외 기피시설에 대해서도 현대화·지하화, 이전 등 대책을 요구하고 있으며, 난지유수지와 은평 공영차고지에 대해서도 고양시의 의견이 반영된 개발 및 정비사업을 요청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요원한 상태다.
이들 사례의 또다른 공통점은 시설이 위치한 지역주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광명시와 양주시 등이 관할하는 행정구역 안의 개발조차 서울시나 중앙정부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현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지역 주민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대목은 위성도시라는 태생적 한계가 성숙한 주민자치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이다.
광명/김성주·공지영·이시은기자 ks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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