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쓰고 싶은 날 [보이지 않는 가슴]

학교 선생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초등학교 1학년 그룹홈 막내가 오늘 양말을 안 신고 온 것 같다고. 살뜰히 입혀서 보냈노라 당장 답하고 싶었다. 이 추운 날 학교 가는 어린아이에게 어떻게 양말을 안 신길 수가 있나 하고 말이다. 그런데 기억이 없었다. 검은색 운동화를 신은 막내가 회색 조거 팬츠 위에 겨울용 야구점퍼를 걸치고 안경을 낀 채로 나를 보고 싱긋 웃던 모습까지는 기억이 났다. 흰색 양말이었나? 공룡그림이 그려진 양말이었나? 운동화 안에 어떤 양말을 신었는지는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양말은 확인 못 했습니다. 옷 얘기하고 놀이하고 둘이 분주하고 재미나게 보냈는데 하필 오늘 아침에 양말을 살피지 못했습니다. 항상 체크하던 부분이라 목에 두르는 수건에 마스크까지 챙기기는 했는데 양말은 당연히 신었을 거라 속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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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리면 그룹홈 보육사들이 돌아가며 자는 침대에서 책상 위로 손을 뻗어 더듬거리며 안경을 찾았다. 새벽 4시쯤부터 막내 방에서 들리던 기침 소리가 마음에 걸렸었다. 자는 아이를 일으켜 따뜻한 물을 조금 마시게 하고 이불을 덮어 다시 자도록 했다. 부엌에는 불을 환하게 켜서 어제 끓여둔 찌개와 밑반찬 몇 가지를 손질하면서 학교가 먼 아이부터 하나씩 깨우기 시작했다. 침대로 다가가 지금 일어날 시간이야, 하고 속삭이면 되었다. 아, 10분만요, 10분만요, 하면서 애태우는 날도 있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창밖이 캄캄한데도 아이들은 순하게 일어났다.

굳이 식빵에 초콜릿 잼을 발라 먹어야겠다는 녀석, 과일을 먹어야겠다는 녀석, 주는 대로 먹겠다는 녀석, 저마다 좋은 방식으로 밥을 챙겨 먹이고 의복에 준비물까지 확인했다. 녀석들아, 순두부찌개가 얼마나 맛나게 끓여졌는데 빵 따위를 집어 먹냐, 다그치고 싶었지만 놔두었다. 하고 싶은 걸 번번이 참아야 하는 이 세상에서 먹는 거라도 뜻대로 할 수 있게 지켜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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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마음도 모르고 목에서 동굴 소리를 내고 면도기를 찾는 큰아이들이 성질을 부리거나 서름한 표정으로 대꾸도 하지 않으면 몸이 먼저 지치기 시작했다. 사춘기 아이들이 다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통제가 안 되는 상황에 매번 자괴감을 느꼈다. 그래도 어젯밤에 수학 문제지 풀다 말고 눈 마주치며 씨익 웃어준 셋째 얼굴이며, 밥 먹다 말고 수학보다 영어공부가 힘든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하던 둘째의 눈빛이 며칠 동안 내 마음을 잡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녀오겠습니다.” 현관문을 박차고 나섰던 큰아이들이 돌아와 교통카드를 두고 왔다며 집을 헤집는 의례까지 모두 마치고 나면 막내와 둘이 남았다. 용량에 맞춰 기침약을 먹이고 씻기고 로션을 발라주었다. 혼자서 세수하고 양치질까지는 하지만 로션 바르기는 빼먹으려 들어서 어쩔 수 없었다. 날씨가 건조하니 듬뿍 발라야 한다며 다리 위에 앉혀서 뺨을 문지르는 동안 녀석은 눈을 감은 채로 몸을 비틀거나 코에 주름살을 만들어 보였다. “이게 뭐가 간지러워?” 내가 소리 내어서 웃으면 녀석도 소리 내어서 따라 웃었다.

함께 옷을 골라 다 차려입고 가방을 챙기고도 시간이 남아서 둘이 같이 앉아 TV도 봤다. 막내가 좋아하는 아동 프로그램에서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양념한 밥을 피자도우처럼 얇게 펴서 다진 양파와 햄을 토핑으로 얹고 치즈를 수북이 뿌려서 만든 ‘치즈폭탄밥피자’가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우리도 집에서 이렇게 만들어 볼까?” 부러운 듯이 화면을 지켜보던 막내가 좋다고 고개를 크게 끄덕끄덕했다.

공기가 건조하면 기침이 심해질 수 있으니 마스크를 끼자며 베이지색 새부리형 마스크를 같이 고르기도 했다. 이모가 목에 둘러준 수건은 학교 마칠 때까지 절대 풀면 안 된다고 당부도 했다. “더우면 어떡해요?” 그래도 오늘 새벽엔 기침했으니까 목에 두른 수건은 풀지 말자고 다시 당부했다. 그렇게 우리는 두 손을 잡고 집을 나서서 학교로 걸어갔다. 혼자서 교문 안으로 들어서는 녀석의 뒤통수가 이뻤다. 손이 많이 가기는 해도 이 녀석 때문에 그래도 웃고 산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그동안 양말을 신지 않은 아이의 맨발이 눈에 띄거나 해서 거슬린 기억은 없었다. 한 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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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그룹홈에 돌아와 주방 정리하고 청소기 돌리고 쓰레기통 비우고 세탁 마친 빨래를 옥상에 널었다. 오전 근무하러 출근한 동료들을 맞아 인사하고, 참기름과 고춧가루, 누룽지를 가지고 방문한 후원자들을 맞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룹홈협의회 회의를 하러 온 이웃 그룹홈 동료들에게도 후원물품을 균등하게 나누고, 회의 진행하는 동안 차를 준비하거나 안건에 따라 의견을 내고 사진을 찍었다. 와중에 우리 그룹홈 앞으로 온 물품을 집안에 정리했다.

지방 자치 단체에서 메일로 요청한 아동생활시설 빈대 확산 방지를 위한 자체점검표를 작성해서 회신했고 연말까지 지출해야 할 보조금 내역도 일부 정리했다. 아이들 앞으로 나오는 각종 바우처 카드 내용을 정리하느라 행정복지센터와 지방 단체 담당자들과 여러 번 통화하며 필요한 서류도 정리했다.

교대하는 동료가 출근한 뒤에는 각종 일지와 함께, 내가 근무하는 동안 아이들에게 있었던 일과 특별히 점검할 일을 전달했다. 막내가 하교할 시간이며 기침을 하는 이야기까지도 빠짐없이. 인수인계를 마치고는 연말에 있을 후원행사를 개최할 장소를 답사했다. 아이들에게 후원금을 전달하고 싶어 하는 후원자들이 백 명도 넘게 방문할 장소였다. 허투루 둘러보다가 행사에 차질이 생기면 어떡하나 내내 긴장을 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연락을 받았다. 오늘 막내가 학교에 양말을 안 신고 온 것 같다고.

십 년도 넘었을 것이다. 복지관에서 일하다가 내가 낳은 두 딸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님에게서 비슷한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하은이 지은이(가명) 어머님, 오늘 아이들 머리에서 서캐를 발견했어요. 머리카락을 옮겨 다니며 옮는 머릿니가 나올 수도 있어서 최대한 빨리 오셔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주셔야겠어요. 일하시느라 어머님께서 많이 바쁘시지만, 신경을 조금만 더 써주세요.”

아이들 머리에 서캐가 끼는 것도 모르고 지금 여기서 바쁘게 일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에 머리가 멍했었다. 이런 연락이 한 번으로 끝난 건 아니었다. 아이 머리에 열이 끓는다는 전화, 아이가 교실에서 오줌을 싸고 울고 있다, 여벌의 옷을 들고 지금 급히 학교로 와달라는 전화, 가슴은 덜컥 내려앉는데 직장에서 내 맘대로 뛰어나갈 수도 없어 발만 구르게 만든 전화, 전화들. 아이 낳고 수년 만에 얻은 직장이었지만 그때마다 사표를 써야 하나 고민했다.

이번엔 상황이 조금 달랐다. 내가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급여를 받고 수행하는 ‘업무’가 아이를 돌보는 일이 되었는데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 역시나 충격이 덜하지 않았다. 원가정에서 온갖 고생을 겪은 아이를 어렵게 데려와 추운 날씨에 양말도 제대로 챙겨 신기지 못하면서, 진이 빠지도록 정리한 온갖 행사며 집안이며 서류가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아침에 기침하던 아이 몸은 이제 좀 어떤지, 맨발인 채로 학교에서 학원으로 간 아이는 도대체 하루를 어떻게 보낸 것인지, 궁금해서 교대한 동료에게 전화를 걸까 몇 번이고 망설이다 말았다. 이 경력에, 이 연차에 아이 양말 하나로 이토록 괴로워지는 일에서 도망 치고 싶었던 마음이 걸렸기 때문이다. 내가 낳은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할 때는 모든 걸 버리고 아이 곁에 있는 선택을 해야 하나, 고민했으면서, 그룹홈 막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할 때는 내 자존심이 걸려서 아이를 버리는 선택을 하고 싶었나, 자책이 되었다. 그렇게 핸드폰만 쥐고 있던 밤 9시 12분. 이모들 단톡방에 메시지 하나가 떴다.

막내가 오늘 덥다고 양말을 벗어 가방에 넣어뒀다고 합니다. 겨울에 맨발로 다니면 안 된다고 따로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기침을 간간이 하여 감기 시럽 먹여서 재웠습니다.

아이도 제대로 못 챙기면서 내가 여기서 바쁘게 뭘 하고 있나, 자책하며 사표를 쓰고 싶었던 하루가 그렇게 또 지나갔다. 내가 낳은 두 딸이 우스갯소리로 머릿니 사건을 이야기하는 지금처럼 막내와 싱겁게 웃으며 양말 사건을 이야기할 그 날도 오겠지. 사표를 쓰고 싶었던 그 날을 웃으며 이야기하기까지 흘린 눈물이 만만치 않았지만, 막내가 목에서 동굴 소리를 내고 면도기를 찾는 그 날에도 웃을 수 있는 그 순간을 생각하면 까짓 눈물 좀 흘리며 기꺼이 기다려 볼 만도 하다.

지나 그림

* 보이지 않는 가슴 - 글쓴이 수영

아동그룹홈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입니다. 내 시간의 45%는 네 아이와 함께 그룹홈에서 보내고, 나머지 55%는 내가 낳은 두 아이와 남편이 있는 집에서 보냅니다. 집과 일터, 경계가 모호한 두 곳을 오가며 겪는 분열을 글쓰기로 짚어보며 살아갑니다.

그룹홈에서 일하는 보육사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그룹홈에서 일하는 나의 이야기가 당신과 우리의 이야기로 나누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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